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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켜서 조금은 가벼워지는 기분

by 모모루

H와 나는 어느 대학원 부설 소설창작과정의 교실에서 만났다.

그녀를 처음 봤을 때, 나는 우리가 친구가 되리라는 걸 직감했다. 어떤 운명론적 예지는 아니었고, 내가 이 사람과 친해지기 위해 노력이란 걸 하겠구나,라는 확신이 강하게 들었다고나 할까.

이건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는데, 나는 소심하고 낯을 가리는 데다 근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회의감에 빠져 있는 인간으로, 누구와 먼저 친해지고자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기 때문이다.

한 가지 신기한 점은 평소 대인기피자처럼 굴다가도 동기가 확실해지면, 예컨대 저 사람과 친해지고 싶다던가, 저 사람과는 어색하지 않게 시간을 보내야만 한다와 같은 뚜렷한 이유가 생기면, 나는 상대에게 꽤 저돌적이고, 능숙하게 다가간다는 것이다.

H와 친해지기 위해 어떤 개인적 노력을 쏟았는지 지금으로선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쨌거나 나는 그녀와 가까워지는 데 성공했다.





한 학기 동안 아싸였던 나를, H가 동급생 몇몇이 모여 만든 소설 합평 스터디에 끼워줬다.

나는 학교 수업보다 스터디 가는 날이 더 재미있었다. 함께 글 쓰는 동료들, 일명 글벗이라 부를 사람들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나보다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써온 사람들로서 최근 소설의 경향이라던가 신춘문예의 동향 같은 정보들에 빠삭했고, 나는 듣도 보도 못한 작가와 작품의 이름들을 줄줄이 꿰고 있었다. 일자무식이나 다름없는 나로서는 그들과 어울리는 것만으로도 새로 알게 되는 게 많았다.

내가 쓴 형편없는 글에는 대부분 냉정한 비평이 쏟아졌지만, 그 와중에 억지로 보탠 듯한 작은 칭찬 한두 마디를 들으면, 희망의 실 한 가닥을 붙잡은 기분으로 곤두박질치는 자존심을 붙들곤 했다.

나는 아마도 훨씬 더 일찍 소설 쓰기를 포기했을 텐데, 덕분에 한동안 더 붙잡고 있을 수 있었다.

학교 과정이 끝난 뒤에도 스터디는 이어졌지만, 나는 1년쯤 지나 캐나다로 도망치듯 떠났다. 몇 년에 걸쳐 다른 사람들도 각자의 이유로 하나둘 모임을 그만두었다.

스터디 멤버 중 현재까지 여전히 소설을 쓰고 있는 이는 H뿐이다.





내가 그녀를 사랑한 이유는 그래서였을까? H가 우리 중 유일하게 소설을 포기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나는 직감했었을까? 아니면, 글을 포기하고 다른 일을 하겠다고 나선다면 결단코 뜯어말릴 만큼, 그녀와 문학은 너무도 잘 어울린다고 믿는 내 판단—그게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고픈 마음과, 나의 포기와 실패를 상쇄하기 위한 대리만족과, 어떤 상황에서도 계속 소설을 쓸 거라는 그녀의 확신에 찬 태도에 대한 동경 같은 것이 작용한 지도 모르겠다.






H를 만나면 나는 좀 달라진다. 평소 비치는 대외적인 모습이나 가족이나 오래된 친구들 앞에서의 나와는 많이 다르다.

머릿속 어딘가 잠들어 있던 회로 하나가 깨어나 작동하는 것 같다. 의견과 감정을 제대로 설명하고 싶어서, 생각이 말을 앞지르고, 단어 하나를 뱉을 때도 신중해진다.

말이 느려지고, 조심스러워지고, 온전히 진심만을 담을 때의 기분은, 약간 긴장되면서도 충만하다.






이런 대화를 누구 하고나 할 수는 없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고문과도 같은 대화가 될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글쓰기를 논할 때의 나는 손이 오그라들 정도로 진지해지기 때문이다. 상대가 글을 진지하게 쓰는 사람이 아니고서는(어쩌면 그런 사람들 조차) 도저히 받아주기 힘들 만큼 심각한 진지충이 된다.

따라서 가족이나 오래된 친구들 앞에선 퍼질러진 모습이나 벌거벗은 몸뚱이는 보일지언정 이 모습은 도무지 꺼내 보일 수 없다. 그들이 아는 나는 비속어와 욕이 입에 붙은, 시시껄렁한 농이나 쏟아내는 인간에 가까운데, 그런 내가 갑자기 “글쓰기란 무엇인가” 따위의 말을 꺼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행히 H는 글쓰기에 관한 한 나보다 더 진지한 부류로서, 그런 점에서 우린 잘 맞는다.






H에게 나는 그동안 속으만 품고 있던 깊고, 진지하고, 심각한, 그러니까 내게 있어서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글쓰기에 대한 고단함과 내가 얼마나 글쓰기에 진심인지(나는 이걸 마음껏 표현하기가 영 쑥스러운데, 열망이나 욕심에 비해 재능이 따라가지 못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지금 쓰고 있는 글과 앞으로 쓰고 싶은 글이 무엇인지(이 또한 거창하고 장황해서 입 밖으로 꺼내기가 민망할 지경이다)―그런 속마음까지 늘어놓는다.

그러다 어느 순간 부끄러움이 밀려든다. 상대방이 어떻게 들을까 창피한 게 아니라 내가 스스로에게 창피해진다.

말하다 보면, 내가 글쓰기에 품고 있는 불순한 의도를 알아차리게 된다. 글을 통해 해소하려는 허영과 욕심이 내 안에 얼마나 많은지 실체를 마주하게 된다.

나는 순수하게 글쓰기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걸, 부인할 수 없다. 그 욕망 뒤엔 인정받고 싶고, 관심받고 싶고, 특별해지고 싶은, 애정결핍이 불러온 그림자만이 어른거린다.





마음에 품고 있는 것들이 고스란히 글이 된다고 믿는다. 내가 쓰는 글이 솔직하고 담백했으면 좋겠다. 과장하거나 꾸미지 않고도 진심이 전해지는 글, 그런 글을 아주 잘 쓰고 싶다. 그러려면 내 마음도 그래야 할 텐데,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걸 확인하게 되니 좋은 글을 쓰기는 애당초 글렀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숨겨두었던 마음들을 죄다 쏟아내고 나면, 기분이 가뿐해지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다행히도 H 앞에서는 이런 나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지나치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설사 내 불순한 욕망을 들킨다 할지라도 H는 그것을 글을 쓰는 과정에서 맞닥뜨리는 합당한 고뇌쯤으로 해석해 주기 때문이다. 심지어 나만큼이나 진지하고, 진심으로 반응해 주기 때문에, 어떤 땐 내가 조금은 괜찮은 사람처럼, 그러니까 적어도 글을 쓸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는 착각이 들게끔 해준다.





글을 쓴다는 건, 마음속 어딘가를 매번 들키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치부를 들켰다고 해서 반드시 상처로만 남는 건 아니다.

비밀이 입 밖으로 흘러나올 때, 그제야 스스로에게 솔직해 지기도 한다.
그 감각은 무너짐이라기보다, 내려놓음에 가깝다.

들킨다는 건, 생각보다 조금 더 가벼워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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