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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요리책

엄마요리책 쟁탈 요리경연대회

by 헬렌


저에게는 아주 오래된 요리책이 있습니다. 1985년도에 구입한 삼성출판사 요리책입니다.

제가 결혼 전 직장 생활할 때 월부로 구입한 9권짜리 요리책입니다.

우리나라 요리의 각 분야에서 저명한 요리 대가들이 집필 한 잘 만들어진 요리책이랍니다.



저는 이 요리책을 결혼할 때 혼수로 가져가서 결혼 집들이 음식과 신혼 요리를 이 요리책을 보고 요리를 했답니다.

중국에 갈 때도 9권을 고스란히 가져가서 우리 아이들의 이유식부터 영양간식, 생일 케이크도 만들어 줄 수 있어서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자라면서 이 요리책은 우리 아이들의 놀이책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 요리책을 보고 아이들과 함께 요리하고 먹고 싶은 요리를 펼쳐 보이며 아이들이 주문하기도 했답니다

이 요리책에는 지금도 아이들이 먹고 싶은 요리, 만들어보고 싶은 요리 등... 그 요리 페이지에 스티커가 붙어 있어요...ㅎㅎ



또 우리 가족이 미국으로 갈 때에도 이 요리책은 동행했다지요.

아이들이 자라면서 이 요리책을 보고 저의 생일과 결혼기념일에 감동의 시간들을 안겨주었습니다.



아이들이 틴에이지였을 때 어느 날 누군가가,

“엄마, 저 결혼하면 이 요리책 주세요~!” 하니까 이 말을 들은 나머지 두 아이가 난리가 났습니다.

“아니요, 저 주세요”

“안 돼요, 제가 가질 거예요”

어~...

“그럼, 요리경연대회를 해서 1등 한 사람에게 주어야겠네~”

제가 농담처럼 한 이 말에 아이들은 흥분했습니다.

“요리경연대회요?”

“어떻게 할 거예요?”

“무슨 메뉴로 할 거예요?”

“언제 할 거예요?”

“으응~ 너희들이 결혼하기 전에 할 거야~”

이렇게 엄마요리책 쟁탈전 요리경연대회가 결정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도 아이들은 이 요리경연대회에 대한 이슈를 계속 제기합니다.

언제 할 건지?, 어떤 메뉴로 할 건지?,

한식인지, 양식인지, 간식메뉴인지, 베이킹인지...?

저희들끼리 말합니다. 한식이나 양식을 하면 언니들이 유리하고 베이킹이면 막내가 유리하다고.

저는 '아... 이 요리대회 꼭 해야만 하는구나'라고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엄마요리책을 1등에게 주고 나면 나머지 두 아이가 너무 서운 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똑같은 요리책이 시판되는지 알아보았습니다. 이미 절판되었습니다.

이 요리책을 구입한 때가 36,7년 전입니다.

요즘 세상에 이 오래된 요리책이 무슨 쓸모가 있겠습니까? 써치만 하면 모든 요리의 레시피를 알 수 있는데 말입니다.

절판된 게 당연한데 너무 안타까왔습니다.



혹시 중고서점에라도 있을까 해서 알아보았습니다.

중고서점뿐 아니라 중고 거래하는 곳은 모두 찾아보았습니다.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생각나면 한 번씩 중고 거래하는 곳에 검색해 보고 있었습니다.

검색하기 시작한 지 2,3년의 시간이 지난 어느 날,

제 요리책과 똑같은 요리책이 동네 중고장터에 나와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너무 기뻤습니다. 한걸음에 달려갔습니다.

제 요리책보다도 훨씬 깨끗한 요리책이었습니다. 거이 새것과 같은 수준입니다.

제 것은 한국에서 중국으로 미국으로 다시 한국으로 온 세월의 흔적은 물론 손때, 요리 때, 아이들 낚서까지 있는 정말 고물과 같은 요리책인데 말입니다.

이 기쁜 소식을 아이들에게 전했습니다. 엄마 것과 똑같은 요리책을 구했다고. 2등 한 사람도 요리책을 가질 수 있다고.

그리고 새로 구한 요리책은 거이 새것이라 1등 한 사람이 이 요리책을 가지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아니랍니다. 1등 한 사람이 엄마요리책을 가진답니다. 엄마와 함께한 추억이 있는 엄마요리책은 어떤 것과도 바꿀 수없답니다.

하지만 2등만 해도 엄마요리책과 똑같은 요리책을 가질 수 있어 안심이랍니다.

이 말을 듣고 나니 또 고민이 생겼습니다.

'그럼 3등은 어떡하지?'

또 중고장터를 기웃거렸지만 어디에서도 찾을 수없었습니다.



그 후 또 2년여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첫째 마리아가 결혼을 합니다.

결혼식을 미국에서 하기 때문에 우리 가족은 미국행을 결정했습니다.

멕시코에 있는 둘째, 포항에 있는 셋째, 그리고 저희 부부는 결혼식 한 달 전에 미국에 들어가 결혼 준비와 신혼집 꾸미기를 돕기로 했습니다



미국행 여행가방을 꾸리고 있는데 둘째가 말합니다.

언니 결혼식 전에 요리경연대회를 해서 엄마요리책을 누가 가질 건지 결정해야 한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막내는 아직 실력이 안되니 1,2등을 언니들이 할 거니까 언니가 1등을 하면 언니가 쓰면 되고 둘째가 1등 하면 멕시코에서 한국보다는 미국이 가까우니 언니집에 잠깐 킵 해놓겠답니다.

그래서 미국에 올 때 엄마 요리책을 가져오랍니다

이 말을 들은 막내는 언니들이 자신을 무시했다고 화가 났습니다.

“나는 요리경연대회에 참석하지 않을 거니까 언니들끼리 잘해봐!”

상황이 심각해졌습니다.

제가 끼어들었습니다.

“무슨 말이야, 세라는 그동안 엄마의 유튜브 자막을 쓰면서 엄마 요리를 섭렵했는데. 엄마 요리 수제자는 세라지~.”

라고 말했더니, 세라의 마음이 풀어졌습니다...ㅎㅎ



아~ 요리경연대회를 진짜 해야 되는가 봅니다. 그리고 세 아이가 모두 진지하기까지 합니다.

그러고 나니 3등에게도 똑같은 요리책을 주고 싶은 마음이 더 커졌습니다.

여행가방을 꾸리면서 혹시나 하는 맘으로 중고 장터에 검색했는데,

아니! 이 요리책이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할렐루야!

요리책은 저희 가족이 미국 출발 하루 전날 택배로 도착했습니다.

세 딸에게 모두 엄마요리책과 또 엄마요리책과 똑같은 요리책을 줄 수 있어서 제 마음이 얼마나 편해졌는지 모릅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미국으로 출발했습니다.



미국에 도착한 지 이틀 만에 시차 적응도 안된 상태에서 요리경연대회를 개최했습니다.

심사위원으로 저희 부부와 다른 목사님 가정 두 가정도 초대했습니다.

어른만 심사하기로 해서 총 6명이 심사위원입니다.

저는 어떤 메뉴로 할지 고민했습니다.

심사위원으로 와 주신 가정에 아이들도 함께 13명이 식사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지정메뉴는 메인으로 먹을 수 있는 소고기버섯덮밥으로 정해서 각자 넉넉하게 만들기로 하고 자유메뉴는 사이드메뉴로 먹을 수 있게 각자 자신 있는 메뉴를 요리하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각자 2가지 요리를 하면 됩니다.

지정메뉴인 소고기버섯덮밥은 각자 만들고,

자유메뉴는 첫째가 크림새우를 둘째는 닭강정을 셋째는 과일케이크를 내놓았습니다

심사위원 6명이 지정메뉴와 자유메뉴를 각각 심사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안 본 사이 또 성장했습니다.

진짜 근사한 요리들을 내놓았습니다. 정말 감동입니다!



결과는 첫째 마리아가 1등을 하므로 엄마요리책 쟁탈전 요리경연대회는 첫째 마리아에게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한나, 세라도 똑같은 요리책을 가질 수 있어서 화기애애하게 끝날수 있었습니다.



이 두 질의 중고 요리책을 구하기 전에는 누구도 엄마요리책을 양보하지 않을 기세였습니다.

요리대회가 끝나고 세 아이가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놨습니다.

기필코 1등을 해서 엄마 요리책을 갖겠다는 생각과 혹시 자신이 1등을 못하면 9권짜리 요리책을 3권씩 나눠 갖자는 제의를 하여 3권이라도 갖겠다는 생각을 했었다고 말입니다...ㅎㅎ

중고요리책을 구하지 않았더라면 누가 1등을 하든 요리대회가 끝나고 한바탕 싸움판이 벌어질 뻔했습니다.

이렇게 치열한 요리대회였는데 중고요리책들 덕분에

둘째, 셋째가 넉넉한 마음으로 언니의 1등을 축하해 주며 기쁘고 즐겁게 요리경연대회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엄마 요리책을 사랑해 준 우리 아이들이

너무너무 이쁘고

너무너무 사랑스럽고

너무너무 고맙습니다.


제 인생의 귀한 열매들입니다.

저는 넘치도록 행복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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