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한 종이 인간의 고군분투기 3
썰물이 휘몰아치는 자리에는, 밀물일 때는 보이지 않았던 저 뻘 깊숙이에서 고개를 내미는 녀석들이 있다. 나의 삶이 썰물일 때 만을 기다렸다가 죽지도 않고 살아 돌아오는 생명력 강한 바퀴벌레 같은 녀석들이다. 그것은 주로 무기력함, 외로움, 불안함, 자기부정의 형태를 하고 나타난다. 나는 이것들이 내 인생에 나타났을 때 바퀴벌레에 살충제를 뿌리듯이 퇴치했다. 많을 때는 오래 걸릴 때도 있고 적을 때는 금방 사라지기도 한다. 그때그때 방식은 다르지만 나는 꽤나 건설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부정적인 감정들을 퇴치하며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내 깊은 속마음을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를 두는 것, 운동을 하는 것, 일에 더 몰두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 피곤하더라도 각종 취미를 만들어내 시간을 보내는 것, 스트레스 요인을 머릿속에 들이지 않는 것, 나에게 웃을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 등 내 살충제는 수십여 가지가 존재한다. 적재적소에 쓰면 이 살충제들은 효과가 분명히 있다. 더군다나 알코올에 빠진다거나 하는 자기 파괴적인 방법도 아니니 얼마나 건강한가. 인생에는 꽃향기와 봄바람도 있지만 바퀴벌레도 공존하는 것이고 누구나 그것을 필요에 따라 물리치며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여기서 간과한 것은, 바퀴벌레는 번식한다는 사실이다. 나는 나의 집에 이 친구들이 진을 칠 때까지 내 집이 잠식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물리칠 힘이 다 없어지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내가 얼마나 이것들을 피하고 외면하고 살아왔는지 조금 알아차렸다. 눈에 띄어서 날 힘들게 할 때만 온 힘을 다 써서 급하게 막아버린 것이다. 이제는 이것들이 나타났을 때 눈에 보이지 않게 막아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견고한 둥지를 조금씩 무너뜨려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나중에 한 두 마리가 내 눈앞에 나타나더라도 지금처럼 많은 에너지를 쏟지 않고 보내줄 수 있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선 틀어막기 바빴던 나의 진짜 마음을 들여다봐야 할 것 같다. 그 첫 단추로, 죽이기 가장 힘든 지독하고 끈질긴 감정인 외로움을 마주하고자 한다. 이 외로움을 극복하는 것이 나에게는 평생 풀지 못할 숙제와도 같기 때문이다. 없앨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하고 너와 함께 살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이제는 너를 버려야 내가 숨을 쉴 것 같아서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