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갑작스럽게 시작된다.

첫 번째 이야기

by 모모루



아빠는 나에게 캐나다에서 살아보겠냐고 물었다. 수십 년 전에 캐나다로 이민 간 할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몇 주가 지난 뒤였다. 할머니가 살던 방 두 개짜리 작은 아파트가 유산으로 남겨졌다.

당시 나는 서른셋의 백수였다. 그다지 적성에 맞지 않고 벌이도 시원찮았던 직장마저도 소설을 쓰겠다며 집어치운 지 2년이 다 되어 가고 있었다. 어느 대학 부설의 소설 창작 과정을 다니며 습작을 했지만 그곳에서 깨달은 것은 내 재능과 역량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과 세상에는 글을 잘 쓰는(그럼에도 불구하고 등단조차 하지 못한)이들이 아주 많다는 사실이었다. 작가가 될 만한 그릇이 내 안에 없음을 깨닫기까지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초반의 원대한 포부가 민망할 정도로 매우 신속하고도 결단력 있게 소설 쓰기를 포기했다. 후폭풍은 꽤 거셌다. 나는 지독한 열패감에 시달리며 여러 달을 두문 분출하고 있었다. 미래는 한없이 어둡고 불투명했으며 앞으로 무엇을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아빠의 제안을 받았을 때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그럴듯한 도피처가 제때 등장한 셈이었다.






캐나다로 떠날 날짜는 빠르게 잡혔다. 지체할 이유도, 무엇인가 그만두거나 정리할 게 전혀 없었다. 이미 머물 집이 있었으므로 어느 도시로 가야 할 지 조차 이미 정해져 있었다. 훌쩍 떠나기에 나처럼 적합한 사람이 또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론 홀가분했다. 가까운 친구들은 모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거나 그도 아니면 커리어를 쌓으며 출세 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나는 그들과 달리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었다. 마지막 남아있던 자부심이던 소설 쓰는 사람이 되겠다는 꿈조차 좌절된 참이었다. 결혼은 왜 하지 않느냐는 질문과 나이가 더 들면 아이 낳기 힘들어지니 서둘러야 한다는 오지랖에 시달리고 있는 중이기도 했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지긋지긋하게 느껴졌고 지금까지의 낡은 삶은 갖다 버리고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다면, 숨통이 트일 것 같았다.







막상 떠날 날짜가 다가오자 불안감이 커지기 시작했다. 처음의 흥분과 호기로움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낯선 나라로 떠난다는 것이 현실로 다가오자 두려움이 밀려들었다. 나는 변화나 모험 따위를 즐기는 사람이 아니었다. 항상 익숙한 것을 선호했고 예측 가능한 범위 안에서 행동할 때 안정을 찾았다. 그런 내가 삼십 중반에 이르러 말도 통하지 않는 외국에, 그것도 아예 살러 간다니, 그 사실을 직감하기 시작하자 두려웠다. 밤에 자려고 누우면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그 바람에 뇌는 점점 더 각성 상태가 되기 일쑤였다. 불면이 시작되었다. 어렵게 잠이 드는 날 조차도 낯선 곳에서 길을 잃고 밤새 헤매거나 발목에 흡사 쇳덩이가 달린 것처럼 아무리 용을 써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제자리걸음만 하는 악몽에 시달렸다. 잠을 자지 못하는 날이 이어지자 심각한 무기력증이 덮쳤다. 짐도 싸야 하고 하루하루 바쁘게 움직여도 모자랄 판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이러다가는 이민을 포기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무런 희망도 목적도 없던 때, 운명이 마치 내 편이 되어준 듯한 기가 막힌 타이밍에, 한줄기 빛과 같은 탈출구가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것마저도 감당하지 못하고 주저앉아버리는 나약한 인간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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