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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퍼 Jul 14. 2024

아버지는, 돌아가셨어요

우리는 남들에게 지난 3년을 30초로 설명하는 법을 배웠다

엄마와 먼 나라로 패키지여행을 다녀왔다. 계획한 것이 아니라 즉흥적으로 결정한 여행이었다. 패키지여행 특성상 일행 대부분은 가족 단위였다. 전에 학부 전공 수업에서 '가족 신화'라는 개념을 배웠었는데, 이번 여행에 참여한 대부분의 가족들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가족 신화의 정형, 그림으로 그린 듯 행복한 가족들이었다. 보이는 것과 실상은 아예 다른 것일 때가 더 많지만, 약 일주일의 여행을 끝마치고 다시 한국에 도착했을 때 엄마는 난생처음 어떤 가족이 '부럽더라'는 말을 했다.


여행 중 일행 한 분께서 '왜 아빠는 두고 두 분 이서만 오셨어요?' 물으셨다. '아빠는 좋은 곳에 많이 다니셔서 이번에는 둘이 왔어요', 대답하면서 아빠가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때 엄마가 '아빠는 여행 갔다고 생각하자'라고 말했던 것이 생각났다. 아빠는 좋은 곳을 많이 다니고 있을까. 아빠가 꿈꾸던 곳. 아빠가 가보지 못한 곳. 아빠가 먼 훗날의 '보상'이라고 생각하고 젊음과 영원을 희생한 보람이 있는 어떤 곳에.


그게 자의든, 타의든 엄마와 나는 필연적으로 누군가에게 아빠의 죽음에 대해 언급해야 하는 상황에 당면하곤 한다. 따끔거리고, 데일 같고, 차갑고 뾰족한 얼음으로 찔리는 같던 순간순간이 쌓여 이제는 이야기를 언급하며 웃어 보일 때도 있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초연 해졌다기보다 마음 어딘가가 닳아버렸다고 느낀다. 어쩌면 나는 내가 이 껄끄러운 불편함에 침묵하다 보면 이 세상에 이것을 아는 유일한 증인이 사라져 버릴 것이라는 것을 직감하고 있는 것 같다.


련의 과정들을 거치며 엄마와 나는 사람들에게 지난 3년을 30초로 압축해 설명하는 법을 배웠다. 그러다 보면 울퉁불퉁한 것 없이 매끈하고 보기 좋은 말과 사이에서 무수히 많은 것들이 소실되고, 나는 내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 단정한 문장 사이의 행간에서 길을 잃어버리곤 한다. 


누구에게도 상처 주지 않고 아빠의 죽음을 설명할 수 있을까? '효율적'인 설명을 위해 이제 레퍼토리가 된 말들을 무감각하게 반복하는 나를 알아챌 때면 '너무 쉬운 것 아닌가', 하는 생각과 '왜 이렇게까지 어렵지' 하는 생각이 무섭게 상충한다.




사람들은 서로에게 무심한 주제에 남의 사생활에는 참 관심이 많다. 예의와 호기심 사이에서 노골적으로 갈등하는 눈을 들여다볼 때면 가끔은 차라리 동정을 사는 게 싸게 먹히겠다는 냉소가 마음을 좀먹는다. 커피챗이나 면접같이 사회적으로 매끄러운 모습을 보여야 하는 공적인 상황에서는 고의적으로 진실을 부분적으로만 드러냈다. 이후 혹시라도 관련되어 책을 잡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나를 방어적으로 만든다. '사람들에게 집에 남자가 없는 걸 절대 들키면 안 돼', 몇 해 전 아버지를 먼저 잃었다는 지인이 슬픈 눈으로 해줬던 얘기가 시간이 거듭될수록 마음을 찔렀다. 


'왜 퇴사하셨나요? 공백기에는 뭘 하셨나요?'

'가족 구성원이 사고를 당해서 관련된 법적 분쟁을 처리하며 보냈습니다'

'그럼 회사 생활에는 전혀 지장이 없는 건가요?'

그 질문에 '네, 소송은 공식적으로 모두 마무리되었습니다' 대답하는데, 마음속 어딘가에서 '정말?'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너를 구속하던 물리적 제약이 없어졌다고 니가 아빠의 죽음으로부터 정말 얼마나 자유로운데?


아빠의 죽음 이후로 새롭게 알게 된 지인들에게도 당연히 말을 아꼈다. 지인이 친구가 되고, 누군가가 호감을 표시할 때마다 '아빠의 죽음'을 모르는 사람에게 나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아연해진다. 혹시 내가 이런 일을 아주 오래전에 겪었다면 조금 더 쉬웠을까? 관계가 깊어지고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지금의 나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의 진실을 눈앞의 사람에게 언제 어떻게 털어놓아야 할지, 애초에 털어놓는 것이 맞는지, 이런 것들을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분별하게 될 수 있을지 겁이 난다.


사실 나는 아직도 아빠의 부재에서 조금도 벗어나질 못해서.




'요즘은 좀 괜찮아졌어?', '그때 그건 어떻게 해결됐어?', '엄마는 좀 어떠시니? 니가 더 잘해야지.'


나를 제일 괴롭게 했던 것 중 하나는 가까운 지인들의 이런 말들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체 그게 왜?' 하겠지만. 


걱정 뒤로 숨길 수 없는 호기심, 그래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데? 사람들은 마치 무엇이든 들을 권리가 있는 것처럼 눈을 반짝거리며 추궁한다. 그 안에 연민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그들은 마치 가십거리인 듯 사정을 원하는 만큼 캐묻고 나서 그래도 시간이 이만큼이나 흘렀으니 엄마와 내가 충분히 '정돈된' 일상을 영위하고 있다고 제멋대로 믿고 사라진다.


거기 오직 나만 잔뜩 헤집힌 채 남겨진다. 사람들이 마구잡이로 어지럽혀둔 자리를 정리하며 침묵하고, 다시 좁은 마음에 틀어박힌다. 나는 안전하지 못하구나, 나는 약하구나 생각하면서.


우리가 폭풍 속에서 나와 평화를 찾았으면 하는 마음과 진실이야 어떻든 시간이 지났으니 괜찮아졌으려니 치부해 버리는 것은 다르다. 사람들은 내게 지난 3년의 핵심요약본을 요구한다. 그 이야기의 끝은 '그래서 모든 것은 회복되었고 우리 모녀는 일상으로 돌아갔답니다'여야만 한다. 그때 장례식에 못 가서 미안해, 그동안 연락을 못해서 미안해, 사는 게 너무 바빴어, 그동안 이런 일이 있었어. 근데 그래서 그때는 대체 어떤 일이었던 거야? 내가 듣기로는...


아니, 미안해할 필요 없어. 정말로 모두 이해해. 이해 못 할 것도 이해해. 그러니까 날 좀 내버려 뒀으면. 내게 예쁘게 정리해 리본으로 묶인 완결된 이야기를 기대하지 않았으면. 더럽고 추잡한 일들을 연민하는 척 입에서 입으로 가십처럼 다루지 말았으면. 우리가 떫게 말하는 30초를 통해 자신이 무언가를 통찰할 수 있으리라 착각하지 말았으면. 단 한 번도 마음을 들여다보려고 한 적 없는 사람들이 말하는 인생이나 회복이나 재건 같은 일장연설을 듣고 싶지 않다.


그래, 나는 닳아버렸다. 너 잘 웃더라, 많이 괜찮아진 것 같더라, 이제 좀 살만한 것 같더라. 하는 말에 분노가 치밀다가도 이내 그냥 그렇지 뭐, 그냥 사는 거죠 뭐 하고 웃어낸다. 


이것은 어쩌면 누구의 잘못도 아닌 것일지도 모른다. 정말 누군가의 말처럼 모든 것은 '과정'일 수도 있다. 내가 정말 아직 어려서, 부족해서, 경험이 없어서... 그렇다면 언제가 되어야 불필요하고 부차적인 감정 없이 담백하게, 스스로를 좀먹거나 속인다는 느낌 없이도 아빠의 죽음을 설명할 수 있게 될까? 그때가 되면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집어던지고, 제발 나 좀 혼자 놔두라고, 어떤 것도 아는 척하지 말라고, 폭언을 쏟아내고 문을 닫아버리고 싶은 비정상적인 충동도 사라지게 될까? 얼마나 자라야, 여기서 얼마나 더 성장해야? 


엄마도 잘 지내세요. 제가 더 잘해야죠.


사실은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속이 꼬인다. 대체 뭘 안다고 '엄마한테 잘해', '엄마 구박하지 말고', '니가 엄마를 잘 챙겨야지', 쉽게 말하는 걸 들을 때마다 어린애처럼 주저앉아 소리 지르며 울고 싶은 것이 치졸한 진심이다.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하지 마, 여기서 어떻게 뭘 더 하라고 하지 마, 나는 피해자가 아닌 것처럼 일방적으로 모든 것을 책임지라고 하지 마. 사람들은, 정말, 너무도 당연하게 맡겨놓은 것이 있는 것처럼 군다.


'너는 똑 부러진 애잖아.'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되바라진 어린애가 됐다가, 이제 모든 걸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 됐다가, 그 소란 사이에서 침묵하는 엄마를 봤다가, 모두에게 마음을 닫아버리고...


혼자가 된다.




내가 편협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자기가 밟고 선 땅을 초월해서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으니까. 조금 더 솔직해지면, 사실 내가 누군가들의 말처럼 자기밖에 모르고 이기적이고 쌀쌀맞고 못된 애라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는 것이라고 치부해 버리면 모든 것이 편해진다. 그것이 정말 진실이라면 기꺼이 끌어안을 것이다.


정말로 내가 걱정과 애정을 곡해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지. 모두가 타인으로부터 원하는 것을 원할 때 받을 수는 없는 것처럼 원하지 않는 것을 원하지 않을 때 받을 수 있다는 것은 당연하다. 불필요한 것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며 공연히 의미를 부여하지 말자. 하지만 나는 너무나 민감하게 태어났다. 너무 많은 것을 느끼며 살아왔다. 이 글을 쓰면서야 '아빠의 딸'로서의 하루하루가 다시 시작되었다. 그러니까,


사실은 아무것도 말하고 싶지 않다. 아무에게도 얘기하고 싶지 않다. 나 자신과도 얘기하지 못했으니까.


감정은 그것을 조각조각 잘라 분해한다고 깔끔하고 명료하게 해명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나에 대해서, 아빠에 대해서, 엄마에 대해서, 침묵하거나 소리치는 저 사람들에 대해서 오늘의 내가 정리할 수 없는 수많은 것들을 그냥 두고, 언젠가 그것 스스로 이름을 내보이거나 내가 이름을 붙일 만큼 강해지기를 소망하는 수밖에 없다.


차라리 오늘의 내가 세상 둘도 없이 나쁜 애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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