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아빠의 공부 동거, 벌써 일 년 - 15
말을 물가로 끌고 갈 수는 있어도 물을 먹이지는 못한다.
중학생 아들의 2학년 2학기 중간고사가 끝난 후 제가 아들의 바인더에 위 문구를 출력해서 붙였습니다. 아들이 1학기 중간고사를 망친 뒤 공부 동거가 시작됐었죠. 1학기 기말고사는 제가 함께 공부해 줬으나, 시험 보는 과목이 많다 보니 기대했던 성적이 안 나왔다고 생각했습니다. 2학기 중간고사는 기존과는 다르리라고 저는 기대했습니다. 아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문제를 다 풀었고, 시간이 남아서 스스로 정리할 여력도 있었습니다. 최종 결과를 보고 저의 착각이었고 너무 큰 기대였다고 느꼈습니다.
제가 시험 직전까지 하나하나 체크하면서 복습을 시켰어야 했나 하는 후회가 생겼습니다. 시간이 많이 있었고, 충분히 했다고 생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시험을 망친 원인을 분석해 봤습니다. 집에서 푼 문제집은 거의 맞던 과목이 시험에서는 왜 그런 점수를 받아 왔는지 고민해 봤습니다.
제가 내린 결론은 '아들 스스로 해야 한다'였습니다. 디즈니+에서 방송했던 무빙을 보셨는 지요? 무빙 에피소드 17의 봉석이 희수를 구하는 과정에서 진짜 비행을 하며 각성하는 것처럼 아들 스스로 각성해야 하는 것이죠. 제가 공부 계획을 세워주고, 틀린 문제를 설명해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공부 내용을 자기 것으로 소화하는 것은 아들 본인의 노력이죠.
아들이 글씨 쓰기를 막 시작할 때 사진 하나가 떠오릅니다. 아들은 '즐겁다'는 단어를 과연 즐거워하며 썼을까요? 요즘 아들은 해질 무렵이면 어김없이 스케이트 보드를 들고 공원에 나갑니다. 시키지 않아도 유튜브 동영상을 보면서 스스로 기술을 연마합니다. 한 번에 습득 안 되는 어려운 기술은 여러 번 반복해서 연습하며 익힙니다. 어려운 수학 문제 앞에서 "Give up!"을 외치던 아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모습을 바라보는 아빠로서는 공부도 보드 타기처럼 '즐겁게 스스로' 할 수는 없을까라고 생각합니다.
저와 아들은 오늘도 함께 거실 책상에 앉습니다. 저는 아들을 물가로 인도하고, 물은 아들 스스로 마실 겁니다.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긴 호흡으로 아들과 아빠의 공부 동거는 계속돼야겠죠? 앞으로 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