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강릉은 그리 덥지 않았다. 에어컨을 켜기에는 춥고, 창문을 열어놓기에는 조금 더운 날씨가 이어졌다. 애매한 날씨 때문에 선풍기가 있었으면 했고, 당근마켓에 ‘선풍기’를 검색했다. 게시물을 눌러 하나하나 보다가 이런 글 하나를 발견했다.
잘됩니다청소다해놧어요
판매자의 프로필을 들어가 보니 다른 선풍기들도 많았다. 디자인도 크기도 다른 선풍기들을 판매하고 계셨다. 고장 난 선풍기를 깨끗이 청소하고 고쳐서 다시 파시는 듯했다. 나는 채팅을 걸어 구매할 수 있냐고 물어봤고, 판매자는 주소를 알려줬다. 주소를 검색해보니 포남동에 있는 이용소였다.
이용소의 외관은 초원사진관과 비슷한 분위기였다. 레트로한 글씨체, 모양이 다른 화분, 그리고 뽀송하게 마르고 있는 살구색 수건들까지. 내부로 들어가자 미용실에서 파마약 냄새가 훅 끼쳤다. 어릴 적, 미용실을 하는 친구네 집에 자주 놀러 가서 그런지, 그리운 유년 시절이 떠오르는 냄새였다. 벽에는 색채가 강한 미술작품이 빼곡했고, 한쪽에는 선풍기가 많았다. 선풍기를 고치는 게 취미라고 하시며 청소도 깨끗이 해놨으니 골라보라고 하셨다. 나는 이리저리 살펴보고 고민한 뒤 하얀색 몸체에 하늘색 포인트가 들어간 선풍기를 골랐다. 청량한 여름과 닮은 디자인이었다. 15,000원이었고, 잘 작동하는지 전원을 연결해 보여주셨다. 그리고 나중에 고장 나면 다시 가져오라고 하셨다. 고쳐주겠다고.
영화 <판소리 복서>에는 이런 장면이 있다. 체육관에 있는 TV가 고장 나서 수리기사를 부른 복서 병구. 수리기사는 TV가 너무 오래됐다며 부품을 바꾸는 것보다 새로 하나 사는 게 싸다고 한다. 그래도 병구는 고쳐 달라고 한다. 수리기사의 말에도 계속 고쳐 달라고만 한다. 수리기사는 어쩔 수 없이 TV를 고치는데, 병구는 수리기사를 툭툭 치면서 자기 좀 때려달라고 한다. 고객님을 어떻게 때리냐는 수리기사의 거절에도 병구는 자기는 복싱선수라 피하면 되니까 때려달라고 한다. 자신을 얕본다고 생각한 수리기사는 화를 내며 병구에게 주먹을 날린다. 주먹을 피한 병구는 한마디 한다.
"좀 고장 나면 고치면 되잖아, 왜 그냥 버려?"
병구 말처럼 고치면 된다. 할아버지 말처럼 고치면 된다.
이용소 할아버지가 고친 선풍기 때문에 내 여름은 조금 시원해졌다. 에어컨의 차가운 바람도 좋지만, 여름은 적당히 더워도 된다. 여름이니까. 혹시 모른다. 땀 흘리는 게 여름의 어떤 추억을 만들어 줄지도. 여름의 강릉을 그런 온도로 기억하게 될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