"말 나오기 전에 조심하세요"

오지랖과 간섭 사이

by 윤서A

"안에서 이런 말 나오니까 알아서 조심하면 좋지."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동료나 상급자 등에게서 저런 말을 한 번씩 들을 때가 있다. "너에 대한 여론이 전반적으로 이러하니, 앞으로는 주의해 사회생활의 묘미를 보여라"는, 내 어떤 행동에 대한 경고, 또는 "알아서 잘하라"는 은근한 압박을 저변에 깔고 건네는 충고다. 나에 대한 진심 어린 조언일 수도, 상사로서 건네는 일종의 지시일 수도 있다. 화자의 저의를 투시하는 건 어렵고 힘든 일이기에 저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그때 당시의 분위기, '안에서 말이 나오게 했던' 말 또는 행동의 도덕성이나 합리성 결여 여부, 말하는 사람의 평소 인성 등을 복잡하게 변수로 설정해 계산해야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의미를 적확하게 캐치했다고는 자부할 수 없다.


사회초년생일 때 저런 말을 들을 때면 나는 며칠간 밤잠도 못 이루며 내 행실에 대한 자책을 일삼았다. "최근에 부장보다 퇴근을 좀 일찍 하긴 했지." "며칠 전 동료와 복도에서 너무 크게 웃고 떠들었지." 등 마음에 걸리는 모든 일을 머릿속에 소환시켜서 혼자만의 법정을 열고 유죄 판결을 내렸었다. 그러곤 좀 더 튀지 않게, 어느 누구에게도 거슬리지 않게 스스로를 깎아내고 다듬었더랬다.


하지만 사회생활 '짬'이 거듭되다 보니, 이제 저런 말을 들으면 마음속으로 코웃음부터 치게 됐다. 저 말을 꺼내는 사람의 의도를 몸소 체득해 버렸기 때문이다. '안에서 이런 말이' 도대체 누구에게 나오는지를 따져보면 사실 간단히 해결될 일이었다. 내가 정말 직장인으로서 어긋나는 비윤리적 비도적적 비인간적 행동을 일삼았다면 안에서 말이 나옴과 동시에 인사과에서 뭔가의 징계가 내려오면 면 될 일이었다. 센스가 부족해서 일어난 난 사회생활 문제였다면, 꾸중이나 일침만으로도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결국 저 말은 몇몇이 떠들다 나의 어떤 점에 대한 험담을 하게 됐고, 그걸 당사자에게 굳이 들려줘 마음을 불편하게 하면서 "우리 맘에 들지 않으니 개선하라"는 일종의 간섭이었다.


내 신념이 모두에게 이쁨 받는 사원이 되리라였다면 이 간섭이 효과적으로 먹혔겠지만, 나는 정반대의 사람이었다. 저런 말을 들을 때마다 "아 너네끼리 또 내 욕을 했구나"로 번역해 들었다.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들을 때마다 "아 그래서 어쩌라고" 같은 반감만 커졌던 것도 사실이다.


"관심 없어 보여도 실은 다 보고 있거든요."

어느 정도 저런 말에 무신경해질 즈음, 저 말과 의미나 분위기는 같지만 쓰는 단어가 달라 얼핏 전혀 다른 뜻처럼 보이는 변종 간섭이 등장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건 새 직장에서였다.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때, 그럭저럭 처음의 낯섦도 사라지고 업무가 조금씩 손에 익을 무렵이었다. 나보다 조금 앞서 입사한 동료가 점심을 먹으며 저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의 말을 요약하면, 사람들은 관심 없는 것 같아도 다 지켜보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근태나 평소 행동거지, 발언에 유의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나는 근태 행동거지 발언에서 어느 것 하나 튀기는커녕 어긋나는 것을 시도조차 할 수 없던 입사 초기였기 때문에 그의 말을 순수한 조언으로 받아들였다. "이 조직의 특성을 알려주고 미리 조심하라고 팁을 주는구나." 꽤 감사한 마음에 고개를 끄덕거리며 그러겠노라 맞장구쳤다.


"너무 시간 맞춰 퇴근하는 것도 남들이 뭐라 할까 봐 조금 늦게 가고 그래, 난."

이야기의 귀결이 여기까지 왔을 때야 나는 비로소 그가 지금 나에게 일종의 경고를 하고 있음을 알았다. 너무 뒤늦은 깨달음이었다. 초반에 낯선 시스템 때문에 헤매느라 며칠간 20~30분 정도 늦게 퇴근했다가 이후부터는 정시가 지나면 곧바로 퇴근하던 차였다. 지금 그는 나에게 일종의 '칼퇴'를 다수 여론인 척 지적하고 있었다.


하지만 무척 의아했다. 퇴근 시간에 퇴근하는 것을 누가 지켜보고 있다가 뭐라고 하며, 그걸 또 의식해서 조금 늦게 갈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지 근원적으로 궁금했기 때문이다. 일이 밀린 시기도 아니었다. 하지만 뭐라 섣불리 말하기도 좀 그래서 듣고만 있었다. 문제는 침묵을 나의 수긍으로 받아들인 그가 그 이야기를 좀처럼 끝낼 줄 몰랐다는 것이다. '말이 많은 조직' '험담이 많은 조직' 등 모든 조직의 공통 습성들이 그의 입에서 나열되기 시작했다. 이미 오랜 기간 사회생활을 통해 산전수전은 겪어본 나로서는 다소 진부한 주제들이었다. 신경 쓰면 끝이 없고 불필요한 소모전일 뿐인 그런 가십거리들. 그냥 서로 알아서 일만 잘하면 아무 문제없는 업무 외적인 문제들. 하지만 사회 초년생에겐 괴로울 그런 이야기들. 하지만 동료는 모든 사례의 귀결을 '나는 그래서 이렇게 한다'로 끝맺었다. 암묵적으로 나도 그렇게 하라는 종용이었다.


동료는 다소 극단적이었다. 그는 마치 빅브라더처럼 자신을 감시하는 누군가를 의식하는 듯했다. 그런데 누군가 근무태만을 벌이는 것도 아니고, 사규를 악용해 범죄를 저지르는 것도 아닌데, 도대체 누가 사원 개개인의 행동거지와 말투 퇴근시간을 지켜보고 말을 꺼낸단 말인가? 눈에 거슬리는 한 사람의 근태를 가까이서 지켜보고 마음에 안 들어 험담하는 편이 훨씬 쉬웠다. 바로 옆자리 동료가 지금 그 과정을 밟으며, 다수의 의견인 척 나를 호도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 생각보다 남한테 그렇게 관심 없어요."

인내심의 한계를 느낀 내가 참다못해 뱉은 말이었다. 나름 선의로 충고하는 그의 마음을 받아들여 나도 그에게 선의로 한 충고이기도 하다. "사람들 남한테 그렇게까지 관심 없으니 그런 신경은 쓰지 않으시는 게 좋겠다."는 속마음을 잔뜩 묻혔다. 하지만 오히려 그는 거기서 화난 듯했다. "내 의도가 너무 뻔했나?" 나는 조금 움찔했다. 하지만 그는 다른 포인트에서 화가 나 있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 조직은 정말로 남한테 관심이 많고, 그렇지 않은 것 같아도 다 지켜보고 욕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직장인의 귀한 점심시간이 갑자기 저런 주제로 점철되자 짜증이 났다. "그래서 어쩌라고요"라는 말을 되묻고 싶었지만, 그거야 말로 "안에서 말이 나올 게" 뻔했기 때문에 꾹 참았다. 내가 어떻게 말하고 행동해도 날 험담할 사람들은 험담한다. 그 단순한 사실에 내가 신경을 곤두세우고 그들의 반응을 살필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그래도 아직 대한민국은 칼퇴를 싫어한다는 주장이 있을까 봐 미리 말하면, 내가 말하는 '칼퇴'는 퇴근 시각 정시에 가방을 들고일어나는 게 아니라, 적당히 그날 일이 마무리되고, 상사에게 업무 보고 후 추가 지시가 없을 경우에 하는 일이다. 야근을 미덕으로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고까울 수 있어도, 그걸 나에게까지 강제할 권리는 없었다. 심지어 정시에 퇴근하는 사람도 많고, 그들이 잘못한 것도 없다.


지겨운 점심시간(그렇다, 점심시간도 때에 따라 지겨울 수 있다)이 끝나고 자리로 돌아왔는데, 한숨이 나왔다. 내가 사회 초년생일 때부터 지금까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어째서 "안에서 말 나오니 조심해야 한다"는 이 주장이 고전처럼 회자되는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정말 분위기 파악 못하고 퇴근해 몇몇의 심기를 거슬리게 했을까'란 생각도 잠깐 해봤지만, 업무 효율과 아무런 관련 없는 주제인 건 명확했다. 그저 자신보다 늦게 퇴근하라는 꼰대질이자 고나리질에 불과했다. 이 생각에 미치자 무척 불쾌해지기까지 했다.


내 표정이 그리 밝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의도를 간파한 이후부터는 이야기도 흘려들었다. 사람이 말을 하는데 듣지 않는 무례가 얼마나 킹 받는지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을 관찰하고 욕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내가 그걸 막을 권리도, 힘도 없었다. 욕먹지 않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우고 에너지를 쓰느니 차라리 그것에 관심을 끄고 일에 집중하는 게 훨씬 나았다. 그리고 나는 그 방면에 꽤 훈련이 돼 있었다. 내가 선을 넘지 않는 선에서 나만의 합리적 방식으로 근무하는데 그것마저 뭐라고 한다면, 그건 내가 감수하면 될 일이었다.


자신의 '진심 어린 충고'가 무시당했다는 생각에 그도 조금은 화난 듯 보였다. 자리에서 타닥타닥 빠르게 두드리는 키보드 소리는 '업무용'이 아닌 게 분명했다. 자신의 감정을 키보드 소리로 표현하는 사람. 기분을 어떻게든 드러내는 사람. 그런 사람은 불행히 나와 맞는 사람이 아니다. 아마도 PC 메신저로 조금 전 일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며 날 또 험담하고 있겠지. 상대가 누군지 역시 내 알 바가 아니었으나, 자신들의 얄팍한 연대를 어떻게든 다른 사람을 짓누르는 데 쓰는 사람들은 못 참고 자신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나는 오래지 않아 그게 누군지 알 수 있었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경멸하고 혐오한다. 조언인 척 다가와 선을 넘는 사람들, 업무와 전혀 관련 없는 일들로 어떻게든 트집 잡고, 험담거리를 찾는 사람들.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게 잘못이라고 단정 짓는 사람들. 나이와 상관없이 인성이 덜 자라 신나게 씹어댈 안주거리가 없으면 회사생활의 동력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 기분을 태도로 드러내는 사람들. 그에 대한 사람들의 위화감을 자신의 영향력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


한편으로는 연민이 느껴지기도 한다. 다른 사람을 지켜보고 트집 잡을 걸 찾느라 에너지를 쓰다니. 얼마나 일이 없으면 저럴까. 신경을 곤두세우고 다른 사람 트집거리만 찾느라 시간을 허비하다니. 얼마나 할 일이 없으면 저럴까. 그런 사람들 눈치 보느라 강약약강 태도를 유지하느라 얼마나 피곤할까.

keyword
이전 05화김땅콩, 진짜 웃기는 강아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