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행은 부모님의 경제적 도움을 받지 않기로 했다. 오직, 내가 일해서 번 돈만 사용하기로 했다.
숙소는 석 달 전쯤 에어비앤비를 이용해 예약했다. 강릉이 한달살기로 유명하기도 하고, 내가 원하던 숙소도 여행자들에게 인기가 많아 조금 일찍 알아보게 됐다. 숙박비는 130만 원. 한 달도 아니고 28일, 4주 기준이다. 비싼 감이 없지 않았으나 이왕 가는 김에 마음에 드는 곳에서 머물고 싶었다. 130만 원. 한 달 알바비의 3분에 2 정도 되는 돈이다. 솔직히 잠깐 ‘가지 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130이 적은 돈도 아니고, 여행을 가지 않으면 그 돈으로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유혹이 날 붙잡았다.
여행을 가지 않으면 딱히 필요하진 않지만 있으면 좋은 아이패드를 살 수 있을 것이다. 가족들에게 제대로 된 선물을 할 수도 있다. 평소 봐 두었던 옷이나 신발, 가방 같은 걸 살 수도 있다. 그 순간, 이런저런 핑계 대며 여행을 포기한 과거가 떠올랐다. 그래, 그때는 돈과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에 떠나지 못했다 치자. 근데 지금은? 여행을 떠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돈도,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충분하다. 얼마나 기대한 여행인데, 이런저런 핑계 때문에 망설일 수 없었다.
130만 원을 결제하니 통장에 8만 원이 남았다. 이번엔 떠나지 않으면 안 될 거 같았다. 돈은 또 벌면 되지만!
강릉에서의 생활비는 서울에서 자취하던 때를 떠올려 계산해보기로 했다. 많이 나가는 달은 60만 원에서 70만 원 정도 나갔으니 그 돈에서 +20만 원 기타 비용을 더하여 100만 원이 넘지 않는 선으로 예상했다. 기타 비용은 가족들 선물이나 ktx 비용, 예기치 못한 병원비 정도로 생각했다. 일단 100만 원 정도로 예상은 했지만 어디까지나 예상일 뿐이다. 과소비하는 것도 지양해야겠지만, 놀러 가서까지 돈을 생각하며 지내기는 싫다. 그리고... 난 여전히 5천 원을 10번 쓰면 5만 원이 된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부모님은 강릉으로 혼자 떠난 내가 걱정됐는지 하루에 한 번은 꼭 연락해달라고 부탁하셨다. 나는 매일 오후 6시경 간단한 인사와 함께 사진을 보냈다.
하루는 점심으로 라면을 먹고 있는데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어젠 뭘 했고, 오늘은 뭘 할 거고, 이런 대화를 주고받다가 엄마가 점심은 먹었냐고 물었다. 왜 하필 또 이때 먹고 있는 게 라면인지. 그래도 거짓말하긴 싫어서 라면을 먹고 있다고 했다. 엄마는 맛있게 좀 챙겨 먹으라면서 전화를 끊었고, 나는 ‘라면도 맛있는데’ 하며 남은 라면을 마저 먹었다.
냄비를 치우고 나니 핸드폰 알림이 울렸다.
50,000원 입금
엄마가 보내준 돈이었다. 곧이어 문자가 왔다.
맛있는 거 사먹어, 라면 말고
5만 원.
5천 원이 10개 있으면 5만 원.
5천 원을 10번 쓰면 5만 원.
만약 엄마가 더 큰돈을 주셨으면 난 또, 큰돈이 들어왔단 사실에 돈을 막 썼을지 모른다. 그런데 5만 원이라, 엄마가 보내준 돈이 5만 원이라.
5천 원을 10번 모아야 5만 원이 된다는 것을, 모른 척 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