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첫 번째 웃음버튼
2023년쯤 5년간 다니던 단골 미용실을 끊어야 하는 사건이 있었다. 뿌리염색과 약간의 컷으로만 머리에 변화를 주던 내가 갑자기 어두운 색으로 전체염색을 하고 싶다는 마음을 먹은 게 발단이었다. 당시 내 머리는 밝은 갈색이었고, 때문에 검은 뿌리가 자라면 상당히 거슬렸다. 2cm 정도 자라면 뿌리염색을 하다 보니 이것도 꽤 귀찮아졌다. (코로나19 이후 꽤 많은 게 귀찮아짐) 그래서 아예 뿌리염색이 필요 없는 어두운 색으로 머리 전체를 덮고 싶었던 것이다. 다니던 미용실을 예약했고, 나는 이제는 뿌염에서 해방되길 바라는 기쁜 마음으로 찾아갔다.
"고객님 저번엔 당분간 안 덮는다고 하셨잖아요?"
글자로 옮기니 굉장히 온순해 보이긴 하는데, 아무튼 미용사는 나의 염색 계획에 굉장한 난색을 표했다. 지난번 뿌리염색 때 당분간 밝은 색을 유지하겠다고 말한 기억은 있다. 그런데 그게 맹세는 아니니까. 나는 "뿌염하기 너무 귀찮아요"라고 답했다. 미용사는 한 번 더 말했다. "근데 저번엔 색 안 덮는다 하셨잖아요." 말에 조금의 웃음기도 없다. 그때부터 나는 갑자기 좌불안석이 됐다. 내가 뭔가 실수한 걸까. 내 머리는 길고 숱이 많아서, 전체 염색을 하려면 꽤 시간이 걸리긴 한다. 근데 그건 제값을 치를 테니 문제 되지 않고, 혹시 내 머릿결이 너무 상할까 우려한 걸까 생각했지만 그건 아니었다. 뿌리염색만 반복하다 보니 머리색은 상당히 얼룩덜룩했고, 언젠가 밝은 색이든 어두운 색이든 덮어야겠다고 미용사와도 종종 말하던 주제였다. 그날 그에게 무슨 안 좋은 일이 있었던 건지, 평소와 달리 아무 말 없이 염색이 진행됐다. 이따금 내 머리숱을 들추면서 한숨도 쉬었다. 나는 왜 그러냐고 묻고 싶었지만 아무 말 않고 조용히 있다가 조용히 결제하고 매장을 나왔다. 지금도 내가 그를 오해한 거라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상당한 불편함을 느낀 나는 이후부터 그 매장에는 가지 않았다.
미용실에서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이 꽤 있던 건지, 유튜브의 위대한 인류학자들이 미용실 에피소드를 주제로 꽤 많은 콘텐츠를 제작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머리가 마음에 안 들지만 꾹 참고 있다가 미용실을 나오자마자 모자를 써버린다던지, 마음에 드는 머리 사진을 들고 갔지만 '손님 그건 고데기예요'라며 저항에 부딪혀 결국 추구미와 전혀 다른 도달미를 마주하고 부글부글 끓는다던지 등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누구의 잘못이 있으랴, 정말 문제가 있다 해도 소수의 일이니 이것을 전체로 확산하는 것은 늘 지양해 왔다.
아무튼! 새해 들어 유튜브의 바다를 헤엄치고 있는데, 미용실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아무 말 못 하는 사람들을 위해 칠성사이다 발언을 서슴지 않는 웬 커다란 '개'가 내 알고리즘에 걸리고 말았다. 그 개는 사람처럼 미용실에 앉아 "머리 기초케어가 하나도 안돼있다"며 자신을 타박하는 미용실 원장에게 "제가 지금 머리를 하러 왔지, 혼꾸멍나러 온 거 아니잖아요"라며 기존세 면모를 보인다. 또 "원하시니까 해주긴 하는데, 손상도 때문에 잘 나올지 모르겠어요"라고 공격받자 "원장님이 되게 하셔야지, 어"라고 받아친다. " 그리곤 "그렇게 안될 거 같았으면 내가 집에서 직접 했지, 여기까지 먼 길 안 오고"라고도 덧붙인다. 마지막 대사를 칠 땐 원장을 향해 턱을 치켜들고. 상대를 킹받게 할 줄 아는 강자다. 옆자리에서 당하던(?) 손님은 존경의 눈빛으로 그 개를 바라본다.
그 개는 키 180cm의 긴 키에 허리까지 오는 긴 머리(털)를 가졌다. 여름쿨톤의 금빛 털은 눈부시고 눈은 지나치게 반짝거린다. 그리고 중안부가 무척 길다. 그렇지만 돌출형이라 얼굴이 길다는 느낌은 잘 들지 않는다. 아름다우면서 멋있고 귀엽다. 나는 그 영상을 보고 단번에 그 개에게 매료됐다. 그 개의 이름은 김땅콩. 3살 수컷이고, 강제 중성화 수술을 당했다. 배변 훈련이 돼 있고 야외에서 배변을 봐야 해 하루 두 번 산책해야 한다. 그리고 그는 펭수를 만든 이슬예나 PD의 두 번째 '창조물'이다. 채널명은 '긍정왕 김땅콩' 나는 재빨리 구독을 누르고 지난 시리즈들을 학습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11월부터 유튜브 채널이 개설돼 꽤 많은 리스트가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압박면접, 어린이집 진상 학부모, 회식 때 청첩장 돌리는 동료, 불친절한 옷가게 직원 등 살면서 누구나 한 번은 겪을 법한 부조리(?)나 에피소드로 꾸려져 영상을 보고 있으면서도 다음 영상을 보고 싶어서 조급한 마음이 들었다. 김땅콩은 주로 부조리에 사이다 발언과 폭력으로 맞서는 영웅견으로 활약했다. 때론 요가 클래스에서 뉴페이스에게 뒤끝 작렬 질투를 보내기도 했다. 내레이션은 때론 김땅콩의 속마음을 대변하거나 시청자의 역겨움(!)을 대변한다. 출연진들의 메소드 연기도 리얼함을 더한다. 빵집에서 하나 남은 빵을 두고 배우님과 법정 다툼을 벌일 때 빵집 주인은 "빵집에서 정숙하세요!"를 외치고, 옷가게 알바생이면서 설치고 돌아다니는 김땅콩에게 "개나대네"라며 째려보는 불량한 직원 등은 실제인지 연기인지 분간이 안 간다. 결국 영상을 보는 내내 나는 올해 첫 폭소를 마음껏 터트릴 수 있었다.
김땅콩은 자신의 긍정적 마인드를 '개극호'라고 외치는 것으로 표현한다. 내가 잘 쓰는 유형의 단어는 아니지만, 김땅콩이 잘 살리니까 그건 그거대로 재밌다. 분명 수컷인데 말투는 아주머니와 MZ세대 Z세대를 망라해서 자꾸 빠져든다. 또 고난도 요가동작과 공중제비, 하늘다람쥐 같은 점프, 무술 등을 모두 할 줄 알아서 좀 신기하다. 어떻게 그렇게 날렵한 동작을...? 김땅콩의 옷을 걸치고 있는 본체의 정체가 꽤 궁금하지만, 펭수에서 겪었듯 실체를 캐는 것은 여기선 하지 말아야 한다. 김땅콩의 MBTI는 뭘까? 주량은? 세상에서 제일 웃긴 그 대형견이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