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야기에 대하여
이야기.
나는 그다지 특이할 것 없고 경제적으로도 그리 넉넉지 못한 성장기를 보냈지만 부모님 덕에 몇 가지 사치를 누리고 살았다. 그 중 한 가지가 이야기다. 이야기를 잘 하시는 아버지 덕에 나는 이야기 재벌가의 딸로 살 수 있었다. 아버지의 많은 이야기 중에서도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생생하다. 아버지는 늘 할머니에 대해 마치 눈앞에 계신 듯 자세히 말씀해 주셨다. 그래서 나도 한 번도 뵌 적도 없는 할머니와 같이 산 듯 한 착각이 들 정도다. 비록 직접 뵌 적은 없어도 제법 할머니가 잘 하시던 것들을 흉내 내기를 잘 낸다. 할머니에 대한 아버지의 그리움은 나의 그리움이 되고 아버지의 이야기를 통해 전해지는 할머니의 훌륭한 모습을 바라보며 살다 보니 어느 새 나도 조금은 할머니를 닮아 있는 것 같다. 아버지만큼 훌륭한 이야기꾼은 아니더라도 그 비슷한 일을 나도 흉내 낼 수 있다면 내게도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이들이 있고 또 하고픈 이야기가 있다.
부모님의 맞벌이나 바쁜 학업으로 이야기를 들을 권리를 빼앗긴 가엾은 우리 청소년들...그들에게 내가 받은 이야기의 축복을 나누고 싶다. 나는 좋은 친구들 덕분에 아주 행복한 십대를 보냈다. 그래서 나는 모든 청소년들이 행복해야 한다고 믿는다. ‘왕따, 학교폭력, 자살, 게임 중독, 심지어 교실 애정 행각’ 이라는 수식어들로 그 아름다움이 가려진 힘겨운 요즘 십대들...그러나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이보단 훨씬 더 멋진 일들이라고 스스로 깨닫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그들에게 나의 십대를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나이 이제 마흔. 20년도 더 된 나의 청소년기 이야기는 강산이 두 번도 더 변한 지금 여러모로 전설로나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은 사실 수천 년 전에 비해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는 옛 교수님의 말씀을 믿고 싶다.
하얀 패모는 6월의 탄생화다. 잎새가 난처럼 뻗고 꽃은 작은 튤립처럼 생겼다. 유학 생활 3년 째, 긴장을 풀기 위해 인터넷에서 시를 찾다가 우연히 발견한 사이트에서 알게 되었는데 이 꽃을 처음 본 순간 나는 호기심이 생겼다. 그 또박또박한 작은 생김에 붙여진 꽃말은 뜻밖에도 ‘위엄’... 그 두 상반되는 이미지가 전혀 어색하지 않게 잘 어우러져 전해졌다. 친근감이 들었다. 내가 6월생이고 별자리나 탄생화 같은 것에 집착해서는 아닐 것이다. 어쩌면 왠지 자주 작은 몸집과 격이 없는 수다에도 불구하고 대하기가 어렵다는 소리를 듣는 처지인 나의 의문과 심정을 이해해 주는 꽃처럼 여겨져서 일지도 모른다. 또한 그 이름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하얀 패모. 화려함 보다는 뭔가 깊이 있고도 오롯한 의지가 서려있는 이미지로 내게 다가왔다. 아무튼 그 뒤로 나는 내 일기장과 자질구레한 낙서가 들어 있는 폴더를 하얀 패모라 이름 지었다. 그리고 그 때부터 이 꽃은 나의 일부가 되어 나와 삶을 이야기 한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이며 더 정확히는 내 청소년기를 아주 특별하게 만들어준 한 녀석과 나의 우정에 관한 얘기다.
그 녀석은 학창시절 진실했던 나의 친구이자 내가 아는 몇 안 되는 진정한 신사다. 인터넷도 휴대폰도 없던 시절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어떻게 우정과 사랑을 나누었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이 이야기에서 느껴질 많은 전설스러운 이야기가 사실임을 밝히기 위해 나는 이 글에서 녀석에게 받았던 많은 글들을 그대로 인용했다. 그리고 삽입된 시의 대부분은 녀석이 나의 열아홉 번 째 생일 때 시집으로 엮은 것 중에서 발췌했다. 그리고 녀석에게 받은 편지의 대부분과 나의 일기 일부를 실었다.
자, 그럼 이제부터 나와 나의 ‘녀석’의 이야기로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