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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슬 Sep 27. 2022

강릉사람이 되는 순간



여행지에 왔다고 맛집, 명소, 기념품 가게만 들리란 법은 없다. 강릉에 사는 한 달 동안, 택시보단 버스를 더 많이 탔고 맛집보단 마트를 더 들렀던 것 같다.



스트레스 많이 받는 스타일이죠?

강릉에 온 친구들이랑 놀고 집에 들어왔는데 목이 아팠다. 코로나에 걸린 건 아닌가 싶어 자가진단키트를 해봤는데 음성이었다. 아침이 밝자마자 강릉 시내에 한 이비인후과를 들렀는데, 원인은 구내염이었다. 염증이 편도와 가까운 곳에 나서 목이 아팠던 것이다. 의사 선생님은 몇 가지 질문을 하시더니 갑자기 스무고개를 하듯이 질문을 퍼부었다.


-스트레스 많이 받는 스타일이죠?

-밤에 잠 잘 못 자죠?

-어떤 일이든 완벽하게 하는 거 좋아하죠?

-평소에 소화가 잘 안 되죠?


하나라도 나에게 해당되지 않았다면, 그냥 대충 때려 맞추나 보다 했을 텐데. 나는 모든 질문에 “네...”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화룡점정으로 "가슴이 답답하거나 찌릿찌릿 아프기도 해요?"라고 물어보셨을 땐, 내가 지금 점집에 와있나 싶었다. 의사 선생님은 푹 쉬라는 말과 함께 소염제와 가글액을 처방해주셨다.



여기랑 비슷해요

날씨도 계속 더워지고 단발을 고수했던 터라, 길어지고 있는 머리카락을 자르고자 미용실을 찾았다. 시내에 있는 프랜차이즈 미용실이었다. 커트 전에 두피 검사를 받고, 직원은 두피케어를 권유했다. 나는 커트만 받겠다고 했고, 디자이너가 와서 내가 원하는 스타일을 확인했다. 디자이너는 이 스타일은 볼륨매직이 필수긴 하지만 최대한 혼자 손질할 수 있게 다듬어주겠다고 했다. 디자이너는 커트가 끝나갈 때쯤 미용실 이전 소식을 나에게 알렸다.


-8월에 유천으로 이전하는데, 유천이랑 멀어요?


난 유천이 어딘지 몰랐지만... 일단은 여기랑 비슷할 거 같다고 했다.


집에 와서 찾아보니 유천은 강릉원주대학교가 있는 택지 쪽이었다. 유천을 가려면 시내에 가는 것보다 두 배는 더 가야 했다. 여행 온 거라 유천이 어딘지 모른다고 솔직하게 말할 수도 있었으나, 내가 어차피 떠날 사람이라는 것을 내 입으로 말하기 싫었다.



어디서나 짧게

새로 산 바지가 너무 커서 아파트 상가에 있는 수선집에 들렀다. 여느 수선집과 똑같게 이름을 말하고, 나중에 찾으러 오겠다고 했다. 수선비는 5,000원이었다. 수선된 바지는 조금 짧았다. 조금 더 길게 잡을걸... 난 바지를 줄일 때마다 너무 많이 줄이곤 한다. 이번에도 그랬고, 애매하게 짧은 바지를 잘 입고 다니는 것도 어디서나 똑같다.


이비인후과, 미용실, 수선집을 나오면서 들었던 말은, 다시 오라는 말이었다. 나는 여기서 한 달만 지내고 갈 사람인데, 그 말을 하기 싫어서 다시 올 것처럼 인사했다.


하루는 '헤어질 결심'이 개봉했다는 소식을 듣고 영화관에 부리나케 뛰어갔다. 아직은, 강릉과 헤어질 결심이 서지 않았다. 마트에서 자두를 한 팩 사와 깨끗이 닦고, 한입 베어 물으면 생각했다.

이보다 더 여름일 수는 없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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