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유준 Oct 17. 2022

36. 외래진료 풍경

 치료가 끝난 후 집에서의 휴식은 정말 행복했다. 그래도 나는 조심해야 할 환자였다. 병원에서 처방해 준 크고 작은 약을 매일 먹었다. 숙주(이식 후 부작용)반응이라도 오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마음 속 한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식 후에도 몇 달 동안은 매주 병원에 갔다. 백혈구, 적혈구, 혈소판 등의 수치가 안정적인지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수치가 좋지 않다면 최악의 경우 골수검사를 하고 다시 입원해야할 수도 있다. 진료시간 한 시간 전 즘 병원에 도착해서 혈액검사를 받았다. 혈액검사실 입구에 은행에서 볼 수 있는 번호표 기계가 있었다. 평일 오전인데도 어떤 날은 대기자가 앞에 스무 명이 넘을 때도 있었다. 북적이는 사람들을 보며 건강해서 병원에 오지 않는 것은 큰 축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료진 열 명 정도가 자기 자리에 앉아 기계적으로 환자의 팔뚝에 얇은 바늘을 꼽고, 피를 뽑고 있었다. 골수검사나 요추천자를 워낙 많이 받아서 이런 채혈용 얇은 주사바늘은 아프지도 무섭지도 않았다. 채혈만 하는 분들이라 바늘이 들어온지 모를 정도로 안 아팠다. 가끔 어떤 선생님은 바늘을 잘못 뽑아 살갗이 찢어져 피가 좀 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럴 땐 운이 좀 좋지 않은 날이라고 생각하며 웃어넘겼다. 

* * *

 채혈실에서 피를 뽑고 혈액종양내과로 향했다. 진료실 앞에서 티브이를 보며 차례가 오기를 기다린다. 대기하고 있는 환자 대부분이 나처럼 모자를 쓰고 낯빛이 좋지 않다. 야구모자, 비니모자, 털모자. 모자를 벗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머리카락이 빠진 사람들이다. 그리고 몇몇 사람들은 머리카락도 풍성하고 건강한 모습으로 의자에 앉아 있다. 하지만 얼굴은 환자 못지않게 걱정이 가득하다. 병을 판정받기 위한 사람들로 보인다. 담당 의사의 진단이 Yes냐, No냐에 따라 인생의 방향이 바뀐다. 그 조마조마한 심정을 나는 이미 겪은 적이 있었다. ‘또 만나요’라는 말은 헤어질 때 아쉬운 마음에서 나오는 인사이지만, 병원에서는 절대 좋은 인사가 아니다. 그 사람들은 진료실에 있는 의사와 또 만나고 싶지 않을 것이다. 

 대기자 명단을 보여주는 모니터에 내 이름이 나타났다. 진료실 문 앞에 있는 의자에 가서 앉았다. 백혈병을 처음 판정받을 때처럼 어머니가 손을 꼭 잡아주셨다. ‘별일 없을거야’라고 말씀하시진 않았지만 마음이 전해졌다. 진료실 문이 열리고 모자를 쓴 환자가 나왔다. 진료실 담당 간호사가 내 이름을 부르자 문을 조심스럽게 열며 들어갔다. 

 담당 의사 선생님은 여전히 인자한 얼굴로 인사를 건네셨다. 하지만 곧 모니터를 쳐다보는 그의 눈이 진지하게 변했다. 그 얼굴이 살짝 화가 나보일 정도다. 나와 어머니는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선생님의 입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꼼꼼히 수치를 확인한 선생님이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좋아요, 다음 주에 또 봅시다. 병원에서 이렇게 반가운 작별인사도 없을 것이다. 선생님의 표정은 어느새 환하게 바뀌어 있었다. 안도하며 긴장이 스르르 풀렸다. 모자를 벗고 고개를 꾸벅 숙이며 선생님께 인사를 드렸다. 감사합니다. 머리가 햇빛에 비쳐 반짝 빛났다. 

 밖으로 나오자 담당 간호사님이 다음 주 진료예약을 잡아주셨다. 자기 순서를 기다리는 다른 환자들을 뒤로하고 병원 밖으로 나왔다. 그분들의 결과도 좋았으면 좋겠다. 

 집에 돌아오자 그 짧은 여행에 체력이 바닥이 났는지, 아니면 긴장이 풀어져서인지 피곤이 밀려왔다. 대충 씻고 나서 방에 들어가 가벼운 잠을 청했다. 대낮이라 창문 밖은 환했지만, 왠지 좋은 꿈을 꿀 것 같았다. 모든 것이 완벽한 하루였다. 이런 날이 계속 이어지길 바라다가 잠이 들어버렸다.


* 글에 담지 못한 이야기와 정보는 인스타그램에 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http://instagram.com/ihave.tolive      

매거진의 이전글 35. (번외)동생의 이야기-피를 나눈 남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