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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섬 Aug 08. 2022

어떤 이의 꿈

학원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수업을 했을 때 꿈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한 아이가 자기의 꿈은 '판사'라고 했다. 유독 '왜?'라는 물음을 좋아하는 나는 아이의 눈을 주시하며 잔뜩 기대에 찬 표정으로 다음 질문을 이어갔다.  


"OO야, 왜 판사가 되고 싶어?"

"엄마 아빠가 판사 하라고 했어요. 판사는 돈도 많이 벌고 사람들이 부러워한대요. 그래서 판사가 되려고요."

나이는 어리지만, 중학생 수준으로 책을 읽고 글을 잘 쓰는 똑똑한 아이라서 색다른 답이 돌아올 줄 알았다.


그건 부모님의 희망이지 네 꿈이 아니잖아. 꿈은 오로지 네가 중심이 되어서 하고 싶은 거, 좋아하는 거 그리고 그 꿈을 이루었을 때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는 것을 선택해야지.

순간 구구절절 설명하고 싶었지만 내게 들은 것을 있는 그대로 또박또박 부모에게 전달할 아이기에 그만 말을 아끼고 말았다.


"그럼 OO 이는 하고 싶은 거 없어? 좋아하는 거."

"음. 저는 소설가가 되고 싶은데 아빠가 그건 취미로 하래요. 엄마 아빠가 저는 판사 하면 잘할 거래요. 잔소리 마왕인 엄마의 잔소리는 정말 듣기 싫으니까 어쩔 수 죠. 뭐."

하나도 거르지 않는 아이의 대답에 마음이 애잔했다.


"OO야, 살면서 꿈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거야. OO 이는 아직 어리니까 많은 경험도 해보고 나한테 맞는 일을 찾으면 되지. 그리고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은 달라."

아이가 속뜻을 알아들을까 싶기도 하고, 또 OO이의 부모님이 아른거려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OO 이는 다음 수업 시간에 자기가 쓴 소설이라며 노트 3장에 빼곡히 쓴 글을 가지고 와서 보여 주었다. 나는 그 마음이 이쁘고 기특해서 바쁜 시간을 쪼개어 다 읽어본 후 하나하나 짚어가며 칭찬도 해주고 어떤 식으로 쓰면 더 좋을지 알려 주기도 했다.

"선생님이 보니까 OO 이는 글을 아주 잘 쓰는데 계속 소설가의 꿈을 키우면 좋겠다."

이 말은 너무나 진심이었다.




어른이 아이에게 물어보는 꿈은 대부분 직업에 관한 노골적인 질문이 더 많다.

'너는 커서 뭐가 될 거야? 어떤 직업을 갖고 어떻게 돈을 벌고 살 거니?'

'말하자면 너는 나중에 뭐 해 먹고살 건데?'

어른의 잣대로 기대하고 꿈이라는 단어로 포장해서 돌려 말할 뿐이다.


4차 혁명이니 혁신이니 시대는 바뀌고 있는데 절대 불변하는 것은 부모가 자식에게 가지는 기대와 공부에 대한 걱정인 것 같다. 정작 나조차도 내 속으로 낳은 아들에게는 여느 부모 못지않게 속물근성을 드러내며 관대하지 못했다.


아들의 꿈은 학년에 따라 점점 업그레이드되었다. 유치원 때는 막연하게 화가, 운동선수라고 하더니 초등 저학년 때는 피아니스트라고 했다. 고학년이 되자 이번에는 과학자가 꿈이란다. 그 꿈은 꽤 오래 유지되었고 심지어 중학생이 된 아들은 카이스트에 갈 거라고 했다.


아들의 꿈이 예체능이었을 때는 우리 부부도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었다. 예체능도 좋지만, 말이라도 우리 부부의 기준에 부합하는 좀 더 실리적인 직업이 나오기를 바랐다. 하지만 아들은 모든 예체능 학원을 섭렵하며 그것이 진정 이루고 싶은 꿈이라고 했었다.

아들이 다시 카이스트에 간다고 했을 때 우습게도 우리 부부는 그제야 마음의 위안을 찾았다.


'과거로 돌아간다면 언제로 가고 싶냐?'는 질문에 다수의 사람이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가 죽도록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싶다'라고 답한 댓글을 본 적이 있다. 블라인드라고 해도 솔직히 학력을 보는 사회이기에 내 자식의 목표가 소위 명문대라고 하면 기분이라도 좋아지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씁쓸하게도 나를 비롯해 대부분 부모가 아이의 마음보다는 내 아이가 어떤 직업을 갖느냐가 더 중요한 것 같다.





그런데,

고등학생인 아들에게는 더 이상 꿈이 없었다.

툭하면 아프다던 아들은 1학년 1학기 중간고사를 치른 후부터 병원을 달고 살았다. 하루는 소화가 안 되고, 다른 날에는 오바이트하며 배가 아프다고 뒹굴었다. 일주일이 멀다 하고 응급실행에, 입원에, 서울로 오가며 각종 검사까지 하루하루가 좌불안석이었다. 다행히 증세에 비하면 검사 결과는 깨끗한 편이었다.


어쩌면 스트레스 때문이었을까. 짜증을 한 번도 내지 않는 아들이 힘들다는 마음의 표현을 몸으로 대신했던 모양이다.

아프다며 학원에 빠지는 날이 많아서 학원을 아예 끊어 버렸다. 학교에 안 가면 큰일 나는 줄 알고 겨우 학교만 다녀온 후 온종일 잠만 자는 아들을 보고 있자니 매일매일 애가 달았다.


2학년 때도 여전히 아들의 컨디션이 좋지는 않았다. 걸핏하면 아프다고 드러누워 버렸다. 이제 입까지 닫고 잠만 자는 하숙생이  아들을 보면서 행여 무기력증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심리 상담을 받아야 하나, 정신의학과에 데려가야 하나. 별별 생각을 다 하는 내 머릿속은 늘 복잡했다.

아들은 시험 기간에도 책 하나 보지 않고 잠만 잤다. 우리나라 고등학생 중에 가장 많이 숙면을 취하는 아이가 우리 아들일 거라고 남편과 우스갯소리로 일축하는 날들이 늘어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이 오랜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엄마, 나는 공부하는 게 싫어.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이유도 모르겠고 하고 싶은 것도 없어. 대학에 가봤자 괜히 등록금만 버리는 건데. 그래서 나 대학 안 갈래!"


배부르다고 젓가락을 놓으면 절대 안 먹는 아이, 한 번 싫다면 아무리 설득해도 결단코 안 하는 아이, 좋아하는 콜라와 라면도 안 먹는다면 하루아침에 뚝 끊어버리는 아이. 그리고 함부로 말하지 않는 아이.


아들의 성격을 익히 알고 있던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느닷없이 큰 돌덩이가 날아와서 심장을 한 대 세게 치고 달아나는 듯했다. 입 밖으로 말을 꺼낸 이상 절대 번복할 리 없다는 걸 알기에 아들의 선언은 더욱 청천벽력 같은 소리로 다가왔다. 어려서부터 하는 것마다 탁월하다는 소리를 듣고 수업 시간에는 누구보다 성실한 아이였기에 공부를 안 해도 기본 성적은 유지했던 터라 기대가 더 높았던 건 사실이다.


"원래 저 나이에는 다 저래. 아들을 믿어! 나도 저 나이에 그랬어. 자기가 하도 걱정을 하니까 내가 우리 학생들한테 물어봤는데 고등학생 때 다들 저랬대. 목표가 생기면 정신 차릴 거래."

남편은 나와 달리 한심할 정도로 마음이 편해 보였다. 아들은 내신을 따야 할 시기인 고등학교 2학년 때도 시험 기간에 핸드폰만 들여다볼 뿐 공부라고는 전혀 하지 않은 채 고3을 맞이했다.


'대학을 못 가면 어떡하지?'

마음이 조급한 나는 아들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입시학원 등록을 권유했다. 중요한 시기에 내신을 말아버린 것도 불안한데 이제 더 이상의 시간 허비는 후회가 될 게 뻔했다.


학원 얘기를 들은 아들은 뜻밖의 반응을 보였다.

"엄마, 난 사람을 살리는 직업이 좋아. 생각해보니까 의사하고 소방관이 사람을 살리는 직업이더라. 의사는 이미 늦었고 적성에도 안 맞아. 소방관이 멋있는 것 같아. 나 소방관 될래. 그리고 소방관은 대학 안 나와도 된대."

입에 테이프를 붙인 것처럼 전혀 말을 안 하던 녀석이 뜬금없이 소방관이 되겠다고 했다.

순간 나는 당황스러워서 뭐라고 해야 할지 마땅한 말을 찾지 못했다.


우리 부부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소방관이라는 직업이 갖고 있는 위험하다는 편견 때문에 매우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아들이 나름대로 고심하고 꺼낸 말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 면전에 대고 - 안 돼! -라고 자르지는 못했다.


"아들! 소방관 좋아. 뭐라도 하고 싶은 게 생겨서 다행이야. 하지만 너는 양가에 하나밖에 없는 손주이고 엄마 아빠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야. 우리 생각도 좀 해줘. 직업이 싫은 게 아니라 위험해서 걱정이 많이 돼. 그러니까 현장에서 뛰는 소방관 말고 내근직 소방관이 되는 건 어때?"


휴.

'하나밖에 없는'을 강조하며 최대한 말을 돌리느라 진땀을 다. 그 와중에 아들에게 하고 싶은 일이 생겨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우려했던 무기력증은 이제 사라진 것처럼 보였으니까.


그로부터 두 달 후,

아들이 다시 입을 열었다.

"엄마, 나는 사람도 살리면서 머리로 수 싸움하는 직업이 맞는 것 같아. 그래서 생각해봤는데 프로파일러가 되고 싶어. 프로파일러가 되려면 범죄 심리대학원에 가야 한대. 심리학과를 가면 범죄 심리대학원 들어가기에 유리 하대."

갑자기 꿈이 바뀌어서 대학에 가야겠다고 아들은 말했다. 그러더니 그날부터 학원을 열심히 다닌다. 아프다는 얘기도 이제 그쳤다.




얼마 전에,

아들은 저녁을 먹으며 진지하면서도 분명하게 다시 말했다.

"엄마, 나 되고 싶은 게 바뀌었어. 나 변호사 하고 싶어. 로스쿨에 갈 거야. 변호사도 사람을 살리는 직업이니까."


조금 있으면 수시 원서를 써야 하는 고3인 아들의 말이 끝나자 나는 뭐라고 대꾸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기뻐하고 반가워해야 할지. 깊은 한숨을 쉬어야 할지.

진작에 마음을 먹었다면 좋았으련만.

이제 수능까지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뜬금없이 갈 길이 아주 먼 변호사라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너 공부하기 싫다며? 로스쿨 가려면 대학 레벨도 중요하고 학점관리는 필수인데. 로스쿨 입학시험도 절대 만만치 않아. 들어간다고 해도 변호사 시험은 또 어떻고. 진짜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이라던데. 앞으로 못해도 10년 이상은 지금보다 더 열심히 죽어라 공부만 해야 할 텐데. 공부하기 싫어하는 네가 어떻게 버티려고 그래?"

공부하기 싫은데 할 수 없이 억지로 하고 있다는 아들의 옛말이 떠올라서 걱정이 먼저 다가왔다.


"엄마, 고등학교 공부는 광범위하고 솔직히 이런 공부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 그래서 너무 하기 싫은데, 대학에 가면 전공에 관한 공부만 집중적으로 하니까 괜찮을 것 같아. 그리고 목표가 생겨서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는 거니까 재미있게 할 수 있을 거야. 나 학교에서 로스쿨 교수님 입시설명회도 신청해서 들어봤는데 변호사라는 직업이 나랑 잘 맞을 것 같아. 재판 사례를 설명해 주셨는데 무척 흥미로웠고 형법이 재밌었어."


이야기하는 아들에게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새로운 눈빛을 보았다. 거기에는 진심과 간절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돈과 명예로 얼룩진 상하 관계의 이 사회를 아들은 이제 받아들인 것일까? 아니면 지금이라도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는 결과물을 만들어 보고 싶어서일까?


"그럼 좀 더 일찍 공부를 시작했으면 좋았을 텐데. 후회하지 않아? 지금부터 공부해도 네가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는 건 쉽지 않을 텐데. 로스쿨은 전적 대학도 본다고 하잖아."

"엄마, 이제라도 내가 하고 싶은 거 생긴 게 어디야. 난 후회 안 해. 만약 내가 수능 시험 볼 무렵에 정신 차렸으면 어쩔 뻔했어? 지금이라도 공부를 하는 게 천만다행이지."


아들은 이제 대학을 갈망한다. 학원 선생님들이 아들의 눈빛을 보면 너무 절실해서 뭐라도 해주고 싶다고 말할 정도이다. 해놓은 것에 비해 목표가 높다 보니 갈 길이 아주 멀다. 다행히 단기간에 성적이 오르고는 있지만 목표로 하는 대학에 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잠이 많은 아이였는데 꿈이 생기니 몰라보게 달라졌다. 무엇보다 눈빛이 변했고 삶의 의욕과 욕심이 생겼다. 대학 합격을 상상하며 신이 나서 떠드는 아들을 보고 노파심에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아들! 엄마는 네가 무기력증인 줄 알고 많이 걱정했었어. 레벨이 높은 대학에 가면 좋지. 근데 지금은 점수 생각하지 말고 수능 때까지 앞만 보고 최선을 다하자. 한 만큼 결과가 나올 테니 결과는 그때 받아들이면 되고. 고3은 공부를 해야 하는 게 맞아. 공부라는 것도 해봐야 하는 방법을 알지. 근데 꼭 대학이 아니더라도 그 시기에 열심히 공부했다는 경험이 중요한 거야. 목표를 위해 노력하면 길은 얼마든지 열려. 혹시 생각만큼 잘 안 되더라도 방법이 한 가지만 있는 건 아니니까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말고."


"나도 알아, 그동안 공부 안 했으니까 지금은 아무 생각 안 하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이것저것 다 해보는 거야."

아들은 벌써 다 알고 있었다. 아들의 속이 언제 저렇게 꽉 들어찼는지 기분이 참 묘했다.


목표가 생긴 아들은 이제 아프지 않고 기분 좋게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고등학생은 잔소리가 통하지 않는 외계인이라고 한다. 목표가 생겨야 비로소 공부를 시작한다고 동기부여가 중요하다는 선배맘들의 조언이 이제야 효력을 발휘하는 듯하다. 무표정한 얼굴에 입을 꾹 닫아버린 아들을 기다려주지 못하고 오만가지 생각을 다 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자신과의 겨루기를 끝내고 드디어 이루고 싶은 꿈을 찾은 아들은 그동안 얼마나 불안하고 외로웠을까.


사람을 살리는 변호사가 되고 싶다는 거대한 꿈을 간직한 채 오늘도 열심히 나아가고 있는 아들을 믿고 응원한다.

 




"꿈이 뭐예요?"


지인을 만나면 한 번씩 하는 질문이다. 서로 다른 개성을 지닌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어떤 꿈을 꾸고 사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그것은 당신에게 관심이 있다는 표현이기도 했다.

그때 지인은 쉽게 말을 잇지 못하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당황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싱겁게 웃었다.


"뜬금없이 그런 질문은 왜 하니? 생각해보지 않아서 모르겠어. 이 나이에 꿈은 무슨."


대부분의 반응이 한결같았다. 하지만 분명한 건 꿈을 이야기할 때 상대의 눈빛에 생기가 돌았고 나에게 한 말과는 다르게 머릿속에서 벌써 꿈을 그리는 듯했다. 주변 사람들이 아닌 나 자신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는 것만으로도 설렘이 가득해 보였다. 그리고 저 깊은 무의식에 간직하고 있었던 꿈을 다시 꺼내려고 노력했다.


우리는 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꿈을 잊고 살았던 것은 아닐까?  




어떤 이는 꿈을 간직하고 살고
어떤 이는 꿈을 나눠주고 살며
다른 이는 꿈을 이루려고 사네




나는 누굴까 내일을 꿈꾸는가
나는 누굴까 아무 꿈 없질 않나
<어떤이의 꿈 - 봄여름가을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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