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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섬 Aug 31. 2022

내가 나에게

"너한테 도움이 될까 싶어서."

어느 날 독서 모임에서 만나 알고 지내던 한 지인이 식사를 하며 책 한 권을 불쑥 건넸다. 어떤 책인지 볼 새도 없이 책 선물 자체가 언제나 반가웠던 나는 그것을 덥석 받아 들었다. 밥을 먹는 내내 기분이 들떠 있었다. 나를 생각해 주는 지인의 마음이 느껴져 좋기도 했지만 나는 책 내용이 너무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책부터 꺼내 들었다. 평소 책을 읽던 순서대로 제목부터 보고 뒤표지글을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다시 앞으로 돌아와 작가의 말을 훑고 목차를 쭉 살폈다.

책을 건네받을 당시 얼핏 보기에는 소설 같았는데 그 책은 심리 에세이였다.


단시간에 책을 탐색한 결과 그 책은 [내 인생의 주인은 나니까 어떻게 하면 내 인생을 조금 더 행복하고, 조금 더 단단하게 살 수 있는지 알려준다]는 내용인 듯싶었다.

덧붙여,

[진정한 내 모습은 무엇인가.

타인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나는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예전처럼 살지 않을 것이다.]

등등 책이 주는 메시지는 그러했다.


'남의 시선이나 세상의 기준이 나를 흔들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그럴싸한 뒤표지의 글을 다시 읽어 보며 설렜던 마음은 금세 누그러졌고 머릿속이 복잡 미묘해지기 시작했다. 책 제목이 말해주듯이 책을 선물해 준 지인의 눈에 비친 나는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찰나 지인에게 한동안 힘들다는 내색을 했던 것이 뇌리에 스쳤다.






세상에서 가장 어색하고, 가장 쑥스럽고, 가장 낯설고, 가장 모르겠고.

그리고 가장 변덕을 부려 제일 하기 어려운 말이 '사랑해'가 아닐까.

'미안하다, 감사하다'라는 말은 살아가면서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상황에 따라 종종 하지만 '사랑해'라는 말은 쉽사리 나오지 않는다. 머리로는 해야지 하면서도 익숙지 않은 단어이기에 입 한번 떼기가 무척이나 어렵다.


주변에서 심심찮게 '사랑해'라는 말을 아끼는 바람에 후회한다는 이들의 속상함을 듣게 되었다. 상대가 눈을 감고 이 세상을 떠난 후에야 때늦은 사랑 고백을 하기도 했고. 영원할 것 같았던 연인의 마음이 변한 것을 모르고 그 크기가 내 마음보다 훨씬 작아진 뒤에야 부랴부랴 사랑을 고백했다는 슬픈 이야기도 들렸다. 그러고 보면 사랑에도 타이밍이 있는 듯하다.


나 또한 그동안 사랑을 말로 표현하지 않고 저 아래 내면 깊숙이 자리하게끔 꼭꼭 숨겨 두고 대상에게는 '난 널 항상 생각하고 있어, 말 안 해도 내 마음 알지?'라며 혼자서 속삭였던 것 같다.


남에게도 그렇게 했던 내가 나를 챙겼을 리가 없다. 어쩌면 지인의 생각대로 나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동안 어떤 시간을 보냈니?
왜 한숨이 늘었어?
요즘 외로워?
혹시 울고 싶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너 참 쓸쓸해 보인다.


내가 나에게 안부를 물은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누구보다 나를 잘 아는 나인데.

머릿속이 온통 주변 사람들로만 가득 차다 보니 어느새 그 사람들 중에서 나는 빠져 있었다.  


엄마니까, 며느리니까, 아내니까, 딸이니까 그리고 직원이니까.

내게 주어진 하나의 자격이 꼬리표처럼 따라붙어서 내 마음의 소리를 들을 새가 없었다. 때로는 하기 싫은 일도 억지로 하고, 부당해도 참고, 그것은 옳지 않다고 따지려 들다가도 그냥 삼킨 경우가 많았다.


'누구보다 나 자신이 소중하다, 내 행복이 우선이다, 할 말은 하고 살아라.'

시대가 바뀌었음을 강조하며 이 시대의 모든 매체는 똑같이 한목소리로 방안을 모색해 줬지만 정작 그것을 실제로 이행하기란 현실적으로 쉽지는 않았다. 이미 상황에 익숙해져 길든 내가 남의 시선까지 뛰어넘으며 그 틀을 깬다는 것은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냥 내가 참고 말지.
힘들어도 내가 하고 말지.
그래, 좋은 게 좋은 거야.
저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항상 나의 발목을 붙잡았던 것들을 뿌리치고 나를 찾는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때로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비가 올 것 같은 우중충한 날씨에 창밖은 온통 회색빛으로 물들고, 몸은 찌뿌둥해서 여기저기 쑤신데 아팠던 자리가 다시 아플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드는 날.


모두 일을 찾아 집을 나가고 세상은 온통 고요한데, 나는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하고 혼자 우두커니 창밖을 쳐다보며 바쁜 사람들 사이로 이방인이 된 듯한 착각에 빠져 문득 이 세상에 혼자 남겨졌다고 느껴지는 날.


온종일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정신없이 바빴는데 집안일은 쌓여있고 아무도 수고했다는 말 없이 밥 달라고 모두 나만 쳐다보고 있는 날.


만나면 꼭 끝이 안 좋은 지인과 시간을 보내고 들어와서 나누었던 이야기를 복기하며 만남을 후회하거나 찝찝한 기분을 떨치지 못해서 절대 징크스는 깨지지 않는다고 다시 한번 실감하는 날.


그리고 살다 보면 아무런 이유 없이 모든 것이 귀찮은 날이 꼭 하루는 찾아온다.


이럴 때면 손 놓고 가만히 누워 있고 싶다. 하지만 자꾸 시계에 눈길이 가고 행여나 놓쳐버린 일이 있을까 봐 휴대폰을 수시로 들여다보게 된다. 밥을 먹여 아들을 학원에 보내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한몫한다. 


아침에는 제일 먼저 일어나 가족들을 깨워줘야 한다는 의무감에 알람 소리에 귀를 맞추고 때로는 알람보다 먼저 눈을 뜨게 된다. 슬프게도 이젠 몸이 늦잠을 거부해버린다. 


먹고 싶은 것을 먹으라고 하지만 막상 밥상을 차릴 때면 '이것은 저 사람이 싫어하니까, 저것은 이 사람이 좋아하니까'를 고려해 식단을 구성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고유했던 나만의 식성도 결혼생활 연수만큼 식구들의 입맛에 맞춰져 버렸다.   






그랬던 나인데.

이제는 나를 돌보려 한다.


누군가가 알아주기를 바라지 않고 내가 나를 알아주려 한다.


나를 끊임없이 탐구하고 세밀히 관찰해서 무엇이 힘든지, 무엇이 부족한지, 무엇을 원하는지 귀 기울여 들어보려 한다.


가끔은 어른인 척하다 외로워지려 할 때 그러지 말라고 알아차리도록 나를 두드려주려 한다.


괜찮다며 무언가 숨기려 할 때 그 누구보다 큰 목소리로 들추어 위로를 받게끔 해주려 한다.


세상의 모든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져서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온전히 나로 살아갈 수 있도록 내가 나에게 용기를 주며 따뜻한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으려 한다.


남들이 몸을 사릴 때 대신 뛰쳐나가려 하면 내가 나를 붙잡아 이번에는 쉬어도 된다고 조용히 속삭여주려 한다.


너를 좋아하는 사람은 무수히 많지만 너를 싫어하는 사람도 존재해야 재미있는 거라며 세상의 이치를 설명해주려 한다.


그래서,

먼 훗날 내 얼굴에 앉아있는 주름의 흐름이 고뇌로 번진 울상이 아닌 곱게 늙은 인자한 미소로 누군가의 가슴에 흐뭇하게 남겨질 수 있도록 나는 나를 사랑하며 살려고 한다.

 

그리고 매일 한 번씩 일몰의 시간이 되면 내가 나에게 안부를 꼭 물어보려 한다.


"오늘 하루는 어땠어?"




상처받느라 애쓴 널 안아 주기를
잘 버텼다고 다독여 주길
세상에 떠밀려 오르막길 오르지 말고
이제 너만의 길을 걸어가길
너는 그랬으면 해
이젠 그랬으면 해
<내가 나에게 - 신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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