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위의 부러움과 축복을 받으며 교제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저의 마음 한구석에 서운함이 있었습니다.
프러포즈하기 전,
저에게 냉정하게 대했던 남편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좋아하는 여자에게 자신의 감정을 그런 식으로 표현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래서 항상 그때를 기억하면 남편을 향한 서운함이 작은 상처로 남아있었습니다.
후에, 왜 그렇게 나에게 냉정하게 대했냐고 물으니 마음이 끌려 그 감정을 절제하느라 일부러 그렇게 했다고,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데 감정이 먼저 가면 그때는 하나님 뜻을 분별할 수 없어서 그렇게 했다고 말합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말입니다.
남편이 변명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남편은 저와 만나기 전에 스쳐지나 간 세 여자가 있습니다.
감정이 끌리는 대로 이성을 만나면 안 된다는 것을 배우는 시간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남편은 교회에서 저와 마주칠 때마다 저에게 따뜻한 눈길 한번 주지 않았습니다.
감정으로,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해서 또다시 실수하고 싶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서운함은 결혼하고 아이들이 클 때까지도 가시지 않았습니다.
큰아이는 나를 닮지 않은 아이입니다.
애기 때부터 ‘이 아이는 내 딸 같지가 않다’는 생각을 종종 했습니다.
자기의 감정과 원하는 것을 선택하지 않고
자기가 원하지 않은 원칙을 선택하는 아이입니다.
원칙을 선택해야 마음이 편한 아이입니다. 그리고 절제하는 능력이 남다른 아이입니다.
이런 큰애를 보며 이제야 아빠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감정보다 이성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
마리아는 아빠를 닮았으니까요.
이런 마리아를 키우며 그때 남편의 행동이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감정보다 이성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이란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