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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두부 Feb 07. 2024

12일차. 나의 최애 도시

부르고스(Burgos)


첫인상의 중요성은 사람에게만 통용되지 않는다. 도시도 마찬가지다. 부르고스에 도착하자마자 갖가지 과자가 산더미같이 쌓여 있는 과자 가게를 보았다. 이름마저 Dulcecafe, 달콤한 카페라니. 단것을 좋아하는 나는 과자 가게 앞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마치 뿌리 깊은 나무가 된 것처럼 과자 가게 창 앞에 우뚝 박혀버렸다.


저 핑크색 크림이 들어있는 조개 과자는 무슨 맛일까. 그 옆에 있는 쿠키에는 무슨 잼이 들었을까? 도넛처럼 생긴 쟤는 뭐지? 어머 과자에 초코가 흘러넘치고 있어! 제이는 일단 짐을 풀고 오자며 나를 달랬다. 나는 간신히 발을 떼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 도시는 나랑 잘 맞을 것 같아.


Dulcecafe



과자 가게를 떠나 5분쯤 걸었을까,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혹시 한국분이세요?”


그분은 일 관계로 부르고스에 수년간 살고 있다고 했다. 지인들이 산티아고 순례길 여행으로 이 도시에 오면 가이드 역할을 하셨다며, 우리에게도 부르고스 속성 과외를 해주셨다.



이쯤 되면 슬슬 삼겹살이 드시고 싶으시죠. 이 가게에 가서 이 메뉴를 시키면 우리 삼겹살이랑 똑같아요. 고추장 챙겨 오셨나요? 그거 갖고 가셔서 고기에 찍어드시면 맛있어요. 부르고스 대성당은 진짜 멋있으니까 꼭 한번 들어가 보세요. 마트는 XX 여기 가시면 돼요.



그리고선 부엔까미노 대신 즐거운 여행 되세요라고 인사하고 떠났다. 마치 게임에서 새로운 마을에 들어갔을 때 나타나는 NPC인 길잡이 요정을 만난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용사님! 새로운 마을에 오신 걸 환영해요. 체력을 보충하시려면 주점에 가세요. 장비를 구매하려면 무기점에 가시면 되고요.



이런 쓸데없는 상상을 할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도시에게 환영을 받는 기분이었다. 우리는 알베르게에 짐을 풀고 본격적인 도시 탐방에 나섰다. 길잡이 요정이 알려준 식당에 가서 삼겹살을 먹고(맛있었다), 나를 홀렸던 과자 가게에 가서 초코 과자, 잼 쿠키, 비스킷을 실컷 샀다. 상점가를 걷다가 쇼윈도에서 정말 맘에 쏙 드는 착장을 만나기도 했다. 가방에 잘 쑤셔 넣으면 조끼 하나 정도는 들어가지 않을까? 오랜 고민 끝에 결국 저녁에 다시 그 가게에 들러서 니트 조끼를 하나 샀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했던 유일한 쇼핑이었다. 이 조끼는 훗날 추위에서 나를 구원하는 구명조끼로 톡톡히 제 역할을 해내게 된다.



삼겹살!!!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했던 유일한 쇼핑은 바로 이 조끼


상점가 끝에 있던 분수대의 소녀상은 손에 가방을 쥐고 있었는데, 거기다 누가 페인트로 샤넬 로고를 그려놓았다. 인간이 하는 짓은 세계 어딜 가든 똑같구만, 낄낄 웃으며 사진을 찍고 있었더니, 지나가던 사람이 그거 참 바보 같지?라고 말했다. 우리 셋은 같이 웃었다.



샤넬백을 든(?) 소녀



길잡이 요정이 알려준 대로 부르고스 대성당에 갔다. 여행 일수가 길어지면서 슬슬 성당 구경이 물려오던 차였다. 길잡이 요정을 만나지 않았다면 굳이 대성당에 가지 않았을 것이다. 요정은 역시 요정이었다. 나는 부르고스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에 매료되었다. 스페인의 눈부신 햇살과 스테인드글라스는 환상의 짝꿍이었다. 햇빛과 스테인드글라스가 만들어 낸 무늬가 하얗고 높은 성당 복도에 어룽졌다. 그리고 내 마음속에도 어룽졌다.



부르고스 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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