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을 망치는 '내정자들'

낙하산의 성급한 갑질

by 윤서A

옆자리 동료는 처음 봤을 때부터 뭔가 '싸한' 인상이었다. 은근히 사람을 깔보는 듯한 표정과 말투,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대화톤. 한 마디로 말을 섞기 싫은 스타일이었다. 대화가 서너 마디 이어지면 기분 나쁜 쪽은 어김없이 나였다. 대화 주제와 상관없이 자신의 주장은 관철시키려 하면서도 상대의 주장은 깔아뭉갰고, 다른 사람들이 전혀 관심 없는 주제로 점심시간을 잠식했다. 게다가 굉장히 모순적이기까지 해서, 이야기를 이어가다가도 남이 의견을 보태면 반대를 위한 반대를 일삼았다. 몇 차례 함께 점심을 먹고 대화를 하는 동안 나는 그와 상극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나는 그와 최대한 대화를 이어가지 않도록 했고, 밥을 함께 먹는 일을 피하기 시작했다.


모든 동료와 좋게 지낼 의무는 없으니, 한 사람을 피한다고 해서 내가 딱히 힘들어지는 일은 없었다. 내가 그렇게 대화를 피하려 했음에도 어쩔 수 없이 업무상 대화를 해야 하는 시간도 있긴 했지만 그 정도는 해야 했고, 또 감수할 수 있었다. 모든 팀원이 함께 밥을 먹는 날에는 나도 빠지지 않고 참석하며 '도리'를 다했다.


문제는 팀장이 그만두면서부터 시작됐다. 능력 있고 성격 좋은 팀장의 퇴사 소식은 나에게는 꽤나 충격적이었다. 각자의 인생이 있으니 모든 직장인의 입사와 퇴사는 자연스러운 일이었지만, 이제 새로운 팀장을 만나야 하는 팀원으로서는 싱숭생숭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다행히 이 험한 사회생활에서 좋은 상사를 만나 꽤나 좋은 근무환경에서 지냈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인생은 쉽지 않은 것이다. 절차상 팀장이 퇴사하면 새로 채용공고를 내고 외부에서 인재를 채용해야 했다. 새 팀장을 뽑기 위한 공고 절차가 시작됐다.


그즈음 옆자리 동료는 나를 포함한 다른 팀원들과 밥을 먹는 자리에서 공공연히 자신이 "낙하산"임을 홍보했다. 알고 보니 그는 한 간부의 추천으로 입사한 케이스였다. 뒷배 없는 직장인 무수리 중 한 명인 나는 그 사실이 꽤나 아니꼬웠다. 하지만 그는 낙하산으로 입사한 앞선 사례들도 설명하며 자랑하듯 늘어놨다. 대부분 낙하산으로 입사해, 적성에 맞지 않아 1년 이내 그만뒀다는 그런 무책임한 이야기들. 심지어 거쳐간 자리들은 경쟁률이 꽤 높은 곳들이었다. 나는 왜 자신의 입사 과정이 불공정했다는 것과 그마저 1년도 못 채우고 입사와 퇴사를 반복하는 그런 약점을 저렇게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일부러 내세우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다른 동료가 귀띔하고 나서야 그 저의를 파악했다. "알아서 자기한테 잘하라는 거잖아요." 그런 인간이라면 환멸이 났다. 나는 더더욱 그와 티 나지 않게 멀어지고 싶었다.


어느 날 모든 팀원이 모인 자리에서 옆자리 동료는 갑작스레 출마선언을 외쳤다. "팀장 자리 내가 지원하려고요. 시스템을 잘 모르는 사람이 와서 헤매는 것보다 내가 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팀원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본인의 의지를 뭐라고 하겠느냐가 첫 번째였고, 두 번째는 그 상황이 본능적으로 싫었기 때문이다. 다른 팀원의 속내는 알 수 없지만 전반적으로 지지하는 분위기가 아닌 건 확실했다. 평소 남을 깔아뭉개던 그녀가 팀장이 되면... 그보다 자격이 있나? 부정적 기운이 감돌던 침묵을 옆자리 동료는 자신에 대한 지지로 오해하고 고무된 듯 보였다.


채용공고에 지원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지만, 그 자격이 옆자리 동료에게 정말 있는지는 의문이었다. 낙하산으로 여러 개의 직장에서 1년도 채우지 않고 옮겨 다닌 것도 모자라, 지금 자리도 근무한 지 아직 1년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걸핏하면 자리를 비우고 돌아와선 한숨만 푹푹 내쉬며 일에 대한 환멸을 대놓고 드러내더니, 이제와서 팀장에 지원하겠다고? 곧 그만둘 것처럼 지겨워하더니 무슨 마음과 무슨 자신감으로? 직원은 싫지만 관리자는 좋다는 건가? 온갖 부정적 생각이 떠오른 건 전적으로 평소 옆자리 동료가 보이던 그간의 행실 때문이었다. 채용이 저 사람에겐 장난인가? 아마 면접에서 이런 부적절한 자격이 드러나고 검증될 것이다. 막연히 생각했다.


하지만 상황은 심상치 않게 돌아갔다. 옆자리 동료는 퇴사를 앞둔 팀장에게 어필을 하는가 싶더니, 몇 번의 면담을 거쳐 사실상 내정자가 되어버린 듯했다. 나로선 충격적이고 우스운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아니, 이게 된다고?" 사무실에는 어색한 공기가 깔리기 시작했다. 냉정히 생각해서 물론, 팀장 지원은 자유다. 근무 기간이 1년이 채 안 됐어도 지원하고 싶으면 하는 것이다. 이론상 업무 시스템을 잘 알고 있으니 못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정말 이게 최선일까? 이력서를 접수하기도 전에 누군가의 지원 기회를 박탈하는 게 정말 맞는 건가? 그그 정도로 그녀는 정말 적임자인가? 그리고 정말 그렇게 미리 내정하기로 했다고 쳐도, 이걸 대놓고 드러내는 게 옳은 일인가? 채용공고를 보고 설레고 긴장된 마음으로 이력서를 접수할 예비 지원자들은 이 사실을 알 리가 없을 텐데, 이건 정말 크나큰 부조리가 아닐까?


하지만 윗사람들이 그렇게 결정한 데도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해서 실제로 내가 뭘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게다가 업무수행에 인성이 새삼 그렇게 중요한 요소일까 싶기도 했다. 윗사람들이 팀원 간 분쟁을 알 게 뭐람? 게다가 그녀는 전형적인 강약약강 스타일이라 우리에게 하던 무례한 행동들을 상사에게도 했을 리는 없었다. 그렇다면 그녀는 무난한 팀장 후보자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전히 불만스러운 감정이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더 정확히 표현하면 불만보다는 불안이었다. 내 오랜 사회생활 경험으로 누적된 '촉'이라는 이름의.


그 불안의 실체는 곧바로 드러났다. 비공식적으로 내정자가 된 그녀가 본격적으로 팀원들에게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팀장이 자리를 비울 때마다 문제의 그 '내정자'는 업무 인수인계를 핑계로 팀원 간 회의를 주재했는데, 그건 냉정히 생각해도 불필요한 행위들이었다. 게다가 회의 내용은 모두 쓸모없는 일들이었다. 그는 벌써 팀장이라도 된 듯 자신의 업무를 어떻게 나눠야 할지 의견을 내라고 팀원들에게 강요했다. 이 모든 일이 채용공고가 제시한 이력서 접수 기간 전부터 시작됐다는 게 기가 찰뿐이었다. 그 내정자는 다른 팀원이 조심스레 "근데 아직 채용 전형 진행 중이지 않나요?" 물어보자 "생각해보시라구요" 라는 답으로 가볍게 묵살했다.

마침내 팀원들의 불만도 수면 아래서 터졌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은 꽤 많았고, 모두 이 상황을 황당해했다. 정말 이렇게 후임 팀장 채용이 끝나버린 걸까? 모두의 의문. "말이 안되잖아요?" 의견을 보탠 내게 팀원은 또 하나의 사실을 알려줬다. "앞쪽 B 팀 OOO 씨도, 사전에 이야기 다된 상태에서 채용공고에 지원해 합격했어요." 또 다른 내정자였던 그 사람은 사무실에서 제일 시끄러운 사람이었다. 모든 대화를 공격으로 받아들이고 싸움부터 거는 사람. 내가 절대 엮이기 싫은 또 다른 사람이기도 했다. 자리를 옮긴 지 얼마 안돼 이런 사실들을 알게 된 나는 혼란스러웠다. 모든 회사가 비슷하겠지만, 결국 여기도 개판인 것이다.


긴 한숨이 나왔다. 어떤 채용은 사실상 내정자가 있으며, 형식적인 절차만 거치는 것이라는 말은 몇 번 들은 적이 있다. 사실은 사전에 서로 다 이야기된 거라고. 그 소문이 정말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실제이며, 나는 그 실제를 지금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이 모든 과정들이 사실이고, 이대로 채용이 진행된다면 나는 엮이고 싶지 않은 사람을 상사로 맞아야 하는 비극을 곧 겪어야 한다.


내정자는 담배를 피우고 들어와 아무렇지 않게 담배연기 냄새를 퍼트리며, 팀원들에게 또 하나의 비효율적인 시스템 도입을 생각해 보라고 또 재촉했다. 얼핏 들어도 전혀 불필요한 일이어서 대부분이 "굳이 할 필욘 없을 거 같다"고 의견을 냈고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으나, 그녀는 "다시 한번 생각해 보세요"라고 굳이 또 다음 회의 일정을 잡았다. 그 일은 업무상 전혀 불필요한 일이었지만, 자신이 미리 팀장으로서 대장질을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아무리 양보한다 쳐도 같은 팀원으로서 할 일은 아니었다. 어서 팀장으로서 우리를 발 아래 두고, 맘껏 성질 부리고 싶다는 말로밖에들리지 않았다.


그 뻔한 속내에 나는 또다시 인간혐오를 느꼈다. 이제 팀장이 회사를 그만두는 며칠 뒤부터, 그녀는 본격적으로 팀장 행세를 하면서 이런 일들을 일삼을 것이다. 친구에게 일련의 일들을 털어놓으니,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니, 일단 기다려보라"라고 나를 위로했다. 아직 새 채용공고의 이력서 접수기간이 시작되기도 전에, 자칭 내정자가 행하는 갑질을 그 친구도 꽤나 황당해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부조리와 비효율, 그리고 비상식적인 일들이 가득한 직장 사회에서 새삼 공정을 운운하는 게 멋쩍고 우습긴 하지만, 장기적으로 조직을 망치는 요소는 점진적으로 없어져야 하는 게 맞다. 사회가 정의로워 알아서 그런 요소들을 솎아낼 수 있다면 회사 다닐 맛은 두 배 정도 커질 것 같지만, 인생은 그렇게 생각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팀장 채용이 어떤 방식으로 마무리될지 궁금하기도 하면서, 조직사회의 병폐에 또 한 번 진절머리가 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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