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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온 사람

그를 만나다

by 헬렌



1 첫눈에 반하다

한 사람만 사랑하게 해 주세요


결혼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하며 자랐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 없이 자라는 딸들에게

‘남자는 믿지 못할 동물'이라고 수 없이 세뇌시켜서 남자의 근처에도 가지 못하게 교육시켰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주위의 결혼한 불행한 가정을 보며 결혼은 결코 행복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결혼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20대 초반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교회선배의 아름다운 결혼을 보게 하셨습니다.

‘아~! 그리스도 안에서의 결혼은 아름답구나!...'

나도 선배와 같은 결혼이라면 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한 사람만 사랑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기도했습니다.

‘내가 결혼할 사람, 그 사람만 사랑하게 해 달라'라고.


저는 여동생 둘과 터울이 많이 있는 남동생이 있습니다.

여동생 2명이 먼저 결혼을 하고 남동생은 취업으로 나가 살고

노처녀 소리를 듣는 저는 어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왜 결혼하지 않냐며 빨리 결혼해라, 선보라 는 잔소리를 매일 들으면서도 하나님이 나를 위해 헌신된, 하나님을 사랑하는 형제를 준비하셨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또 바울처럼 평생 주님만 섬기고 독신으로 주님을 위해 살게 하셔도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침례식이 있는 어느 주일,

저녁예배를 드리기 위해 교회에 들어서고 있었습니다.

교회 본당 앞 등나무 밑에 청년들이 옹기종기 앉아 교제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못 보던 형제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청년이 많은 교회입니다. 4-500명 되는 청년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법도 하지만 청년부의 리더로 있다 보니 웬만한 청년은 얼굴이라도 익히고 있는데...

등나무 밑의 그 형제는 한눈에 내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어! 우리 교회에 저런 형제가 있었나?...'

등나무를 향해 가고 있는 저에게 그 형제의 옆에 있던 선배가 소리쳤습니다.

“혜란자매!, 빨리 와봐!”

...?

“이 형제 오늘 침례 받는데 침례사진 좀 찍어 줄래?”

‘에이~, 새신자구나! 오늘 침례 받는...'

혹시라도 내 시야에 들어오지 않은 괜찮은(신앙이 좋은) 형제가 아닌가? 했는데...

오늘 침례 받는 우리 팀자매들 사진 찍어 주려고 어깨에 카메라를 메고 있었던지라...

‘뭐 어려운 부탁도 아니데...’


그리고 몇 개월이 지났습니다.

저희 교회 청년부가 1.2부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한 부서로 연합하게 되었습니다.

그 형제도 연합된 청년부에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형제가 청년부의 성경공부 인도자로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새신자'가 아니라 ’ 헌신자'였습니다.

슬슬 관심이 쏠렸습니다.

거기다가 운 좋게도 집도 같은 방향...ㅎㅎ

4호선 전철을 타고 1호선 전철로 바꿔 타는...

이렇게 2년 반을 지냈습니다.



2 짝사랑하다

내 짝이 아니었나 봅니다

내 마음은 그 형제에게 있었습니다. 이 형제가 내 배우자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주위에서 노처녀 소리를 듣고 어머니의 시집가라는 핍박에도 끔쩍하지 않고 시간이 흘렀습니다.

하루는 그 형제의 가장 친한 친구가 내게 다가와 이야기를 해줍니다.

ㅇㅇ형제 교제하는 자매 있어요.”

그때는 ‘그랬구나!'하고 덤덤하게 들었는데...

모든 모임을 마치고 귀갓길에...

‘아~ 교제하는 자매가 있구나!'

집을 앞에 두고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집 앞, 공원의 벤치에 앉았습니다.

앉자마자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형제가 주님이 허락한 내 배우자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나는 되는 일이 없다고 주님을 원망하며 울고 있었습니다.

마음이 서글펐습니다. 아니 아팠습니다. 한참을 울었습니다.


울다가 생각해 보니 내가 그 형제를 마음에 품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니 아파하며 울고 있는 내 모습을 보니 그 형제을 사랑하고 있었나 봅니다.

예전에 하나님께 드린 기도가 생각이 났습니다.

결혼할 내 배우자 한 사람만 사랑하게 해달라고... 그런데 이미 내 배우자가 아닌 다른 형제를 사랑하고 말았습니다.

이를 어쩐단 말입니까? 엉엉 울었습니다.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마구마구 쏟아졌습니다.

마음의 순결을 잃은 것 같아 억울하고 분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눈물을 훔치다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내 배우자가 아닌 사람을 사랑한 것도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것을...

나에게 필요한 성장과정임을 알게 하셨습니다.

이 시련의 아픔을 통해서 정금과 같이 나오길 원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보게 하셨습니다.

“아~! 그랬군요... 이 아픔이 저를 훈련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라면, 제가 성장하는 과정이라면 그렇게 하십시오”

나를 부인하는 기도를 하고 나니 제 마음에 말할 수 없는 평강이 흘러넘쳤습니다.

너무 감사했습니다.

이제는 감사의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제가 그 형제로부터 실연(?)당한 것이 감사했습니다.(나 혼자만의 짝사랑이지만)

내 배우자가 아닌 다른 형제를 사랑하게 된 것도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계획이니까요!!!

“할렐루야!!”

저는 할렐루야를 외치며 벤치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번잡스럽고 무겁던 마음이 모든 것이 정리되어 평정을 찾고 평온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습니다.

집에 돌아오니 12시 넘은 시간이었습니다.

무려 3시간을 그 벤치에 앉아 울었습니다.

이제는 그 형제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편안해졌습니다.

전에는 ‘저 형제도 나에게 관심이 있을까?' 하던 것이

이제는 청년부의 한 형제로 보게 되었습니다.



3 고난의 삶을 살라

가장 위대한 인생


어느 날 귀갓길에 한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책 제목은 ‘시베리아의 불꽃'

소련의 성도들이 믿음을 지키는 순결한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주님을 사랑하고 믿음을 지키기 위해 어떠한 잔인한 고문도, 순교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순결한 믿음에 감동되어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후...

주님이 이런 곳에 나를 보내시면 어쩌나?

나라면 이런 환경에서 믿음을 지킬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습니다.

이것이 나의 믿음의 현주소인 것을 알았습니다.

내가 꽤나 믿음이 있는 줄 알았습니다.

주님 가시는 곳이라면, 주님이 가라 하시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겠노라 큰소리 빵빵 쳤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저는 저 공산권의 나라 소련에는 갈 수가 없었습니다.

이 고난의 자리에, 이 고통의 자리에 자처하여 갈 수가 없었습니다.

아니 이런 순간이 온다면 저는 주님을 부인할지도 모릅니다.

나 자신이 한심했습니다. 나의 믿음 없음이 서글펐습니다.

그날 밤 울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날, 새벽...

주님이 저를 만나주셨습니다.


딤후 4:6-18

바울의 황혼... 바울의 노후를 보게 하셨습니다.

바울은 혈기왕성한 젊음에 부름 받아 주님만을 위하여, 복음만을 위하여 뒤 돌아보지 않고 달려온 인생입니다.

그런데...

그에게 보장된 것은 편안하고 풍요로운 노후가 아니었습니다.

손자 손녀의 재롱을 보며 보내는 안락한 노후가 아니었습니다.

노년이 된 바울은 축축한 감옥에 앉아 디모데에게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9절-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10절-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다.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갔다.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다.

13절-네가 올 때에.... 겉옷을 가지고 오고...


도대체 바울에게 남아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복음만을 위하여 달려온 인생.

세상적인 풍요로움이 아니라면 영적인 열매인 그의 제자들이라도 그의 곁을 지켜주고 함께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호화로운 저택은 아니더라도 그의 노후를 보낼 따뜻한 아랫은 있어야 되는 것 아닌 가요?

그는 지금 감옥에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제자들이 그의 곁을 떠났습니다.

데마는 세상으로 돌아가버렸습니다. 영적인 열매도 실패한 것 같습니다.


저는 울고 있었습니다.

황량한 감옥에 초라하게 앉아있는 바울을 생각하니

바울이 너무도 불쌍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한참을 울다 생각해 보니...

이 모습이 나의 노후의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그렇습니다. 제 모습입니다.

제 동생들이 저보다 먼저 결혼했어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주님이 있어서, 사명이 있어서...

독신으로 살아도 좋았습니다.

그런데 나도 바울처럼 초라한 황혼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니...

나에 대한 연민으로 내가 너무 불쌍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엉엉 울고 있었습니다.


이때,

나에게 보게 하신 말씀이 있었습니다.

6절-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

7절-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절-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이 고백은 바울의 황혼에 드려진 고백입니다.

주님 만날 날을 사모하며 드려진 고백입니다.

그의 인생을 돌아보며 마지막 인생의 여정에서 드려진 고백입니다.

바울은 인생의 끝자락에서 ‘내가 선한 싸움을 싸웠다'

‘나는 내가 해야 할 일,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사명을 마쳤다'

‘그리고 그것을 믿음으로 지켰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고백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가장 가치 있는 인생이란?, 가장 위대한 삶이란?

하나님이 그 인생에 맡기신 일을 하며 사는 것인데

바울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맡기신 일을 마쳤다 라고 고백하는 위대한 사람인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멋진 삶을 살 수 있단 말입니까?

어떻게 이런 위대한 삶을 살 수 있단 말입니까?

나도 바울처럼 내 인생의 끝자락에서 이런 위대한 고백을 할 수 있다면 축축한 감옥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내 곁을 떠난다 해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독신으로 평생을 외롭게 산다 해도 두렵지 않습니다.

따뜻한 아랫목이 보장되지 않아도 두렵지 않습니다.

어떠한 고난이나 고통도 두렵지 않습니다.

아니 바울처럼 고난을 자처하며 살아야 합니다.

저는 이 날 새벽,

주님께 기도했습니다.

“주님, 저도 바울처럼 나의 황혼에 '주님이 나에게 맡기신 일을 다 마쳤다'라고 고백하게 하소서.

이런 영광스러운 고백, 이런 위대한 삶 살게 하소서.

예, 저도 바울처럼 고난을 자처하며 살겠습니다. 아멘.”


이때는 후에,

ㅇㅇ형제로부터 들을 이야기를 전혀 예상치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 날 새벽 저는 고난이 있는 공산권나라인 소련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주님이 보내시면 어디든 가겠다고 고백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잊을 수없는 새벽입니다.



4 말씀하시다

저에게 프러포즈하게 해 주세요

얼마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나에게 그 형제가 교제하는 자매가 있다고 알려주었던 형제가 또 내게 다가와 말했습니다.

ㅇㅇ형제, 그 자매와 헤어졌어요”

“그랬어요!”

나와 상관없는 말처럼 들렸습니다. 이 말을 듣던 그때는...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나도 모르게...

또 그 형제을 바라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청년부 리더모임에서 로마서를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로마서 5장를 읽어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3절, 4절을 읽다가 이곳에 마음이 꽂혀 시선이 멈추었습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하나님이 나의 삶을 환난으로, 인내로, 연단으로 지금까지 인도해 오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망을 이루기 위해...

무슨 소망?

결혼?

그 형제랑?

이 날 로마서 5장 3,4절 말씀은 주님의 싸인이었습니다.


다음날, 주일입니다.

설교 말씀은 누가복음 18장의 ‘불의한 재판관과 과부'의 말씀입니다.


3절-과부는 가기가 원하는 것을 가지고 재판관에게 나아갑니다.

4절-그러나 그 재판관은 불의한 자라 불쌍하고 힘없는 과부의 청을 무시합니다.

3절-하지만 이 과부는 너무도 절실하여 자주 그 재판관에게 찾아갑니다.

5절-재판관은 너무도 번거롭고 귀찮아서 이 과부의 원하는 것을 들어줍니다.

7절-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하물며 하나님께서 네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겠느냐?

'너에게 ㅇㅇ형제를 배우자로 주시지 않겠느냐?' 하는 주님의 음성으로 들립니다.

8절-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할렐루야!” 주님이 내 마음의 소원을 들어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 형제가 나의 배우자라고 확인시켜 주시는 말씀입니다.


‘아~! 그 형제가 내 배우자였구나!!!'


“그런데요. 주님!,

제가 먼저 가서 말할 수는 없잖아요.

그 형제가 저에게 프러포즈하게 해 주세요. 아멘.”



5 기다려라

나에게 관심조차 없습니다

그날 이후, 그 형제가 나에게 프러포즈하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프러포즈는커녕, 그 형제는 나에게 관심조차도 없습니다.

아니, 관심은 고사하고 나와 눈이라도 마주치면 회피하기 일쑤입니다.

어찌 이럴 수가 있습니까?

그 형제가 내 배우자임을 말씀하셨는데 왜 이 형제는 나를 이렇게 대하는 걸까요?

그의 냉담한 표정에 저는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주님, 제가 말씀을 잘 못 받았나요?”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기다려라, 때가 아니다”

또 그 형제와 마주칩니다.

‘언제 프러포즈하려나?'

프러포즈할 형제가 나에게 관심은커녕, 내 눈길을 피하거나 어쩌다 마주치기라도 하면 냉담한 그 표정.....

아~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나의 실망과 이 절망을 어쩌란 말입니까?

“아직 때가 아니다, 기다려라”

아... 아직 때가 아니구나! 하고 기다려도 보지만 여전히 보이는 것이 없으니...

“주님, 아무래도 제가 주의 음성을 잘못 들은 게 분명해요.

제가 그 형제를 너무 좋아해서 성경말씀을 내 방식으로 껴 맞춘 건가요? “

그러면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시리라” - 시107:30

이 형제와는 거의 매일 마주치게 됩니다.

마주칠 때마다 저는 조급해하고 절망합니다.

마무래도 제 짝이 아닌 것 같습니다. 저에게 분에 넘치는 형제입니다.

그러면 주님은 또 말씀해 주십니다.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오라” - 히4:16

하루하루 이렇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 형제와 마주칠 때마다 저는 절망하고,

주님은 말씀해 주시고,

저는 다시 희미한 믿음으로 주님을 붙들고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습니다.



6 왜 의심하느냐?

나는 하나님이라

그러던 어느 토요일,

친구의 결혼식이 있어 피곤한 하루를 보냈습니다.

저녁에 청년부 리더모임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려는데 여전히 그 형제는 나를 향해 냉담한 표정으로 나를 대합니다.


집에 돌아가는 전철 안에서 몸도 피곤하고 마음도 지쳤습니다.

그 형제가 '내 배우자라는 믿음'을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것 같은 절망감에 빠져있었습니다.

“주님, 아무래도 제가 말씀을 잘못 받은 거죠?

제가 들은 음성이 주님의 음성이 아니라 사탄의 음성이었나 봐요.”

사탄이 나를 혼란에 빠트려 아무것도 못하게 하려고 저를 희롱한 것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아~!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정말 그랬습니다.

그 형제가 나의 배우자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난 후로는 나의 관심과 마음이 모두 그 형제에게 쏠려 있었습니다.

나에게 맡겨진 주님의 영혼들은 뒤전 이었습니다.

성경공부 인도도, 팀모임도, MTM 하는 자매들에게도... 대충대충 건성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아~! 사탄이 이 사역을 방해하려고 나를 속여 나에게 거짓말을 했구나!

내가 주님의 음성을 들은 것이 아니라 사탄이 하는 말을 들었구나!’


이런 생각이 들자, 내 마음을 진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주님, 이것이 사실인가요? 정말 사탄의 음성이었나요?

주님, 한 번만, 한 번만 더 주님의 음성을 들려주세요.

마지막으로 제가 확신할 수 있는 말씀을 한 번만 더 주세요.”


그러자 이사야 43장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주님, 몇 절요?, 이사야 43장 몇 절입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제 바로 눈앞에 손가락 2개 굵기의 흰 글씨가 나타났습니다.


12


잠시 후에 희미하고 작은 글씨로 11이 12와 겹쳐서 왼쪽 위에 나타났습니다.

그리고는 사라졌습니다.

이사야 43장 12절... 그리고 11절.


‘어?.. 주님이 말씀을 이렇게 주시나?

이건, 아니다.

어떻게 주님이 말씀을 이렇게 주신단 말인가!!'

지금까지 주님의 음성을 QT 할 때 가장 많이 듣게 하셨습니다. 암송한 말씀이 떠오르게도 하셨습니다.

성경공부나 설교를 듣다가 주의 음성을 듣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사야 43장은 내 머릿속에 떠오르게 하셨고 12절은 내 눈으로 보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주님이 주신 말씀이 아니라고 부인은 해 보지만

이사야 43장 12절이 어떤 말씀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가방 속의 성경을 꺼내 성경을 펼쳤습니다.

이사야 43장 12절

내가 고하였으며 구원하였으며 보였고 너희 중에 다른 신이 없었나니 그러므로 너희는 나의 증인이요 나는 하나님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11절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내가 그렇게 많이 말했는데...

너에게 그렇게 많이 보여주었는데...

왜 아직도 의심하니?...

나는 여호와라. 다른 신이 아니다 사탄이 아니다...

나는 하나님이다. 내가 말한 것이다. 너희는 나의 증인이다.”


저는 떨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에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달리는 전철 안에서 주님의 음성을 듣고 온몸에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습니다.

주님의 뜻이 너무나도 확실합니다.

너무도 확실하게 주님이 보여주셨습니다.

저는 이 음성을 듣고 그 형제가 내 배우자임을 다시는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교회에서 만나도 편안했습니다.

여전히 나에게 시선을 주지 않습니다.

표정 또한 여전합니다. 그래도 그 형제가 내 배우자인 것은 이미 정해진 사실입니다.

때가 되면 주님이 모든 것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아~! 어떻게 이런 믿음을 가질 수 있었는지???



7 하늘에서 온 사람

프러포즈하다

이 말씀을 받고 열흘이 지난 어느 날 오전입니다.

저는 교회 일로 그 형제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나의 용무를 마치고 전화를 끊으려 하자

“잠깐만요 자매님!... 오늘 저녁에 시간 있어요?” 합니다.

아~! 이제야 뚜껑을 여시나 봅니다.

이제야 하나님이 드러내시려나 봅니다.

저녁시간에 약속을 했습니다.

그리고 전화를 끊고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의심쩍습니다.

내게 눈길 한번 주지 않던 형제가...

마주치기라도 하면 그렇게도 냉정하던 형제가 오늘 갑자기 포러포즈를 한다는 것이...

프러포즈하려고 만나자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화를 끊고 저는 그 자리에 꿇어앉아 기도했습니다.

“왜 만나자고 하는 것이지요?”

내가 기대한 프러포즈가 아니라...,

사무적인 일로 만나자는 것인가?

나의 존재가 부담스럽기 때문에...

아님, 교제하는 자매가 있나...? 하는 이런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주님, 이 형제가 나를 만나자 하고 헛소리를 할지도 모르겠군요.

혹시 이런 헛소리를 한다 해도 제 믿음이 흔들리지 않게 하소서. 주님의 말씀은, 주님은 약속은 변치 않으니까요.!!! 아멘!”


그래도 하나님께서 이 날 모든 것을 드러내신다는 기대를 갖고 그 형제를 만났습니다.

순진하고 열정적인 그 형제는 해맑게 웃으며 그리고 쑥스러워하며 제게 프러포즈를 했습니다.

할렐루야!!!


그리고는 한마디 덧붙였습니다.

나에게 보장해 줄 수 있는 것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고난'이라고...,

자신은 고난을 자처하며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살겠노라고.

그래서 공산권에서 선교할 거라고.

자신과 함께 이 고난을 자처하는 삶을 살기를 원치 않는다면 자신의 포러포즈를 거절해도 된다고.


“아~! 그래서 얼마 전에 하나님이 소련성도들의 고난과 순교를 알게 하시고

디모데 후서 4장 말씀을 통하여 바울의 고난을 통한 위대한 삶을 보게 하셨구나!!!”


만약에 이런 것을 모른 체 ㅇㅇ형제의 이런 말을 들었더라면 정말 황당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 프러포즈하면서 자신이 보장해 줄 수 있는 것이 고난 밖에 없다니...

이건 결혼하고 싶은 여자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나를 무시하고 우롱하는 말로 들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황당한 말을 듣고 선뜻 ‘나도 그렇게 사는 것을 원한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정말 고난을 자처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그때는 뭔지도 잘 모르면서...)

그 형제는 조금은 놀란 표정을 하더니 할렐루야! 를 외쳤습니다.

우리는 서로의 간증을 하며 하나님이 허락하신 배우자임을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준 사람, 하늘에서 온 사람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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