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는 사람
힘을 쓰지 않기 위해 힘을 쓰기
장형의 전략인 힘겨루기는 8유형에게서는 매우 직접적인 형태로 1유형에게서는 다소 간접적인 형태로 드러나지만 두 유형 모두 적극적으로 자신의 뜻을 주장하고, 주저 없이 상대방에게 맞서며, 사람들 사이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맡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기는 편이다.
9유형도 그들과 같은 장형으로서 자신의 통제력을 보호하기 위해 힘겨루기에 참여한다.
그러나 외적으로는 나머지 두 유형만큼 적극적이거나 과감한 모습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사랑받기 위해 사랑에 대한 욕구를 잊는 3유형과 의심이 두려워 확신하는 6유형처럼, 9유형은 힘을 쓰지 않기 위해 힘을 쓴다.
힘을 쓰지 않는 것은 다양한 맥락에서 다양한 형태로 드러난다.
자신과 관련된 일인데도 상황을 주도하지 않고 제삼자처럼 관망하기
마음에 들지 않는 현실을 적극적으로 바꾸기보다는 몽상에 빠져들거나 이 정도면 괜찮다고 합리화하기
골치 아픈 사안에 몰두하지 않고 사안에 대해 까맣게 잊어버리기
새로운 아이디어에 대해 열띤 대화를 나누다가도 무심코 기존의 관점을 반복하기
근본적인 원인을 들여다보지 않고 임시방편에 만족하기
원하는 것을 직접 얻지 않고 다른 사람을 통해 얻어지는 것에 만족하거나 자신이 진짜로 원하는 것을 보지 않은 채 타인을 모방하기
위 진술들의 앞부분이 '핵심에 닿고 변화함으로써' 힘을 쓰는 것이라면 뒷부분은 '피상적이고 현상을 유지함으로써' 힘을 쓰지 않는 것이다.
그들은 소위 '흐린 눈'을 통해 자기 자신과 타인 그리고 현실을 바라보면서, 자신을 흔들고 변화를 촉구할 만한 것들을 대수롭지 않고 긴급하지 않고 평범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편안함을 유지한다.
심지어는 자신과 타인의 특별하고 뛰어난 면, 뒤틀리고 도드라진 부분들에 대해서도 평범한 것을 보듯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하기도 한다.
(어떤 9유형은 섬세한 감성을 가져서 무드에 잘 젖을 수도 있으나 그것에 의해 실제로 일상이 뒤흔들릴 정도로 영향을 받을 때가 많았는지 살펴보면 좋다.)
그리고 이 흐린 눈을 유지하는 데에 엄청난 힘을 들이기 때문에 문제를 명료하게 직시하기 위해서는 보다 큰 강도의 충격이 요구되고는 한다.
이렇게 힘을 쓰지 않으려 온 힘을 다해 버티는 것이 그들의 생존 전략이기 때문에 이를 방해하는 존재는 필연적으로 그들과 힘겨루기를 하게 되고, 상대방이 9유형을 움직이려고 하면 할수록 도전자에게 응전하듯 더욱 강력한 완고함으로 압력을 버텨낸다.
상대방이 실제로 그들을 방해할 의도가 없다고 해도 9유형은 자기 영역을 보호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장형인 만큼 무심코 상대방을 도전자나 경쟁자로 간주하고 경계하기도 한다.
그러나 쉽게 흥분하지 않고 고민거리가 있을 때조차 어딘가 여유로운 분위기가 있으며, 혼란 속에서도 숙면을 취하거나 취미에 몰두하는 등 자신을 편히 쉬게 할 내/외적인 시공간을 잘 찾아내는 점 때문에 9유형에게서 안정감을 느끼고 기대는 사람들도 있다.
9유형의 힘은 좀처럼 바깥으로 향하지 않고 자신 안에 응축되어 있지만, 만물을 잡아두고 생태의 질서를 유지하는 중력과 같이 사람들 사이에서 암묵적으로 통제력을 발휘하고 있을 수 있다.
가령 누군가가 지나치게 튀지 않게, 누군가가 지나치게 간과되지 않게 조절하는 것이다.
(이것이 합리적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그저 본능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다.)
또한, 버티기 전략은 단지 자기 방어가 아닌 진취적인 방향으로 향할 수도 있다.
만일 그들이 자신의 뜻을 현실에서 이루기로 진정 결심했다면 그 의지가 끝내는 관철될 때까지 외부의 압력을 버티며 꾸준하게 밀고 나갈 것이다.
장형은 장에너지가 가져다주는 현실과 현재에 대한 집중력, 생존과 승부에 대한 예민한 감각에 영향을 많이 받는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장형에 대한 설명은 생존 전투에 참여하는 생명체로서의 인간상이 부각되어있다.
8,9,1유형은 서로 절대적으로 다른 존재들이 아니라 이러한 인간상을 구성하는 스펙트럼의 단면들인 것이다.
그러나 장에너지는 장형만이 아닌 모든 사람 안에서 역동하며, 모든 사람에게 '장형적인 나'가 존재한다.
삶에는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라 그저 나라서, 그저 살아있기 때문에 하게 되고 또 해야만 하는 것들이 있다. 끝없이 펼쳐지는 선택의 기로에서 우리는 하나를 선택하고 그곳으로 나아가야 한다.
미워하지 않지만 나의 갈 길을 가기 위해 장애물을 단숨에 베어버리는 차가운 분노.
그것은 장에너지에서 비롯되며 수많은 맺고 끊음, 결단, 새로운 시작의 순간에 함께 한다.
좋지 않은 습관을 끊어내는 것, 어렵지만 끝까지 해내는 것, 좌절했지만 다시 일어나는 것들이 그러한 순간들이다.
우리 안의 8,9,1유형은 어떤 모습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