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나에게 음악이란?
2025년 여름, 경주의 해와 달이 자리를 바꾸자 너드커넥션 보컬 서영주의 목소리가 흘렀다.
“이대로 내 곁에 있어야 해요
나를 떠나면 안 돼요
세상의 모든 걸 잃어도 괜찮아요
그대만 있다면 그대만 있다면”
달궈진 경주는 어느 새 노래에 한 김 식은 것마냥 낭만이 넘쳤다.
하늘은 분홍빛과 푸른색이 어우러지고 있었고 사람들은 땀에 젖은 셔츠를 펄럭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노래의 리듬에 맞춰서.
모두가 행복해보였다. 물론 나도.
오랜만에 야외 공연장을 찾았다. 어딘가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감정이 고개를 들었다.
슬리퍼를 끌고 걷는 사람들, 포토존 앞에서 사진을 찍는 연인들, 뜨거운 햇볕아래 주인 대신 자리를 지키고 있는 돗자리들. 어디에 서 있어도 ‘지금 나는 공연장에 와 있다’는 감각이 또렷하게 느껴졌다.
음악이 시작되자 경주의 여름 공기가 달라졌다. 너드커넥션의 기타 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공기 중에 잔향처럼 맴돌고, 빈 돗자리에 사람들이 앉기 시작했다. 누구는 부채를 접었다 폈다 하며 땀을 식히고 있었다. 손풍기를 목에 걸고, 아이스크림을 나눠 먹는 엄마와 아이, 돗자리에서 젤리를 집어먹는 연인들, 그리고 그 사이 어딘가에 나도 조용히 앉았다. 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지만, 바람 한 줄기만 스쳐도 모두가 동시에 ‘아~’ 하고 탄성을 터뜨렸다. 이상했다. 이 더위 속에서 이토록 마음이 평화로울 수 있다는 게.
나는 어느 순간부터 연주를 ‘듣는’ 게 아니라 ‘기억하고’ 있었다. 누군가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면, 나의 뇌는 자동으로 과거의 장면들을 꺼내 들었다.
모니터가 꺼졌던 그날, 프롬프터 대신 대자보를 들고 뛰었던 날, 인이어 끊김 문제로 가수를 오해했던 순간. 나는 마치 녹화 현장에 앉아 있는 듯 공연을 보면서도 자꾸 ‘일’을 하려 했다. 몸은 관객석에 있었지만 마음은 자꾸 무대 뒤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음악이 나를 멈춰 세웠다. 그냥 들으라고, 그냥 느끼라고. 내 기억과 손끝의 피로를 내려놓으라고. 그 순간, 나는 비로소 관객이 되었다.
나중엔 노래에 맞춰 박수를 치고, 코끝이 찡하고, 어떤 곡에서는 그냥 가만히 있었다. 아무 말도,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온전히 ‘있는’ 감각. 음악은 늘 나를 그렇게 잠시 멈추게 한다.
갑자기 묘한 행복이 느껴졌다.
음악을 들으러 온 건 분명한데, 음악을 만들던 시절의 내가 그 속에 섞여 있는 것 같은 이상한 기분 탓이다. 귀로는 공연을 듣고 있는데 마음은 무대 뒤편에서 분주하게 뛰어다니던 나를 다시 만나고 있었다.
그날 경주역의 밤공기는 무더웠고, 사람들은 부채를 흔들며 웃고 있었고, 무대 위의 가수들은 진심으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누군가는 휴대폰 플래시를 켜고, 누군가는 리듬에 맞춰 고개를 흔들고, 누군가는 눈을 감은 채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모두가 다 다른 방식으로 음악을 듣고 있었지만, 이상하리만치 같은 온기를 공유하고 있었다. 갑자기 과거, 음악프로그램을 제작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아, 내가 그 프로그램을 왜 만들고 싶었더라?
처음 꿈꿨을 땐, 단순히 ‘좋아하는 음악’을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음방 제작지식이 없었던 나는 무대 뒤에서 늘 조마조마했다. 장비가 말썽을 부리지 않을까, 관객이 떠날까. 가수는 노래를 잘 할 수 있겠지? 등등. 그런데 그날, 무대 밖에서 바라본 공연은 그냥 그 자체로 아름다웠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어쩌면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더 사람 냄새가 났고, 그래서 더 오래 남는 감정들이었다. 그 날 출연 팀이었던 너드커넥션의 연주가 흐르고, 권순관의 피아노가 춤을췄던 그 순간. 나는 이상하게도 울컥했고, 몇 번이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래. 나, 이런거 만들고 싶었잖아.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이게 행복이었잖아.”
과거의 어느 시점, 나는 그저 ‘음악 프로그램 한 번 만들어보는 게 꿈’이라며 도전했고, 비록 미완에 그쳤지만 꿈에 조금은 다가갔다고 생각한다.
음악은 참 묘하다. 모든 것이 응원이고 위로다.
이 연재는 바로 그 응원과 위로 사이에 서 있는 이야기다. 무대 뒤에서 음악 하나 만들겠다고 바동거리던 방송작가의 웃기고도 서글픈 분투기. 누군가는 ‘그래서 그걸 왜 해?’라고 물을지 모르지만, 나는 다시 대답할 수 있다.
“그걸 왜 하냐고요? …그때 내가, 정말 행복했거든요.”
(재)대구디지털혁신진흥원 2025년 대구 특화 출판산업 육성지원 사업"에 선정·지원 받아 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