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은 진작에 깬 지 오래지만 한참을 그대로 누워있었다. 비단 오늘뿐만이 아니다. 겨울이면 나는 이 패턴을 반복했다. 침대에서 일어나기가 왜 이토록 버거운지 모를 일이다. 척추를 세워 직립으로 서서 중력을 버티는 그 모든 과정이 귀찮다.
대부분은 그냥 눈을 감고 있다. 눈을 감은 채로 절대 완수하지 못할 거창한 계획을 세우거나, 지난날 뱉은 어리석은 말과 행동 따위를 되새기며 의미 없는 자아비판의 시간을 갖는다. 눈을 뜨고 있을 때는 스마트폰 화면을 속절없이 넘기며 시간을 죽인다.
이런 추세라면 점심을 훌쩍 넘어서까지 누워있을 수 있다. 온갖 번뇌에 시달린 뇌가 제풀에 지쳐 도로 잠들어버릴지도, 다시 눈을 떴을 땐 어느새 해가 지고 밤이 찾아왔을지도 모른다. 낮과 밤이 뒤바뀐 생활이 반복되다가 결국엔 극심한 우울증이 도졌을지도 모르겠다.
다행히도 영원히 일어나고 싶지 않은 열망과 상관없이 나는 점심시간이 되기 전에 일어난다. 왜냐하면 그때쯤이면 밤새 오줌으로 가득 찬 내 방광이 더는 버티지 못하고, 또한 내 늙은 개의 방광도 고려해 줘야 하기 때문이다. 내 방광과 늙은 개의 방광을 비우기 위해 오전이 다 가기 전에는 어찌 됐든 일어나야 하는 것이다.
화장실로 뛰쳐 들어가 방광을 비운 뒤, 이번에는 늙은 개를 위해 서둘러 바깥으로 나간다.
일요일이었고, 오전 열한 시를 막 넘기고 있었다. 해는 정점을 향해 솟아오르고 있었다. 밤새 꽁꽁 얼어붙었던 땅이 녹기 시작한 때이고, 너무 이르지도 너무 늦지도 않은, 하루 중 적당한 때였다. 무엇에 적당한 거냐고 묻는다면 명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어쨌거나 적당한 때ㅡ라는 생각이 들었다.
골목 오르막을 오르는데 뒤에서 착착착하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젊은 남자가 빠른 걸음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천천히 걷는 우리를 지나 칠 때 보니 어두운 체크무늬 잠옷바지에 검은색 점퍼를 되는 데로 걸쳤고, 머리는 까치집이었고,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두 손에는 신라면 두 봉지와 1.5리터짜리 생수 한 병을 들고 있었다.
그의 벗은 발은 칼바람에 벌겋게 변해 있었다. 양말이라도 좀 신고 나오지, 나는 속으로 혀를 끌끌 찼다.
맨발에 슬리퍼를 끌고 착착착 소리를 내며 앞질러간 남자가 바로 앞 빌라 건물 안으로 쏙 들어갔다.
그의 벌겋게 얼은 발이 온기를 찾겠구나 싶어 안도감이 든다.
남자는 오르막 아래 편의점에 라면을 사러 갔다 온 게 분명하다. 출근을 할 필요가 없으니 그도 나처럼 느지막이 일어났을 테다. 냉장고를 열어봤는데 마땅히 먹을 것도, 마실 물도 없었던게지. 이 추운 날씨에 가게까지 갔다 오기란 죽기보다 귀찮았을 테지만 고픈 배를 채우려면 어쩔 수 없지 별 수 있나.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오르막 끝까지 올랐다.
언덕 위에는 국기원이 있다. '국기태권도'라고 새겨진 거대한 비석이 눈에 들어온다. 푸른 지붕의 건물 뒤편으로 작게나마 정원이 꾸며져 있고 철봉 같은 운동기구 몇 개가 놓여 있다. 공원이라고 써 붙여 놓았지만, 이 협소한 공간을 공원이라고 칭하는 게 나로서는 영 마뜩지 않다. 그래도 이곳은 풀과 나무가 있고 흙을 밟을 수 있고 차도 다니지 않아 개와 산책을 하기에 나쁘지 않다.
일요일, 국기원은 문을 닫았고, 공원에는 아무도 없었다. 개가 방광을 비우는 동안 나는 그늘을 피해 볕이 직선으로 내리쬐는 곳에 섰다. 눈을 감고 하늘을 향해 얼굴을 쳐들었다. 온몸을 꽁꽁 싸맨 탓에 피부가 드러나 있는 신체부위는 얼굴이 유일했으므로 햇빛을 받으려면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한파는 몇 주째 지속되고 있었다. 마치 칼날이 얼굴을 저미듯 바람이 날카롭다. 얼음처럼 차가운 대기를 뚫고 햇볕이 내리 꽂힌다.
일요일 오전 열한 시의 햇빛.
춥고 바람이 날카롭고, 그러나 볕은 쨍쨍하다. 어색한 조합이다. 지난 십일 년간 겪은 겨울과는 딴판이다.
내가 살았던 타국의 도시는 겨울이면 비가 내렸다. 11월부터 4월까지 내내 비가 내렸고, 비가 오지 않는 날도 간혹 있으나 그마저도 구름에 덮여 해를 볼 수 없었다. 나는 겨울마다 계절성기분장애를 앓았다. 이 문제를 겪는 건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다. 해를 보지 못하는 날이 몇 달째 지속되면, 비 내리는 거리 위를 걷는 사람들의 어깨 위로 우울의 그림자가 내려앉았다.
겨울시즌이 되면 일명 해피라이트라고 하는 광치료용 램프가 어김없이 등장했다. 마트나 드럭스토어 어디서나 팔았고, 아마존 같은 온라인쇼핑몰에서도 쉽게 살 수 있었다. 나도 사서 써보았는데, 사실 아무 효과랄 게 없었다. 매일 일정시간 해피라이트를 쬐어도 우울하고 무기력한 건 그대로였다.
그래도 겨울이 오면 나는 잊지 않고 해피라이트를 꺼내 책상에 두었다. 돈을 주고 샀는데 쓰지 않는 것도 아까웠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야 낫겠지 하는 마음도 있었고, 그러다 나중에는 일종의 루틴이 되어버렸다.
어둑어둑한 아침이면 책상에 앉아 불그스름하고 흐릿한 광도의 빛 위로 얼굴을 갖다 댄 채 글을 썼다. 그 인공의 빛에 기대어 길고 긴 우울의 계절을 버텼다.
그곳을 떠나올 때 해피라이트는 챙기지 않았다. 한국의 겨울은 비가 오지 않으니 필요하지 않을 테고, 필요하지 않은 물건까지 전부 가져갈 수 있는 상황 또한 아니었으므로, 나는 그것을 함께 일하던 동료교사에게 주었다. 그녀는 이미 하나 가지고 있다면서도, 내가 준 것이 훨씬 크고 최신모델이라며 좋아했다. 내 해피라이트를 누군가 잘 써줄 거라 생각하니 마음이 놓였다.
떠나올 때 최대한 짐을 줄여야 했기 때문에 그처럼 가진 물건의 대부분을 버리거나 주변사람들에게 나눠 줬다. 해피라이트처럼 한국에서는 딱히 필요 없거나,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물건들은 죄다 처분했다. 추리고 추려서 짐을 쌌다. 자동차도 팔았고, 이민 온 지 4년째 되던 해, 세상을 떠난 외눈박이 개의 유골도 숲 속 나무 아래 묻어주었다.
십일 년의 타국살이가 고작 이사용 박스 다섯 개에 실렸다. 간소해서 좋네, 하면서도 약간은 허탈했다.
한겨울의 쨍한 햇볕 아래 해피라이트를 떠올린다. 누군가의 어둑어둑한 하루 어디쯤에서 흐릿하게나마 불을 밝혀주고 있을까?
그곳에 두고 온 다른 물건들도 떠올랐다. 아침마다 글을 썼던 코너형 흰색 책상과 녹색 체크무늬 커버를 씌운 바퀴 달린 의자, 블랙프라이데이에 구입했던 사십 인치 중국산 티브이 같은ㅡ 아꼈지만 가지고 올 수 없었던 것들.
창문 너머 숲이 보이던 내 작은 골방과, 그 숲 어딘가 나무 아래 묻은 외눈박이 개가 떠올랐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 시간들이, 낯선 땅에서 관통하던 숱한 감정이 떠올랐다.
서글프고 아련해지는 이 감정의 정체는 아마도 그리움일까.
그러나 애수에 잠기기엔 이곳의 겨울 햇볕은 너무도 쨍하고 밝고 강렬하다. 그런 점에서 고국의 겨울이 썩 마음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