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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시를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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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May 03. 2023

섣달 그믐날, 도깨비의 장난

시(詩)를 담다

요즘 무엇이 자꾸 사라진다.


차열쇠를 더듬어 보았다.

음, 또 보이지않는다.

어디로 가기로 했더라?

일단은 걷기로 했다.

어이쿠, 미리 연락한다는 걸.

가만있자... 더듬더듬

손에 든 손바닥만한 가방

온통 헤집어보았지만

전화기도 사라져 버렸다.

이게 어디로갔지?


섣달 그믐밤 잠을 자버리면

도깨비가 찾아와 눈썹을

하얗게 세게 만든다고 했지

아마 그날밤

도깨비가 세게 만든건

눈썹이 아니라 내 머릿속인가 보다.


자꾸 무언가 빠져나간다.

정신을 차려보니 채칵채칵

시간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사라지는 끄트머리도 놓쳐

허우적거리는 동안

앗차,

사람도 사라지고,

풍경도 사라지고,

저멀리 아득하게 어릴적

밤을 새던 꼬꼬마만

문밖에 체를 걸어올리더니

힐끗 쳐다본다.


차츰,

손 끝에서 부터 뿜어나오는 빛,

하얗게 부서져

내가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아앗, 점점 사라져버려!

팡!!


풍경도 사라진 날밝은 빛 속

그저 낯선 여인하나만

알지못하는 장소에 덩그러니 서있네.





무언가를 자꾸 잊어갈수록 낯선 내가 알수없는 곳에 서있는 기분을 느낀다.

어릴적 할아버지께 이야기를 듣고난 후, 섣달 그믐날에는 도깨비가  신발을 못훔쳐가게 숨겨두고 구멍을 세면서 밖에서 밤새우라고 대문밖에 촘촘한 체도 걸어놓곤 했었다. 그때에는 잊지않았지. 찬물에 이가시린 것도 건망증도 아닌 그런 도깨비가 제일 무섭던 시절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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