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란 무엇인가] 3/4

함께 책 읽기 ⑯ - 유시민, 국가란 무엇인가

by 정채환

제4장. 누가 다스려야 되는가

*철학자가 왕이 되어야 한다 - 플라톤

토플러는 인간의 행동에는 특정한 목적이 있다고 보았다. ... 무엇이 사람들과 사회로 하여금 '강자'의 뜻에 순종하도록 만드는가? 완력, 돈, 정신(지식)의 삼위일체다. ... 지식 그 자체는 최고 품질 권력의 원천일 뿐만 아니라 물리력과 부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 완력에서 돈으로, 그리고 돈에서 지식으로, 토플러는 이것을 인류 문명을 관통하는 보편적 권력이동 현상으로 규정했다.


철학자가 왕이 되어야 한다는 플라톤의 주장은 '목적론'이라는 철학의 기초 위에 서있다.

만물에는 모두 그 고유의 텔로스(telos, 목적)가 있다고 플라톤은 믿었다. 그가 국가의 텔로스라고 생각한 것은 바로 정의였다. 국가는 정의실현을 목적으로 하는 인간공동체라는 것이다. ... 건강하고 강하고 통합되고 안정되어 있다면 그 국가는 정의롭다.


플라톤의 철학자는 겸허하게 진리는 찾는 구도자가 아니라 이미 모든 것을 다 안다는, 거만한 진리의 소유자이다. ... 프라톤이 요구한 것은 학식의 지배 또는 현자의 지배였던 것이다.


*군자가 다스려야 한다 - 맹자

맹자가 말하는 덕은 다른 사람의 고통을 함께 느끼는 측은지심(惻隱之心), 나와 타인의 불의를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수오지심(羞惡之心), 사랑과 정을 다른 사람에게 적절히 표현하는 사양지심(辭讓之心), 그리고 그런 마음을 때와 장소에 따라 어떻게 드러내야 하는지를 판단하는 시비지심(是非之心)이다.

맹자에 따르면 이런 네 가지 마음을 갖춘 군자가 왕이 되어 무엇보다 백성을 경제생활을 안정시켜야 한다.


맹자는 군주를 민심의 바다에 뜬 배에 비유했다. 백성은 무겁고 군주는 가볍다. 물을 거스르면 배는 뒤집어진다.


*정의는 강자의 이익 - 트라시마코스

인간사회는 어떤 경우에도 권력의 공백을 허용하지 않는다. ... 권력의 공백이 있는 곳 어디에서나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한 투쟁이 벌어진다.


만약 지식이 권력의 주된 원천이었다면 플라톤은 굳이 현자지배론을 내세우지 않았을 것이다. 현자지배론이나 왕도정치론은 지식이나 덕이 아니라 완력이 더 중요한 권력의 원천인 현실에서 필요한 이론이다.


*악을 최소화하는 방법 - 민주주의

"사악하거나 무능한 지배자들이 너무 심한 해악을 끼치지 않도록 어떻게 정치제도를 조직할 수 있는가?" 이것이 정치철학이 다루어야 할 올바른 질문이라는 게 포퍼의 주장이다.

포퍼는 이 근본적이고 가장 중요한 문제의 해법으로 민주주의를 제시했다. ... 그러나 주권자인 국민 모두가 동등한 의사결정권을 행사하는 보통선거제도가 그런 사람과 정당을 선택하는 방법으로 가장 적합하고 효율적인 제도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 인류 역사에서 가장 끔찍한 전쟁범죄를 저질렀던 히틀러는 독일 국민이 보통선거를 통해 민주적으로 선출한 권력자였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사악하거나 무능한 또는 둘 다인 사람을 지도자로 선출한 사례는 숱하게 많다.


민주주의 정치제도의 목적과 강점은 사악하거나 거짓말을 잘하거나 권력을 남용하거나 지극히 무능하거나 또는 그 모든 결점을 지닌 최악의 인물이 권력을 장악하더라도 나쁜 짓을 마음껏 저지르지는 못하도록 하는 데 있다. ... 법치주의, 언론·출판·사상·표현·집회·시위의 자유 ... 삼권분립 ... 권력분산과 상호견제 장치 ...


그런데 이것을 민주주의 정치제도의 장점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약점도 수용해야 한다. 민주주의 국가제도는 국가가 선을 행하는 것도 방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플라톤의 현자가 대통령이 된다 할지라도 자신이 선이라고 생각하는 일을 마음껏 하지는 못한다.


민주주의가 최선의 인물을 지도자로 뽑아 최대의 선을 행하게 하는 것이라고 오해할 경우, 선거는 자칫 '다시 실망하기 위해서 매번 새로운 지도자를 선출하는 비극적 이벤트'로 전락할지 모른다. ...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런 결점 때문에 민주주의를 좋아하지 않았다.


이 제도들을 제대로 지키고 발전시키는 것이 어떻게 하면 훌륭한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을지를 고민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누가 다스려야 하는가

정말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가 인간이 발명한 가장 부작용이 적은 정치제도라는 것을 알고 주권자로서 참여하여 그것을 발전시켜 나가는 일이다.


완전무결한 민주주의가 제도가 있다고 해도, 권력이 완전하지 못한 인간의 손에 있는 한 반드시 문제가 생긴다. 인간이라면 누구도 권력남용의 욕망을 완전하게 제어하지 못한다. ... 게다가 인간은 너무 오랜 세월 순종하며 살아왔다. 권력 앞에서는 일단 두려움을 느낀다. 그래서 사악한 인물이 권력을 잡으면 민주주의 국가도 많은 악을 저지른다.


국가주의는 대체로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지도자를 원한다. ... 대통령은 합법적이고 정당한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국가의 힘을 보여주어야 한다.


자유주의자는 대체로 국민과 잘 소통하면서 힘보다는 말로 다스리는 대통령을 좋아한다. 국민의 다양한 의사를 존중하면서 능동적으로 타협하고 절충하는 리더를 선호한다.


지식인과 언론인들은 ... 촛불시민의 수준 높은 의식과 행동을 다투어 예찬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은 국민의 어리석음을 내놓고 지적한 이는 별로 없었다. ... 그러나 다수의 유권자가 현명하지 않은 선택을 했던 이유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주권자의 선택이 언제나 훌륭하고 합리적인 건 아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원래부터 중우정치로 흐를 위험을 내포한 정치제도다. ... 아테네 시민들은 민주적 절차를 거쳐 철학자 소크라테스를 죽였다. ... 10개의 행정단위에서 50명씩 추첨으로 선발한 500명의 배심원들은 두 차례 투표를 한 끝에 압도적인 표차로 인간존재의 근본적인 문제를 탐구했던 현인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인류 역사에서 달리 예를 찾기 어려울 만큼 어리석은 '민주적 의사결정'이었다. 그들은 아레오파코스 언덕의 법정에서 소크라테스의 변론을 직접 듣고서도 그런 선택을 했다.


중우정치를 조장했던 언론인들은 대통령의 어리석음과 비선실세 인사들의 저질적 행태를 비난하는 선정적 보도를 쏟아냈다. 그러나 주권자의 판단착오를 조장했던 자기네의 잘못에 대해서는 철저히 입을 다물었다. 따라서 언론은, 특히 이념형 보수(국가주의)와 시장형 보수(보수 자유주의) 성향을 가진 거대 신문 방송의 권력자들(사주와 고위 경영진)은 앞으로도 같은 행동을 하리라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자기네가 선호하는 정치세력의 국가권력 장악을 돕기 위해 다음 대통령 선거에서도 그 세력과 정치인에게 불리한 정보를 감추거나 그들에게 유리하도록 정보를 왜곡 해석하는 보도태도를 견지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 시민들이 자기 머리로 생각하고 대안미디어를 활용해 언론권력의 여론조작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그 위험에 또 발뒤꿈치를 물리게 될 것이다.


국가주의를 신봉하는 지식인들 중에는 정치와 정치인에 대한 무차별적인 혐오를 부추기는 이가 많다. 그들은 똑똑한 시민이 정치에 적극 참여하는 것을 두려워 한다. 시민들이 정치에서 멀어지기를 바란다.


선호하는 국가론과 선호하는 리더십 스타일 사이에는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60년 넘게 분단 체제에서 살아온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국가주의 국가론이 이념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 다시 자유주의 성향을 지닌 정치인이 대통령이 될 경우 비슷한 문제에 봉착하게 될 것이라는 예측도 덧붙여둔다.



제5장. 애국심은 고귀한 감정인가

*애국심의 두 얼굴

오로지 국가만이 국민에 대해서, 다른 국가에 대해서, 정당하다고 간주되는 폭력을 행사한다. 고귀한 사랑의 감정일 수 있는 애국심 뒤에는 결코 사랑하기 어려운 야수가 숨어있는 것이다. 경쟁관계에 있는 다른 국가에 대한 증오심 또는 혐오감이 그것이다. ... 국가는 때로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전쟁과 학살이라는 끔찍한 참화 속으로 몰아간다. 다른 어떤 사랑의 감정도 이런 엄청난 악을 저지르도록 사람을 부추기지는 않는다.


애국심을 발현하는 최고의 형식은 국가를 위해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거나 실제로 죽는 것이다.


애국심의 배타적 성격은 사랑의 대상인 국가 자체의 배타성에서 파생한 것이다. 국가는 배타적인 공동체이다.


애국심은 사랑하지 말아야 할 외부의 대상을 전제로 삼는다. 자기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은 사랑하지 말아야 할 다른 국가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 기나긴 진화의 과정에서 인간은 친숙한 것을 사랑하고 낯선 것을 배척하는 생존전략을 획득했으며, 이 전략은 유전정보로 세포에 각인되었다. 애국심도 그런 것이다.


*영원한 것은 조국뿐이다 - 피히테

일반적으로 하나의 민족 또는 국민은 다른 민족 또는 다른 국민의 억압을 받을 때에 비로소 자기 자신을 인식하게 된다. 민족의식과 애국심은 그런 경로를 거쳐 형성된다.


이처럼 하나의 자아는 다른 자아와 대비되어 창조된다.


피히테는 ... 조국애가 국가 자체를 지배하게 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자연적 자유를 여러 가지 방식으로 가능한 한 좁게 제한하여 그 모든 충동을 획일적인 규칙에 종속하게 하고 이를 끊임없이 감시해야 한다.

피히테는 국가보다 민족을 중시했다.


우리나라에서 그를 매우 후하게 대접한 것은 유신시대 사회교과서였다. ...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내가 세상에 나온 목적을 친절하게도 대통령이 정해준 것이다. '민족중흥'이라는 국가의 목표는 곧 나의 개인적 인생목표가 되아야 했다. ... 애국심과 국가주의, 애국주의와 전체주의 사이에는 쉽게 오갈 수 있는 길이 있다.


*애국심은 사악한 감정 - 톨스토이

국가를 연구하는 모든 학자들이 그렇게 본 것처럼, 톨스토이도 국가권력의 토대가 물리적 폭력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는 경찰보다 군대의 물리력을 특히 무겁게 보았다. 국가권력이 물리적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은 한 사람의 의지에 따라 일치단결하여 행동하는 무장 병력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 애국심은 권력자가 군대를 장악하고 동원하는데 쓰는 파괴적인 감정이다.


애국심은 모든 국가의 국민들이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다른 나라의 국민들을 침략하고 학살하는 것을 당연한 일로 생각하던 시절의 개념이다. 하지만 이미 2000년 전에 인류는 인류의 지혜를 대표하는 최고의 스승들을 통해 형재애라는 높은 차원의 개념을 깨닫기 시작했다.


사람들을 궁지로 몰아놓은 세계적 군비확장과 파멸적 전쟁은 바로 이 애국심에서 야기되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호전적·맹목적 애국심과 참되고 올바른 애국심의 경계가 불분명하다는 점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정부가 그들(야스쿠니신사의 전쟁범죄자들)을 애국자로 추앙한다면, 이웃나라 국민들은 일본이 언젠가 기회가 올 경우 또다시 침략전쟁을 하겠다는 의사를 가졌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일본 각료의 신사참배를 비판하는 것이다. 일본과 달리 독일은 수도 베를린에 홀로코스트 기념관을 만들어 나치가 저지른 전쟁범죄에 대해 매번 기회 있을 때마다 공개 사과하고 그 일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침략전쟁을 벌인 국가의 명령을 수행하다가 죽은 독일 군인들을 애국자로 추모하지 않는다.


*함께 귀속되고자 하는 인민의 의지 - 르낭

민족은 기억의 공동체가 아니라 망각의 공동체라는 것이다. ... 르낭은 민족국가를 형성한 통일 과정은 항상 갑작스럽게 이루어졌고 언제나 대규모 살상과 전쟁을 동반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 더 큰 결속을 위해서는 망각과 용서가 필요하다.


무모한 욕망과 배타적 애국심이 불러낸 전쟁의 광풍은 사람들이 자유주의적 행동방침, 즉 평화의 준칙이자 인민단합의 준칙이기도 한 자유주의적 준거에서 멀어졌기 때문에 일어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러저러한 언어 안에 몰아넣기 전에, 이러저러한 인종의 구성원이 되기 전에, 이러저러한 문화의 지지자이기 전에, 인간은 무엇보다도 우선 도덕적인 존재라는 기본 원칙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프랑스 문화, 독일 문화, 이탈리아 문화 이전에 인류의 문화가 있다.


르낭에게 민족이란 이미 치러진 희생과 여전히 치를 준비가 되어 있는 희생의 욕구에 의해 구성되는 인간의 거대한 결속이었다. ... 이런 관점에서 보면 애국심은 국가에 대한 배타적 사랑의 감정이 아니다. 함께 귀속되어 살면서 실현하고자 하는 가치 또는 목적에 대한 사랑과 충성심인 것이다.


오랜 세월 국가주의자들이 애국심이라는 말을 사실상 독점적으로 사용해 왔다.

첫째, 국가주의자들은 애국심이 가장 고귀한 사랑의 감정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에 이 말을 즐겨 쓴다. ... 자기네와 다른 방식으로 국가를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애국심이 없다고 비난한다. 이는 매우 효과적인 정치 커뮤니케이션 전략이다. ... 그들이 나라를 사랑하는 방법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대놓고 비판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둘째, 애국심이 사악하거나 위험한 감정이라고 생각하는 자유주의자와 마르크스주의자는 애국심이라는 단어 사용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국가주의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 그러나 이런 태도는 국가주의자와 보수주의자들로 하여금 다수 국민이 고귀한 감정이라고 생각하는 애국심의 사용권을 독점하도록 허용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합리적이든 아니든, 민중이 고귀하다고 여기는 어떤 말을 남이 독점하도록 허용하면 권력을 그들에게 넘겨줄 위험이 뒤따라온다. ... 게다가 애국심에 대한 르낭의 견해를 채택할 경우에는 애국심이라는 말을 굳이 기피할 필요도 없다.



제6장. 혁명이냐 개량이냐

*국가는 사멸하지 않는다

혁명의 길과 개량의 길, 혁명주의와 개량주의, 어느 것이 효과적인가? 어느 것이 옳은 길인가?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전한 ... 국가에서는 사회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다. ... 근본적으로는 국가가 단순한 계급지배의 도구가 아니며, 물질적 이해관계의 대립이 사람의 정치적 행위를 결정짓는 유일한 변수도 아니기 때문이다.


인민이 국가의 폭력에 복종하느니 차라리 대항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게 되는 순간 국가폭력은 독점적 지위를 잃어버린다.


국가가 계급지배의 도구가 아니라 나를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한, 인민들은 국가폭력에 대항하거나 국가를 전복하는 사회혁명에 나서지 않는다.


*혁명은 언제 일어나는가

어떤 사람이 주관적으로 느끼는 자유의 정도는 그 사람이 사회가 추구하는 목표를 얼마나 기꺼이 받아들이느냐에 좌우된다.


혁명의 가능성을 현실로 전환하는 조건을 무엇일까? ... 첫 번째 조건은 사회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어 있고, 그 사실을 민중이 분명히 인지하는 것이다.

두 번째 조건은 민중이 국가권력을 장악하고 사회를 지배하는 사람들에게 그 문제를 해결할 의지와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세 번째 조건은 ...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폭력이 아닌 다른 모든 수단을 남김없이 행사했다는 사실이 널리 인정받는 것이다.


사회혁명이 성공하려면 국가권력이 썩은 문짝처럼 허약해야 한다. 지배층의 권위와 위신이 바닥으로 추락해 누구도 그들을 두려워하지 않는 상황이어야 한다. 누군가의 말처럼, 혁명은 썩은 문짝을 걷어차는 것이다. 폭삭 썩어 있지 않은 문짝은 걷어차도 쉽게 쓰러지지 않는다.


*톨스토이의 절망

모든 부를 소비하는 상층계급을 없애버리자고 한 혁명가들의 주장에 대해서는 ... 권력기관이 존재하는 한, 모든 부는 계속해서 권력자의 수중에 들어갈 것이다.

소득과 부를 재분배하는 것은 어떨까?

경쟁적이고 개인적인 삶의 원칙을 공리주의적 원리, 연대와 협력의 원칙으로 대체하는 것도 좋은 대안이 아니다. ... 각자의 몫이 얼마나 될지 아무도 모른다는 점 때문에 가장 형편없는 방안이 되고 만다.


그(톨스토이)가 제시한 방법은 각자가 욕망을 줄이는 것이다. ... 세속적 욕망의 구멍을 막는 것 말고는 집 안 골고루 열을 보낼 방법이 없다. 이것이 톨스토이가 얻은 결론이다.


*유토피아적 공학과 점진적 공학 - 포퍼

유토피아주의는 사회악을 뿌리째 뽑아버려야 한다는, 세상에 품위 있는 것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비위에 거슬리는 사회제도를 완전히 근절해버려야 한다는 확신이다.


'점진적 공학'이라고 이름 붙인 사회개량의 길이다. ... 이상적 사회의 청사진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어떤 경우에도 최대의 궁극적 선을 추구하고 그 선을 위해 투쟁하기보다는 최대의 악과 긴급한 악에 대항해서 투쟁한다. ... 이것은 악용 위험이 적고 잘못될 경우 조정하기도 쉽다. 게다가 이상적인 선과 선을 실현하는 수단에 대한 합의보다 현존하는 악과 악을 퇴치하는 방법에 대한 합의가 더 수월하다. ... 유토피아적 공학은 이상국가를 실현하기 위한 강력한 중앙집권을 요구하면 독재로 흐르기 쉽지만, 점진적 공학은 그렇지 않다.


"제한되지 않는 자유는 자멸한다." ... 무제한의 자유는 강자가 약자를 위협하여 약자의 자유를 강탈할 자유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 어느 누구도 타인의 자비심에 내맡겨져서는 안 된다.


그러면 국가는 어떻게 간섭해야 하는가? ... 첫째는 보호제도의 '법률적 틀'을 설계하는 제도적 간섭이다. ... 둘째는 통치자가 설정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권력기관을 동원하여 어떤 범위 내에서 조치를 취하는 '대인적·직접적 방법'이다.


경제권력은 정치권력과 마찬가지로 자유를 위협하는 힘이다.


그(포퍼)가 사회혁명에 강하게 반대한 이유는, 혁명가들의 진단이 아무리 훌륭할지라도 폭력으로 이상국가를 실현하려고 하는 것은 그들이 대항해서 싸우고자 했던 악보다 더 나쁜 치료법이 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겁에 질린 자유주의자 - 하이에크

하이에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유 그 자체라기보다는 경쟁이라는 자연적인 힘이다. 포퍼가 옹호했던 '민주적 간섭주의'는 경쟁의 작동을 북돋우는 한에서만 정당하다.


사회의 조직화가 지향해야 할 '사회적 목적' 또는 '공동의 목적'은 막연하게나마 '공동선' 혹은 '일반적 복지'나 '일반적 이익'과 같은 모호한 표현으로 제시된다.


밀이 때로는 주저하고 번민하는 자유주의자였던 것과 달리, 하이에크는 한순간의 동요도 보이지 않는 냉정한 개인주의자였다. ... 최고의 선은 개인의 목적체계이며, 이것은 다른 누구의 그 어떤 지시에도 종속되지 않는다. ... 한마디로 다시 말해서 선악을 판단하는 도덕기준은 우리들 각자의 내면에 있으며 그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는 이야기다.


자유주의 도덕법칙의 핵심은 자유와 책임이다. ... 집단주의는 도덕을 파괴한다. 개인의 책임을 면제하는 것을 주된 약속으로 내거는 운동은, 그 운동을 태동시킨 이상이 아무리 높다고 해도 도덕에 반하는 효과를 낼 수밖에 없다. 사회혁명은 결국 도덕에 위배된다는 뜻이다.


*논리의 덫에 갇힌 자유지상주의

하이에크에게 중요한 것은 권력의 원천이 아니라 권력의 제한이다. 국민이 정당하게 선출한 권력이라 할지라도 법 앞의 평등을 넘어서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왜? 그런 시도는 사소한 것일지라도 모두 전체주의로 가는 첫걸음이 되기 때문이다.


불합리한 규칙이라도 만인에게 똑같이 적용되기만 한다면 나쁠 게 없다는 것이 하이에크의 주장이다. 이렇게 볼 경우 경제적 불평등을 개선하고 분배의 정의를 실현하려는 모든 시도를 공격하는 것은 불가피한 논리적 귀결이다.


*미끄러운 비탈 이론

히틀러는 유럽 정복을 위해 자동차 전용도로인 아우토반을 건설하고 군수산업을 키우는 방법으로 정부지출을 키워 자본주의 역사에서 가장 참혹했던 초인플레이션과 대량실업 사태를 극복했다.


그들(유럽과 미국의 자유주의자)은 국가가 특정한 가치 또는 공공선을 내세워 자의적 개입을 하는 그 순간 사회는 미끄러운 비탈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고 우려했다. 일단 그 비탈에 들어서면 바닥까지 미끄러지는 것을 피할 수 없다. 비탈 아래에는 전체주의가 있다. ... 이렇게 볼 경우 전체주의를 피하려면 시장의 비인격적이고 불합리해 보이는 힘에 순종해야 한다. 통제할 수 없고 자의적인 다른 사람들의 권력에 순종하는 것보다 비인격적인 힘에 순종하는 편이 낫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 사회에서는 모든 사회악의 근원이 신자유주의라는 주장이 유행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다른 견해를 표명했다. ... 차이가 있다면 스미스와 밀, 루소와 같은 고전적 자유주의자들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던 사회악, 다시 말해 심각한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번민이 없다는 것뿐이다. 고전적 자유주의 철학에서 뜨거운 심장을 빼버리고 냉철한 두뇌는 더 발육시킨 자유주의, 그것이 바로 하이에크의 신자유주의 철학이다.


사회혁명의 문을 걸어 잠그고 싶다면 부지런히 점진적 개량을 시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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