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한 더위가 시작될 무렵, 서울역은 사람들로 붐볐다. 나는 강릉으로 가는 ktx를 기다리며 카페에서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그토록 바라던 강릉 한달살기가 막 시작될 참이었다.
대학에 다닐 때, 제일 하고 싶었던 게 혼자 여행이었다. 어디론가 훌쩍 떠나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소원이었다. 하지만 나의 대학 생활은 대부분 가난했고, 수업과 과제에 치이며 졸업하기 바빴다. 결국 졸업 후, 모든 걸 제쳐두고 오직 한달살기를 위한 돈을 모았다. 여행지는 강릉이 좋을 것 같았다. 막연하게, 바다가 있으니까. 지금까지 나의 막연함은 거의 좋은 쪽으로 나를 이끌었으므로, 이번에도 나의 막연함을 믿어보기로 했다.
숙소는 34년 전 강릉 초당지역에 세워진 최초의 아파트였다. 세월이 느껴지는 복도식 아파트 였지만, 작년에 내부 리모델링을 했고 큰 창 너머로 울창한 소나무 숲이 보였다. 그것 때문에 이 숙소로 골랐다. 매일 바다를 볼 수 있는 바다 앞 숙소도 잠시 고민했으나, 바다를 너무 자주 보면 바다의 소중함을 금방 잊어버릴 것 같았다. 바다 앞에서는 항상 아이 같은 기분이 들었으면 했다.
그렇게 떠나는 날만 손꼽아 기다린 여행이었는데, 기대와 달리 여행의 시작은 두려움과 함께였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씨 탓도 있었겠지만, 혼자 여행은 처음이라 조금 겁을 먹었던 것 같다. 강릉으로 가는 기차 안에선 복잡미묘한 감정들이 피어났다. 강릉역에 도착해서는 숙소까지 택시를 타야 하나, 버스를 타야 하나, 지도를 봐도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고, 숙소에 겨우 도착해서는 대충 짐 정리를 한 뒤 침대에 뻗어버렸다. ‘잘 지낼 수 있겠지’라는 걱정과 함께 잠이 들었고, 아침에 일어나 창밖을 본 나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 숙소로 고르길 정말 잘한 거 같아!’
사진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소나무 숲이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녹음이 우거진 풍경은 아침 햇살, 맑은 공기와 어울려 멋진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덕분에 근심 걱정들이 기대로 바뀌었다.
오길 잘했다, 정말 오길 잘했어.
어제의 피로와 두려움은 내려놓고, 깨끗한 몸과 마음으로 첫 문장을 써내렸다.
나의 강릉 한달살기는 이렇게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