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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림 Jun 12. 2024

감정을 숨기는 방법

예민한 종이 인간의 고군분투기 5

    

     의지를 할 사람을 찾는다는 것은 다시 말하면 내 약한 부분을 감싸줄 상대를 찾는 것이기도 하다. 독립적이어야 하는 나란 사람은 약한 모습을 남에게 보이거나 솔직하게 감정을 내비치는걸 극도로 두려워했다. 감정에 휘둘려 넘어지지 않으려는 일종의 방어책이었는데, 그것이 방어책이었음을 진짜의 나는 너무나 연약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이 시기에 절실히 깨닫는 중이다. 나에 대한 적당히 먼 사람들의 평가는 주로 다음과 같았다. 매사에 침착하다, 스트레스를 잘 컨트롤하는 것 같다, 감정 기복이 없다, 무던하다. 이 모습이 내가 지금까지 열과 성을 다해 쌓아 놓은 강한 줄 알았던 방어벽이다. 정말 강한 사람은 감정을 내비치는데 두려움이 없다. 하고 싶은 말을 편안하게 하고 관계에 선을 긋지 않는다. 재밌으면 재밌음을 표현하고 화가 나면 화가 남을 표현한다. 그 표현에 대한 반응에 의해 다치지 않으니깐. 반면에 다시 말하지만 나는 스치는 바람에도 팔랑거리는 종이 인간이다. 완벽히 앞의 성향들과 반대의 인간이라는 것을 스스로도 인정하지 않았을 뿐.


    첫 화의 에피소드는 바로 내가 이상적으로 만들어 놓은 나의 모습에 균열이 생겼음을 인지한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난 항상 일은 일일 뿐이고 그 수많은 관계와 말과 상황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내가 내 안으로 들여놓지 않은 어떠한 관계가 나에게 영향을 준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 난 그렇게 선을 그어두고 매사에 무던한 척하며 철저히 나를 지켜왔다. 그것이 나를 지키는 방법이 아니었음을 깨닫기 전까지. 그리고 이러한 착각은 내 진심조차 왜곡하게 만들었다.


    잘 알지 못하는 전혀 가깝지도 않던 누군가에게 내가 웃고 우는 모습을 보이고 내 솔직한 심경을 이야기해 대며 감정적으로 의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날이 있었다. 내가 약해져도 나를 평가하지 않는다는 느낌, 내가 말하지 않아도 내 눈을 읽는 듯한 느낌. 그때 느꼈던 안정감은 평생에 느껴본 감정 중 가장 편안한 안정감이었다. 그리고 나는 무심코 당신을 의지하고 있다는 말을 뱉어버렸다. 그 말이 무엇을 의미했는지 아마 그 사람은 알지 못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 후부터 자동 반사와도 같은 보호막 체계가 발동됐다. 내가 느낀 그 감정이 그 사람을 내 곁에 두고 싶어 하는 마음으로 연결될 것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머릿속에 '그 사람을 의지하면 안 돼. 그 사람이 안전한 사람인지 증명되지 않았잖아.'라는 말이 계속 맴돌았다. 그렇게 나는 방어벽을 씌운 채로 오랜 시간을 흘려보냈다. 마음 깊은 곳에서는 그 사람을 갈망함을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단 한 번도 상대에게 드러내려 하지 않았다. 그 대신 그 사람의 태도와 행동과 말투를 보며 이 사람도 나를 원하는지 끊임없이 판단했다. 그 사람을 알아가기보다 그 사람이 나에게 안전한 지를 확인하는 것이 더 중요했으며, 모든 요소를 내 방식대로 조합하여 혼자 판단을 내리고 혼자 상처받았다. 본질은 너무나 간단하게도 '나는 너와 있으면 행복하고, 너도 같은 마음이었으면 좋겠다' 뿐이었는데, 그 대답을 듣고 상처를 받는 대신 내가 내린 결론에 내가 상처받는 길을 택한 것이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은 척 눌러 담았다. 아무렇지 않은 것이 아니었는데 말이다. 나는 나를 지속적으로 속였다. 그것은 나를 결국 무너지게 만들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나를 속이지 않고 솔직해지는 방법을 깨달아야만 한다. 어떻게 해야 그럴 수 있을까. 평생 동안 쌓아온 방식을 어떻게 해야 바꿀 수 있을까. 그렇게 되는 날에는 나는 비로소 누군가가 필요하지 않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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