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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루 Jun 02. 2022

애도의 시간

두 번째 이야기

"애도의 시간을 보내고 있군요."


심리 상담가는 그렇게 표현했다. 애도의 시간.

"누구나 익숙했던 무언가와 이별을 할 때 그것을 받아들일 만한 시간이 필요해요. 단순히 옆 동네로 이사하는 문제가 아니잖아요.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간다는 것은 인생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한 아주 큰 일이에요. 나를 둘러싼 모든 환경이 180도 바뀌는 경험이 될 거고요.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해요. 느껴지는 그 감정들을 인정해주세요. 그것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나를 거쳐 흘러가도록 두는 거예요. 자연스럽게요. "

심리상담가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기분이 훨씬 나아짐을 느꼈다. 그렇다. 나는 이별하는 중이었다. 생의 터전이었던 이곳과 익숙한 문화와 언어와 가족과 친구들과, 그리고 지금까지의 나의 삶과.            

작별이란 본디 아쉽고 슬픈 것 아니었던가. 아무렇지 않다면 그것이 도리어 이상한 노릇이었다. 상담가의 말처럼 이런 감정이 드는 것은 그러니까 당연한 것이었다. 이를테면 비자를 발급받기 위해 계좌의 잔고증명서를 첨부하거나 신체검사를 받는 등의 꼭 거쳐야 하는 행정적 절차와 같이 내가 이 여정에서 맞닥뜨려야만 하는 피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절차였던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신변을 정리하는 다른 어떤 절차들보다 더 중요한 것인지도 몰랐다. 나에게는 스스로에게 작별을 고할 수 있는 시간과 여유가 필요했다.






캐나다로 떠나기 바로 직전까지 나는 그 심리 상담가와 서너 번의 상담을 더 받았다. 그 상담으로 나를 짓누르던 불안과 두려움이 말끔히 사라졌냐고 묻는다면, 아니다. 나는 여전히 불안하고 두려웠고 시시때때로 무기력해졌다. 하지만 그 상담은 엉켜있는 감정의 실타래를 풀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해 주었다. 스스로 알아차릴 수 없었던 내 감정의 원인과 이유를 나로 하여금 인식하게 해 주었다는 것이다. 그것 만으로도 문제의 절반이 해결되는 느낌을 받았다. 뭐랄까, 포기 혹은 체념과도 비슷하게 마음이 비워지는 것을 느꼈고, 마음속 혼란들이 받아들여졌으며 그러자 훨씬 견딜만해졌다. 나는 스스로를 그렇게 달래가며 남아있는 힘을 쥐어짜 짐을 싸고 앞으로 한동안 만나지 못할 친구와 지인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며 바쁜 시간을 보냈다. 처리해야 일과 정리해야 하는 일들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그러던 중에도 마음은 오락가락했다. 어떤 날은 기분이 썩 괜찮았지만 어떤 날은 무기력했으며 또 어떤 날은 날아갈 듯 홀가분하다가 그다음 날은 주저앉아 울기도 했다. 나는 육체적인 피로감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마치 갱년기 절정에 다다른 여자처럼 미친 듯이 요동치는 불안정한 심리 상태도 추슬러야 했다. 한마디로 몸과 마음이, 안팎으로 매우 고된 과정이었다. 하지만 어찌 됐든 시간은 흘렀고 끝마쳐야 할 일들은 점차 마무리가 되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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