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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리바라기 Sep 16. 2024

책들의 시간 102. 경우 없는 세계

# 백온유 장편소설_창비

  이번 독서 모임의 책이었다. 백온유 작가님의 ‘경우 없는 세계’. 작가에 대한 정보나 책에 대한 어떤 배경지식도 없이 읽었다. 그래서 더 재미있었지만 읽는 내내 불편한 어떤 지점들을 보게 되고 생각할 것이 참 많았다. 한동안의 화두였던, 좋은 어른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 볼 수도 있었다. 부모의 역할과 희생에 대하여도 생각해 보았으며, 자녀의 도리에 대하여도 생각해 보았다. 가정의 환경이 성장에 미치는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고 늘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자란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 그에 대하여도 고민이 된다.  

  술술 잘 읽히는 책이었다. 작가의 필력이라고 생각한다. 스토리의 힘이라고도 생각하고. 청소년이 읽어도 좋지만, 부모세대가 읽어도 좋을 것 같은 책이다.      


1. 부모라는 자리의 책임감


  아버지는 근면한 사업가였다.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자수성가했다는 점에서 자부심을 가질만했다. 자기 확신이 강한 아버지의 삶에서 유일한 근심거리는 나였고, 내 존재는 때때로 아버지에게 강한 회의감과 무상감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았다. 아버지는 나를 보며 자주 얼굴을 찡그렸다. <중략>

  가끔은 방문을 부술 듯 벌컥 열고 들어와 내 뺨을 인정사정없이 후려쳤다. 아들에게 패대기 쳐진 그날의 기억이 자신을 괴롭히면 그렇게라도 분노를 표출해야 적성이 풀리는 모양이었다. <중략>

  기묘하게도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날의 폭행이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처럼 다시 일상을 살아갔다. 부부동반 모임에도 빠짐없이 나갔고 결혼기념일에는 서로 선물을 주고받았다. 다음 날에는 다시 폭행, 그다음 날은 아무렇지도 않게 마주 앉아 밥을 먹었다. 이런 일관성 없는 일상에 대해서라면 어렸을 때부터 자주 반복되어 온 일이라 초연해질 법도 한데 나는 점점 더 심한 멀미를 느꼈다. 

  두 사람이 아무렇지 않아 보였기 때문에 내가 유별난 사람이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어머니를 가여워하고 애처로워하는 마음을 서운함이 앞질렀다. 내가 희생한 보람도 없이 너무도 쉽게 아버지를 용서하고 상황을 무마해 버린 어머니에게 배신감을 느꼈다. (61쪽)


  흔히 하는 말들이 있다. 폭력의 대물림, 가정환경의 중요성, 학습된 무기력으로 인한 체념, 그런 말들. 그래서 폭력에 노출되어 있으면서도 벗어나지 못하고, 고스란히 그 폭력이 자녀에게 전달되는 삶.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책의 주인공은 아버지의 폭력과 어머니의 무관심을 견디지 못하고 집을 나온다. 거리의 학교 밖 청소년들과 만나 어울리면서 많은 범죄에 노출되고 건강 이상 증세를 겪게 된다. 가끔 주인공은 생각한다. 집으로 돌아갔을 때 부모가 자신을 반겨주는 모습, 자신을 때려서라도 집으로 끌고 가려는 모습. 하지만 주인공의 생각과는 달리 아무도 없는 집에 겨울 옷을 가지러 들어갔을 때, 자신의 방은 창고가 되어 있었고, 집안엔 고양이가 있었다.      


  자식이 가출하고 없는 빈자리를 고양이로 채운 부모. 자식이 부모에게도 어찌할 수 없는 ‘한숨’과 ‘짐’이었을까? 자수성가를 통해 자기 확신이 강하게 생긴 아버지의 근심이 자신이라고 주인공은 생각한다. 아버지에게 회의감과 무상감을 주는 존재, 자녀.


  가정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프로그램들이 많다. 관찰카메라를 통해 가족의 문제점을 들여다보고 전문가의 처방을 통해 가족이 변화되는 모습을 다루고 있는 매체들을 볼 때면 그런 생각을 하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자연스레 ‘다행이다’라는 마음이 먼저 든다. 우리 아이가 그러하지 않아서, 우리 남편이 저 정도는 아니어서, 우리 부모님이 폭력적이지 않아서, 바르고 고운 말을 쓰는 사람이라서 등등, 온갖 다행인 요소들을 발견하게 된다. 타인의 슬픔과 불행 앞에 나의 안전을 확인하는 것, 참 부끄럽다. 


  그래도 전문가의 관찰과 평가에 감탄을 할 때도 많다. 막연히 내가 문제라고 생각했던 어떤 요소와 상황의 포인트가 전문가와 같지 않았지만, 전문가의 판단에 신뢰와 공감이 갈 때. 폭력을 인지하는 태도의 차이라든가, 자녀의 태도에 대한 부모의 대처 방안처럼. 


  책의 결말은 내가 생각하는 결말과 완전히 달랐다. 나는 여전히 부모가 자식에게 용서를 빌지 않은 것, 가출은 자식이 했지만, 부모가 끝내 찾지 않은 것에 대한 잘못이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자식이 범죄에 연루되었을 때 보호자가 되어주기는 했지만, 그렇게 돌아온 자식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언젠가 들은 말이 있다. 신이 부모의 자리를 낸 것은 내 뜻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들이 있음을 알게 하기 위한 것이라는 말. 정확한 출처를 밝힐 수 없지만 그렇게 들었는데, 나는 그 말이 참 공감이 갔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자녀를 소유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으며,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자녀에게 지나치게 투영하는 경우도 있으며, 부모라는 이름으로,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통제와 폭력을 행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한다. 


  부모라는 자리의 책임감이 참 무겁다.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아이의 슬픔과 상황을 지켜보는 것이 힘들 때가 있다. 혹여 부모와의 관계가 정말 좋지 않아 시한폭탄의 상황을 견디는 경우도 있다. 부모로서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방송에서 부모와 자녀의 갈등을 다룰 때 자녀는 ‘내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 아니다’라고 말하고, 부모는 ‘나도 너 같은 자식은 원하지 않았다’라고 말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부모와 자식이라는 이름으로 공동체를 이루지만, 결국은 각자의 삶이지 않을까? 서로에 대한 이해와 인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난, 어른인 부모가, 자녀를 더 이해할 수 있기에, 때로는 자녀의 삶에 걱정 어린 통제보다는 지지가 필요하다고 여긴다. 

부모라는 자리의 책임감이 한없이 무겁다. 그래서 늘 겁이 나지만, 도망치진 말아야겠다.      


2. 양심, 도덕적 선의 기준


  ‘우리 집’에 모여든 아이들은 자신들에 대한 세간의 평가를 증명하기라도 하듯 상식적이지 않은 결정을 내렸다. 아이들의 불안에 불을 지핀 것은 나지만 그런 나조차 아이들을 경멸했다. 우리는 증오를 받아 마땅한 존재들이었다. 억울해해서는 안 되는 존재들이었다. (191쪽)     

  나쁜 일을 하지 않고 다들 어떻게 사는 걸까. 반복되는 일상을 저버리지 않고 평화를 일구는 법은 누가 알려주는 걸까. 그런 게 체득이 되는 인간들은 다른 유전자를 갖고 태어나는 걸까. 동이 틀 무렵 창가에 어른거리는 고양이 그림자를 눈으로 좇으며 우리는 망했다고 홀로 중얼거렸다. (198쪽)


  언젠가 퇴근길에 오토바이를 탄 남학생이 음료 캔을 잔디밭으로 휙 던지는 것을 보았다. 오토바이의 속도를 줄이지도 않았고, 어떤 거리낌도 없이, 마시던 음료 캔을 잔디밭으로 던지던 그 아이의 표정에는 잘못된 행동이라는 것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었다. 


  우리가 보통 도덕적 행동이라 여기는 것의 범위가 정말 넓은 것은 안다. 그리고 그 도덕적 기준도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일반적 인식으로 ‘나쁜 행동’에 대한 기준은 비슷비슷하다. 하지만 요즘 미디어를 통해 전해오는 많은 이야기들을 접할 때면 세상이 무서워진다. 

  최근 합성사진을 통한 디지털 성범죄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 SNS를 통해 확산되는 일들에 대하여 범죄자를 옹호하고 방관했다는 책임으로 대표가 프랑스에서 체포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죄라는 것에 대한 인식이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부족하다. 그래서 ‘장난’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고 있는 경우가 많으며, 가족을 대상으로 범죄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기사를 읽는데, 너무 속이 상해 눈물이 났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쁜 일을 하지 않고 살아간다고 믿는다. 반복되는 일상을 저버리지 않고 평화를 일구며 살아간다고 믿는다. 하지만 세간의 눈을 피해, 익명성에 기대어, 범죄는 일어나고 있으며, 그걸 막을 방법은 사회적 제재와 더불어 결국은 ‘양심’이라는 것을 잘 알기에 도덕적 기준을 바로 세우고 개인의 양심을 회복하는 일이 필요하다. 결국 나의 의지와 나의 힘인 것이다.      


  3. 정리     


  책을 읽으면서 학교 밖 청소년의 문제의 심각성에 대하여 생각했다. 청소년만의 책임도, 부모만의 책임도, 사회만의 책임도 아닌 많은 일들 앞에서 엮이고 엮인 관계와 벗어날 수 없는 공동체의 삶에 대하여 생각했다. 옆자리 선생님께서 요새 읽고 있는 책도 한 권 추천받았다. ‘불안세대(조너선 하이트)’. SNS를 통한 우울감과 불안의 증가, 지나친 안전에 대한 통제로 인한 불안이 야기하는 문제들에 대하여 알 수 있다고 하셨다. 개인 소통 창구에 올린 사진으로 인해 디지털 성범죄가 일어나니, 개인 사진을 모두 지우라고 말하는 사회가 되어버렸는데, 어찌 불안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리 생각하면서도 안전을 이유로 밖에서 뛰어놀지 못하게 하여 발생한 문제들에 대하여도 책임이 있지 않나, 그런 생각들도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책에서 다루고 있는 많은 문제, 가정 폭력의 문제, 아동학대의 문제, 청소년 대상 성범죄, 학교 밖 청소년들이 일으키는 범죄들까지. 그 문제와 해결방안에 대하여 정말 깊이 고민해야 한다.      


[이야기 나눠 보기]

1) 어린 시절 부모님의 나에게 보여 준 모습 중 가장 힘들고 싫었던 모습이 있습니까? 어떤 모습이었으며, 혹시 지금 부모가 되었다면 자신은 어떤 모습인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2) 타인의 행동 가운데 도덕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던 행동이나 사건이 있다면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그것이 왜 잘못된 행동이며,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도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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