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한 종이 인간의 고군분투기 7
급한 불을 약으로 끄고 나니 하루가 더 이상 괴롭지는 않았다. 약 복용과 함께 꾸준히 나를 채우는 생활 습관을 만든 것도 분명 희망적인 변화의 시작점을 열어 주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이렇게 요양에 집중하는 평화로운 생활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나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했다. 다시 세상 밖으로 나가면 언제 또 쓸려나가 버릴지 모르니까 말이다. 인생이란 파도 위를 즐겁게 서핑하는 방법, 그것을 찾기 위해 그동안 쓴 글을 되짚어 보기 시작했고, 나 혼자 그것을 발견해 낼 수 있을까 하는 불확실함에 상담도 받기로 했다. 주당 1시간의 상담에서 내가 기대한 것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부정적이고 잘못되었으니 이러한 방향의 긍정적인 생각을 하려고 하시면 됩니다." 였던 것 같다. 그런데 수차례의 상담 세션동안 나 혼자만 떠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문득 정신이 들어 "선생님, 저만 얘기하는 거 같은데 이게 치료가 되는 건가요? 전 제가 강해지는 방법을 알고 싶은데요."라고 물었으나, 돌아온 대답은 이러했다. "강해지고 싶은 거군요. 이야기하면서 차차 스스로 찾아 나가게 될 거예요."
스스로 찾아야 하는 거라면 왜 나는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가. 돌아오는 길에 선생님의 대답과 내가 했던 말을 천천히 곱씹었다. 강해지는 방법을 알고 싶어요. 전 제가 강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전 정신력이 꽤나 강해요. 어떤 사람도 상대할 수 있고요. 엄청 독립적이에요. 어디다 데려다 놔도 혼자 살 수 있어요. 도움을 요청하지도 않아요. 어렵다고 하는 일도 대수롭지 않게 처리할 수 있고요. 일하다 왜 우는지도 이해 못 하겠어요. 그렇게 잘해왔는데 왜 이렇게 된 걸까요?
온 세상 모든 것이 불안으로 가득했던 사춘기 시절 나는 엄마와 꽤나 자주 싸웠다. 기억나는 엄마의 말이 있다. 너는 싸워도 금방 훌훌 털어내고 뒤끝이 없어서 좋다는 말이었다. 아침에 싸우고 나가면 하교 후 집에 들어올 땐 언제 싸웠냐는 듯이 발랄한 모습으로 돌아왔으니깐. 정말 훌훌 털어냈던 것일까 기억력이 안 좋아 싸운 것을 통째로 잊어버린 것일까. 난 어렸을 때부터 자극에 예민했고 감정이입을 너무나 깊이 하는 아이였다. 플랜더스의 개를 읽고 밤새도록 꺼이꺼이 울었는데 그때 느낀 슬픔과 아픔의 강도가 절대 잊히지 않을 만큼 충격적이었다. 그리고는 스무 살이 훌쩍 넘어서까지 슬픈 책이나 영화를 전혀 보지 않았다. 그런 나는 집 안의 공기와 분위기를 모든 감각기관을 통해 읽어내곤 했다. 보지 않으려 해도 보였고 듣지 않으려 해도 들렸다. 문닫힌 저 방 너머의 아주 작은 한숨소리, 짐짓 짜증이 섞인 말투, 어제와 다른 입꼬리가 살짝 쳐진 표정, 달그락 거리는 수저 소리만으로도 나는 모든 가족 구성원의 기분을 읽었다. 그리고 그 모든 비언어적 자극은 나에게 고통과 불안함으로 다가왔다. 고로 '뒤 끝이 없는 나'라는 존재는 별로 개의치 않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엄마의 아픔이 잔뜩 뒤섞인 공기가 생성되지 못하게 막는 역할을 했다.
성인이 되어서는 이 방식이 더욱 진화했다. 누군가의 말과 행동을 내가 불안하지 않게 통제할 수 없었으므로 나는 내가 느끼는 것을 부정하기에 이르렀다. 연인과 다투는 단 몇 분의 순간에 그 사람의 표정, 말투, 눈빛, 말속에 숨은 의미 하나하나까지 뇌리에 수만 가지 생각이 스침에도 그것은 내가 만들어낸 허상이라고 되뇌며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웃어 보였다. 아픈 감정을 아픈 것이 아니라 왜곡시켰고 입을 닫았고 기억을 지웠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의 친구와 함께 연인을 만났던 적이 있었다. 그 자리 이후에 친구가 나에게 와 말했다. "너는 왜 그 친구가 너한테 하는 기분 나쁜 말을 듣고도 가만히 있어?" 나의 대답은 이러했다. "뭐가 기분이 나쁜 말이 있었어? 난 몰랐는데?" 거짓말이 아니라 난 정말 알지 못했다.
타고난 예민함을 부정하고 뭉뚝하게 만들어 버리려 했던 나의 방식에는 이렇게 큰 허점이 존재했다. 진짜와 허상을 가려내지 못했다. 화가 나야 할 순간에 화를 내지 못하고, 이 사람이 나에게 한 행동이나 말이 나를 공격하는 말인지 아닌지 구분하지 못했다. 그리고 내가 오늘 아무렇지 않게 웃어 보이고 돌아선 그 사람의 말이 사실은 나쁜 의도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스치면 그제야 한참을 혼자 고통스러워하다 그런 생각을 하는 나를 채찍질했다. 그건 강하지 못한 거라고. 그렇게 웃은 게 잘한 거라고.
예민하다는 것은 양날의 검이다. 잘 쓰면 아주 섬세하고도 첨예한 무기가 될 수도, 잘 못 쓰면 내 손을 베어버리는 무딘 칼이 될 수도 있다. 나는 이 무기를 감추며 속으로 나를 베어버렸지만 이젠 조금은 드러내고 살아도 될 것 같다. 툭 던진 말에, 눈빛에 상처받는다는 사실이 내가 약한 사람이라는 것과 같은 것은 아니니까. 그걸 감추기 위해 억지로 괜찮은 척 웃어 보일 필요도 없다. 그리고 약한 사람이면 어때. 나는 누구보다 남들을 이해할 수 있는 소머즈와 같은 귀와 진심으로 공감할 수 있는 마음을 가졌는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