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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림 Jun 05. 2024

외로움, 너의 정체는 무엇이니

예민한 종이 인간의 고군분투기 4

    

     나를 가장 지독하고 끈질기게 따라다니는 이 외로움은 어떻게 해야 버릴 수 있을까.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내가 생각해 낸 방법은 반려 고양이를 들이는 것이었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심사숙고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첫째 이유는, 내가 내 몸뚱이 하나 건사하지 못하는데 그 아이에게 충분한 보살핌과 사랑을 줄 수 있을까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었고, 두 번째 이유는 그 아이가 나의 삶에 들어오는 순간 나의 외로움을 채워주는 데에는 아주 완벽한 역할을 수행할 것이지만, 그와 동시에 그 아이를 잃었을 때에 대한 대비를 지금부터 해야 한다는 선생님의 말 때문이었다. 이 말이 나에게는 '하나의 더 거대하고도 무시무시한 리스크를 너의 인생에 들여놓겠니?'라는 말로 들렸다. '너는 그것을 감당하지 못할 거야'라는 속삭임 같았달까. 깔끔히 인정했다. 그리고 마음먹었다. 내가 고양이를 필요로 할 때가 아닌, 고양이가 나를 필요로 할 때가 오면 그때 그 아이를 맞이하기로.


    내가 말하는 이 외로움을, 이게 왜 고통스러운지 나의 가까운 이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인간은 원래 고독한 존재라고 하지 않는가 라며 말이다. 허나 고독함은 내가 고독을 선택할 수 있을 때 느껴지는 숭고한 감정이 아닌가 싶다. 내가 선택할 수 없을 때에 느껴지는 감정은 이 세상 한가운데에 나 홀로 존재하는 느낌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인생의 시기마다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았다. 그 사람은 주로 이성친구의 자리에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 고리가, 내가 잡아둘 수 없는 고리임을 알게 된 순간부터 나는 급속도로 더 외로워지기 시작했다.  


    이 근원이 어디인가 추측해 보았다. 나는 왜 외로운 감정을 의지할 사람을 찾는 것으로 채우는가. 나는 혼자 헤쳐나가는데 익숙한 사람이다. 자유방임의 양육 방식 아래 타인에게 작은 도움조차 청하지 않는 아주 독립적인 인격체로 성장했다. 혼자서 잘하는 아이, 알아서 척척 잘 크는 아이, 그 아이가 나의 부모님이 바라보는 나였고, 나는 그 기대에 부응했다. 그런 아이가 이렇게 성인이 되어 누군가 의지할 상대를 끊임없이 갈망하는 어린 어른이 되어버리리란 건 그들도 예상하지 못했겠지. 기억나는 두 개의 에피소드가 있다. 한창 공부를 하던 시절, 내가 3년 내내 바라고 요청했던 것은 딱 하나였다. '나를 믿는다고만 하지 말고, 나에게 뭐가 좋을지 한 번만 조언해 주세요.'였다. 네가 스스로 더 잘 알 것이라고 했다. 성인이 되어 너무나 견디기 힘든 시기를 겪고 있을 때 내 인생에 있어 처음으로 '나 요즘 힘들어요'라고 용기 내어 말했다. 그런 말 할 거면 전화하지 말라고 했다. 여기서 문제는 내가 독립적이고 강단 있는 아이가 태초에 아녔다는 데 있다. 강한 아이였다면 이 말을 먹고 무럭무럭 성장했겠지.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탓하고 싶지 않다. 단지 내가 종이 인간인 것이 유일한 문제였다.

    

    혼자서 모든 일을 헤쳐나가며 독립적이고 자주적으로 내 인생을 개척해 나가는 척하는 한 자아의 이면에는 내가 정신적으로 기댈 수 있는 무언가를 가진 사람을 찾아 헤매는 자아가 존재했다. 그게 내가 버티는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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