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니와 소토, 후쿠와 우치(鬼は外、福は内)"
일본 곳곳에 2월이 왔음을 알리는 소리가 들린다. 집 안팎으로 콩을 뿌리며 귀신(鬼:오니)은 가고 복(福:후쿠)은 들어오라고 외친다. 일본 전통 봄맞이 행사 세츠분(節分) 때 볼 수 있는 의식 중 하나다. 이를 마메마키(豆撒き)라고 한다.
이 기간에는 온/오프라인에서 마메마키 관련 용품들이 판매된다. 아이가 있는 가정에서 많이 구매한다. 아빠는 귀신 가면을 쓰고 악귀가 되어 아이와 와이프로부터 콩 세례를 받는다. 그렇게 악귀가 쫓겨나고 집안에는 행운이 찾아왔다는, 해피엔딩 스토리다. 그리고 또 하나 볼 수 있는 풍경이 있는데 바로 김밥(!) 먹는 일이다.
세츠분은 입춘 전날로 올해는 2월 3일(토)이다. 이때가 되면 먹는 음식이 있는데 바로 에호마키다. 생긴 건 크고 두꺼운 김밥(정확히는 롤 초밥)인데 다른 점이 있다.
에호마키(恵方巻)에서 에호는 '복을 부르는 방향'이라는 의미다. 이 방향은 매년 바뀌는데 올해는 동북동(東北東) 쪽이다. 북쪽을 0도로 했을 때 방위각이 75도에 해당하는 지점이다. 에호마키는 이 방향을 바라보며 먹어야 한다.
'무슨 김밥 하나 먹는데 각도까지 생각해야 돼? 됐으니까 이제 먹어보자.'라고 하면서 입으로 가지고 갈지도 모른다. 그런데 한 가지 더 규칙이 있다. 한 해의 소망을 생각하며 말없이 김밥 롤 하나를 다 먹어야 한다.
에호마키의 길이는 보통 18cm다. 이 안에는 장어, 새우 등 해산물과 표고버섯, 오이, 계란지단 등 4개 이상의 속재료가 들어간다. 속재료가 늘어날수록 에호마키는 두꺼워지고 간신히 입에 넣을 수 있는 정도가 된다.
맛도 맛이지만 18cm나 되는 걸 꾸역꾸역 한입에 다 먹어야 한다는 건 고난이다. 그래서일까, 에호마키 소비가 예전 같지 못하다. 특히나 젊은 세대들에게는 점점 잊혀지는 전통 중 하나가 되어가는 듯하다.
지난 2016년부터 팔고 남은 에호마키가 일본의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했다. 생산량과 판매량의 갭이 예상보다 컸던 탓이다. 이후로 미니 에호마키, 주문형 에호마키 등 식품폐기율을 줄이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2023년 전국 편의점 조사에 따르면 약 256만 개 이상이 소비자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에호마키 열풍이 한차례 일본열도를 휩쓸고 지나가면 뒤이어 달달한 냄새가 퍼지기 시작한다. 바로 2월 14일, 발렌타인데이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여자가 남자에게 초콜릿을 주는 날로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한 유례는 다양한 설이 있지만 일본 초콜릿 광고가 시초라는 쪽이 가장 유력하다. 사랑을 고백하는 초콜릿이라는 의미로 혼메이 초코(本命チョコ)라고도 하는데 이와 관련 없이 주는 초콜릿도 있다.
사무실 문을 열자마자 어디선가 달달한 냄새가 코 끝을 간질인다. 책상 위에는 크고 작은 초콜릿들이 놓여 있다. 한쪽에서는 열심히 초콜릿을 올려두고 있는 동료들의 모습도 보인다. 이름하여 의리로 주는 초콜릿인 기리 초코(義理チョコ)다.
아침피로가 채 풀리기 전 마시는 커피 한 모금과 달달한 초콜릿 한입이면 엔도르핀이 핑하고 돈다. 그제서야 총명해진 눈으로 업무를 시작한다. 혼메이 초코에서 오는 사랑의 온기와 기리 초코에서 느껴지는 진한 동료애. 발렌타인데이, 쓸만하다!
한편, 일본은 위, 아래로 긴 나라이다 보니 지역마다 기온의 차가 크다. 북쪽 홋카이도는 춥고 최남단 오키나와는 후덥지근하다. 2024년 2월 3일(토) 현재 홋카이도는 영하 8도, 오키나와는 영상 22도다. 이렇게 극과 극을 오갈 때 도쿄는 대략 10도.
따뜻하다고 말하기에 이른 감이 있지만 산책이나 나들이하기 좋은 날씨다. 사람들도 집 밖으로 나온다. 눈이 덮인 후지산을 제외하면 봄의 향기를 가득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들리는 소리가 있다. 바로 '기침'소리다. 코로나 전부터 조금만 기침해도 마스크를 쓰는 일본이었다. 여기저기 기침하는 소리,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화분증 때문이다.
화분증(花粉症:카훈쇼)은 꽃가루 알레르기다. 기침은 기본이고 콧물이 나거나 눈가 가려움증을 동반하기도 한다. 삼나무(スギ)나 노송나무(ヒノキ)에서 유발되는 꽃가루 알레르기로 2월에서 4월이 피크다!
한국인을 비롯한 외국인 대부분은 처음에는 별 탈 없다가 몇 년후부터 화분증이 시작된다. 한국에서 맛본 적 없는 매운맛에 패닉이 온다. 화분증 전용 안약도 넣어보고 약도 먹어보지만 약효는 그리 오래가지 못하는 듯하다.
"나는 바로 왔어“,
“나는 3년 만에 왔어. 너도 곧 올 거야."
이 시기에 지인들과 만나면 단골 대화주제는 단연 화분증이다. 일본에 온 지 얼마 만에 화분증이 시작되었는지 얘기를 해보면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다. 다행히 나는 10년 일본 생활을 통틀어 단 한번도 화분증으로 고생한 적이 없다. 와이프도 마찬가지.
화분증으로 고생하는 모두에게 미안하지만, 와이프와 즐겁게 배드민턴을 치고 김밥에 맥주 한잔 마실 여유가 있는 2월이 좋다.
2월 11일 (일): 건국기념일 (建国記念の日)
2월 12일 (월): 대체휴일 (振替休日)
2월 23일 (금): 천황탄생일 (天皇誕生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