쪼개진 블록 사이, 금이 간 아스팔트 틈새마다 잡초는 올라와 있었다.
더럽고, 차갑고, 딱딱하고, 메마른―온통 회색빛 도시의 길 위로도 초록빛 움큼은 점점이 있었고, 내 늙은 개는 귀신같이 그것을 찾아내어 위로 오줌을 찍 갈겼다.
캐나다에 살던 지난 십일 년간, 우리는 침엽수로 빽빽한 숲과 푸르른 잔디와 반짝이는 호숫가와 낙엽으로 뒤덮인 아름다운 길을 걸었다. 해외살이는 여러모로 고단했지만, 개는 그곳에서 행복했다. 한국으로 돌아오기로 결정을 한 뒤, 유일하게 마음에 걸렸던 건 다름아닌 내 개였다. 개가 사랑하는 삶의 터전을 떠나게 만드는 게 못내 미안했다.
나와 개는 이제 도시 속 삭막한 아스팔트 위를 걷는다.
개는 사실 한국의 이 동네가 처음은 아니다. 캐나다로 가기 전까지, 짧게나마 이곳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지금에 와서는 그 시절은 기억하지 못하는 듯 하다. 하긴 이곳에서 산 기간은 고작 이 년 반이고, 나와 함께 캐나다로 건너가 십일 년을 떠나 있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요즘 나는 개를 데리고 동네 구석구석 열심히 걸어 다닌다.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이처럼 몸으로 장소를 익히는 것이다. 어쩌면 개가 유년의 기억을 되살리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다시 돌아온 서울의 이 동네는 어떤 의미에서 요새 같다. 아래쪽은 복잡한 번화가로 고층빌딩과 상업지구가 마치 해자(垓子)처럼 둘러싸고 있다. 그 거대한 혼돈의 구역을 벗어나려면 언덕을 올라야 한다.
오르막을 따라 위로, 위로 오른다. 밀집해 있던 상점과 식당은 드문드문해지고, 인파가 잦아든다. 숨이 턱까지 차 오를 즈음에 이르러서야 사람이 사는 거주지역이 나타났다. 끝을 알 수 없는 언덕을 따라 좁은 골목길들이 거미줄처럼 얽히고, 크고 작은 집들, 낮은 층의 원룸 건물과 높다란 담벼락에 둘러싸인 주택이 촘촘히 들어서 있었다.
아래쪽 혼돈의 해자(垓子)에 빠지지 않으려면 나와 늙은 개는 그저 이 언덕 꼭대기를 벗어나지 못한 채 미로 같은 골목길을 탐험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처음에는 좁은 골목길은 피하고 부러 조금이라도 넓은 길을 찾아다녔는데, 차들이 대로만큼이나 많이 지나다닌다. 차도와 인도의 구분이 없으니 아슬아슬하다. 되려 차 한 대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은 골목길 쪽은 차가 잘 다니지 않는다. 그 사실을 알고부터는 좁디좁은 골목길만을 골라 걷는다.
걱정과 달리, 늙은 개는 골목길을 흥미로워했다. 근처에 있는 손바닥만 한 놀이터와 건물주위를 공원처럼 꾸며놓은 어린이 도서관은 차가 다니지 않아 산책하기 편했지만, 어쩐 일인지 개는 그쪽으로 가는 건 흥미 없어했고, 얼기설기 미로 같은 좁은 골목길을 선호했다.
도시의 골목은 아스팔트 길이지만, 개는 마치 보물 찾기라도 하듯, 틈새마다 솟아있는 풀들을 찾아내어 오줌을 찍찍 갈겼다. 무엇보다 좋아하는 스폿은 전봇대였는데, 골목어귀마다 박혀있는 전봇대를 하나도 지나치지 않고 일일이 냄새를 맡았다. 굵게 솟은 기둥은 개가 다리를 들고 오줌을 갈기기에 안성맞춤인 데다 아마도 동네의 다른 개들 또한 부지런히 체취를 남겨놓았을 것이다. 개는 어떤 전봇대에서는 코가 붙어버렸나 싶게 오래오래 냄새를 맡곤 했는데, 그러면 나는 그 옆에 멍하니 서서 개가 자신의 업무를 끝내기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이었다.
잡념이 많은 나와 달리, 개는 그곳과 이곳을 비교하지도, 의미를 부여하지도, 기억에 매달리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