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예슬 Sep 22. 2022

외롭지만 외롭지 않습니다



천천히 걸어서 도착한 곳은 강문해변이었다.

나는 모래 위에 털썩 앉아 좋아하는 노래를 들었다. 백예린의 ‘물고기’였다.


 물속을 헤엄치는 건 하늘을 나는 기분과 같을까


물속을 헤엄치는 기분은 모르겠지만, 그저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 시간은 충만하게 흘렀다. 서로 장난치는 커플, 나이가 지긋하신 노부부, 아이와 함께 노는 젊은 부부, 해변을 따라 같이 걷는 친구들, 그리고 나처럼 혼자 바다를 찾은 사람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광활한 바다 앞에서 작고 소중한 존재들이란 거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각자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이 마음으로 느껴졌다. 나도 그 순간 자체를 즐기고 있었다. 발밑까지 밀려오는 파도, 해가 지면서 변하는 하늘의 색깔, 낯설지만 정이 가는 여행객들. 

강릉에서의 첫 바다는 이렇게 기억될 것이다.


저녁 먹을 때가 돼서, 해변 끝에 있는 수제버거집에 갔는데 휴무였다. 휴무일이 따로 적혀있진 않았는데 하필 오늘이 휴무라니. 일부러 버스 시간에 맞게 들른 것이었는데 시간이 떠버렸다. 어쩔 수 없이 버거를 포기하고 버스정류장으로 갔다. 그런데 정류장에 도착하자마자 내가 타려는 230번 버스가 딱 멈춰 서는 것이다. 비록 수제버거는 먹지 못했지만, 숙소에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혼자 여행은 내가 직접 움직여야 한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정해진 일정도 없고, 일정을 같이할 동행이 없다는 것. 결국은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내가 움직여서 얻게 된 것은 나의 자양분이 되고 그게 혼자 여행의 묘미라고 생각했다. 사실 아까, 해변에서 난 많이 외로웠다. 서울에서는 도망칠 곳이 작은 침대뿐이었는데, 그에 비하면 바다가 내어준 자리는 너무 넓었다. 너무 넓어서 외로웠고, 그래서 좋았다. 난 외로움을 많이 느끼지 않는 타입이라 그런지 오늘 해변에서 느꼈던 감정들이 신기했다. 이 감정이 나에게 어떤 변화를 줄지 궁금했지만 오래가지 않기를 바랐다. 너무 오래 혼자가 아니었으면 했다.


내일은 강릉의 독립극장 ‘신영극장’을 가볼 생각이다. 강릉에 독립극장이 있다는 것이 나에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모른다. 덕분에 며칠 전부터 보고 싶었던 ‘올리 마키의 가장 행복한 날’이 내일 상영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난 바로 영화를 예매했고, 예매자는 나뿐이지만... 그 상영관 안에서는 난 외롭지 않을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와 함께니까.


그리고 인스타그램에 올린 해변 사진에 답장이 왔다.


“강릉이야?”

“응!”

“나도 강릉이야!”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같이 다닌 고향 친구였다. 마지막으로 만난 게 3년 전쯤인가.


“내일 같이 저녁 먹을래?”

“좋아!!”


인생은 나를 혼자 두지 않는다. 강릉에 와서 고향 친구를 만나게 될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나는 이 여행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바다에서 보낸 시간과 수제버거집의 휴무, 갓 도착한 버스, 보고 싶었던 영화와 친구와의 저녁 약속. 절대 외로울 리 없지.





이전 01화 6월, 혼자 강릉행 ktx에 올랐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