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1/4

함께 책 읽기 ⑰ - 논어, 공자

by 정채환

■ 읽게 된 계기

移風易俗 莫善於樂(이풍역속 막선어악) : 풍속을 순화시키는 데에는 음악보다 좋은 것이 없다.

-[효경]-


나를 살린 문장이다. 대학교 1학년 교양한문 수업 첫 시간에 교수님이 들어오셔서 "예습을 해와라. 해석을 시켰는데 못하면 천자문을 10번 쓰게 하겠다. 못쓰겠다면 낙제를 주겠다."라는 과한 엄포를 놓으셨다. "에이~ 말도 안 돼. 설마." 다들 믿지 않았다. 스무 살 철없이 부어있던 간은 두려움을 몰랐다. 하지만 둘째 시간부터 희생자가 속출했다. 심지어 천자문 열 번 쓰기를 두 번 한 친구도 있었다. 그럼에도 나를 포함한 많은 아이들은 설마 내가 걸리겠냐는 희망회로를 끝없이 돌리면서 끝까지 예습을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교수님이 내 이름을 부르시고 무심하게 위 문장을 읽어주셨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눈앞이 캄캄했다.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 쿵쾅대는 가슴을 억누르며 눈을 비벼 크게 뜨고 찬찬히 문장을 다시 잃어보았다. 가만히 보니 천만다행으로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A 莫善於(막선어) B : A하는 데는 B만 한 것이 없다'는 구문이었다. 비스무리하게 해석을 했는데 다행히 교수님이 별말 없이 넘어가 주신 덕분에 여태까지 한문에 대해 악감정 없이 살아오게 되었다는 사연이다.

초등학교 때 왜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문고판 순한글 논어를 읽은 기억이 있다. 중학교 때는 대학 졸업 후 갓 부임해 오신 어여쁘신 한문 선생님을 사모해서 국영수는 제쳐두고 한문 예습복습을 철저히 한 결과 3년 동안 한문 시험에서 거의 백점을 맞았던 것 같다. 고등학교 때도 한문이 재밌었던지 지금도 기억하는 문장들이 있고, 대학교 때는 전공 관련해서 한문을 적지 않게 접하고 [논어] 수업도 두 학기 정도 있었는데 재미있게 들었던 것 같다.

돌아보니 나한테는 한문이 잘 맞고 재미있었던 모양이다. 다른 분들께도 이 재미를 소개하고 싶어서 이 참에 읽었던 것들은 새로 정리하고 몇 권 더 읽어서 사서(四書 : 논어, 맹자, 중용, 대학)를 한번 정리해 보고 싶다.



■ 감상 및 추천 : 주요 문장 중에서 다시 뽑은 10개의 문장.

2.15 배움과 생각

子曰: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자왈: 학이불사즉망, 사이불학즉태.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미혹되고, 생각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

: 요즘 시대에는 '받아들임 → 생각하기 ↔ 공부하기'와 같이 받아들임이 하나 더 추가되어야 할 듯하다. 예전에 비해 미디어도 매우 다양해지고, 각종 SNS 를 통해 각종 정보와 평론과 주장이 홍수처럼 우리에게 쏟아져 온다. 그 많은 검증되지 않은 정보 중에 '사실이면서 유익한' 정보를 취사·선택하는 행위 자체도 매우 중요해졌다. 정보의 진위와 가치를 판단하는 행위 자체가 그 다음 단계에 해당되는 `생각하기`와 연결될 것 같다. 선택된 정보를 피동적으로 수용하는 것을 넘어 반드시 스스로의 견해를 한번 정리해보는 생각하기 과정이 필요하겠고, 이어서 관련되거나, 더 본질적인거나, 더 심화된 정보를 찾고 확인해 보는 '공부하기' 과정도 수반되면 더 좋을 것이다. 생각해보고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다시 공부하고 그러다 떠오른 생각을 더 깊이 있게 고찰해보는 과정에서 사고가 깊어지고 지우침이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공자님의 가르침이 아닐까 싶다.

우린 바쁘고 피곤하다. 맞다. 그래도 치우치거나 허황된 생각에 빠지지 않으려면 신문기사 제목, 유튜브, 포털 댓글 보는 것 이상의 활동이 필요하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것같다.


3.8 그림은 흰 바탕 위에

子夏問: '巧笑倩兮, 美目盼兮, 素以爲絢兮', 何謂也?

자하문: '교소천혜, 미목반혜, 소이위현혜', 하위야?

子曰: 繪事後素. 曰: 禮後乎? 子曰: 起予者, 商也! 始可與言詩已矣.

자왈: 회사후소. 왈: "례후호? 자왈: 기여자, 상야! 시가여언시이의.

자하가 여쭈었다. '고운 미소에 팬 보조개, 아름다운 눈에 또렷한 눈동자를 그리고, 흰 바탕에 여러 가지 색깔을 칠했구나'라는 말을 무슨 뜻입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림 그리는 일은 흰 바탕을 만든 이후의 일이다. (자하가) 여쭈었다. 예는 다음에 온다는 것입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를 일깨우는 자는 상(자하)이로구나. 비로소 (너와) <시>를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구나.

: 시간이 갈수록 기본기의 중요함을 더욱 절실하게 느끼게 된다. 돌아보면 운동을 배울 때도, 피아노를 배울 때도, 서예를 배울 때도, 책을 읽어가면서도 얼른 뛰고 싶어서, 얼른 날고 싶어서, 얼른 연주하고 싶어서, 얼른 내보이고 싶어서 조바심을 내며 내달리던 기억이 난다. 두고두고 바탕이 되는 기본기를 충분한 시간을 들여서 더욱 정성스럽고 굳게 다졌으면 좋았을 것을, 그렇게 서둘러하면 나중에 어찌어찌 하기는 하는데 평생 엉성하게 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몰랐다. 그림 그리는 일은 흰 바탕을 단단히 잘 만든 이후의 일인데 말이다.


4.7 허물을 보면 안다.

子曰: 人之過也, 各於其黨. 觀過, 斯知仁矣.

자왈: 인지과야, 각어기당. 관과, 사지인의.

사람의 허물은 저마다 그가 속한 무리를 따르게 된다. 허물을 관찰해 보면 곧 (어느 정도) 인한 지를 알 수 있다.

: 유유상종類類相從(비슷한 것들끼리 무리를 이룸). A man is judged(known) by the company he keeps(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안다). 이런 비슷한 표현들이 있었다. 친구를 사귈 때도, 배우자를 구할 때도, 동업자를 구할 때도, 뜻을 함께 도모할 사람을 구할 때도 그 사람의 말보다는 그 사람의 행동을, 그 사람만이 아니라 그 사람이 속한 무리의 말과 생각과 공유하고 있는 가치를 살피면 그 사람에 대한 보다 입체적인 평가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6.10 역부족의 의미

冉求曰: 非不說子之道, 力不足也. 子曰: 力不足者中道而廢, 今女畵.

염구왈: 비불열자지도, 력부족야. 자왈: 력부족자중도이폐, 금여획.

염구가 아뢰었다. 선생님의 도를 기뻐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능력이 부족합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라면 중도에 그만둔다. 지금 너는 (미리) 선을 긋고 (한계를 짓고) 있다.

: 한계를 두면 편리하다.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것만 하고 그 한계를 넘어서는 일은 '원래 내가 할 수 없는' 능력 밖의 일이 되니까 그건 내 잘못이 아니다. 아이를 낳고 새로운 체험을 하게 된다. 내 능력, 상황, 처지와 관계없이 못한다고도 할 수 없이 해야만 하는, 해내야만 하는 일이 생긴다. 그리고 그 일을 해내는 나를 보게 된다. '이게 되는구나, 이런 걸 내가 할 수 있구나' 놀라며 다시 생각하게 된다. 오직 육아 관련 일만 이게 가능한 걸까? 일찌감치 적당한 거리에 진하게 선을 그어두고 거기까지가 내 한계라고 스스로 믿으며 살고 있지 않은가 생각해 보게 된다.


9.30 그리워한다는 그 말

唐棣之華, 偏其反而! 豈不爾思? 室是遠而!

당체지화, 편기반이! 기불이사? 실시원이!

子曰: 未之思也, 夫何遠之有?

자왈: 미지사야, 부하원지유?

산앵두나무꽃이 나부끼다가 뒤집히고 있네. 어찌 그대를 그리워하지 않으리. 그대의 집이 멀뿐이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리워하지 않는 것일 테지, 무엇이 멀리 있다는 것인가?

: '논어에 이렇게 시적인 표현이 있을 줄이야'하고 감탄했던 문장이다. 그리운 님을 만나러 천리를 멀다 않고 달려간다고 할 때의 '불원천리(不遠千里)'는 <맹자> [양혜왕上]편에 나오는 표현이고, 익숙한 영화 나래이션인 '무릇 움직이는 것은 나뭇가지도 아니고 바람도 아니며 네 마음뿐이다'는『육조단경 六祖壇經』29則에 나오는 '비풍비번 인자심동(非風非幡, 仁者心動)'의 풀이라고 한다. 우리가 모르고 있어서 그렇지 우리의 심금을 울렸던 많은 표현들 중에 한문 고전에서 온 것들도 꽤 있을 듯하다. 접하기 쉬운 것부터 조금씩 친해지다 보면 색다른 재미와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11.15 과유불급

子貢問: 師與商也孰賢? 子曰: 師也過, 商也不及. 曰: 然則師愈與? 子曰: 過猶不及.

자공문: 사여상야숙현? 자왈: 사야과, 상야불급. 왈: 연즉사유여? 자왈: 과유불급.

자공이 여쭈었다. 사(자장)와 상(자하) 중 누가 더 현명합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는 지나치고, 상은 미치지 못한다. (자공이) 여쭈었다. 그럼 사가 더 낫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함만 못하다. (주석 참조 해석)

: 중용의 미덕이 항상 강조되지만 우선 중간이라는 개념 자체가 애매하다. 도대체 어디, 어느 정도가 중간일까? 양보해서 분명한 중간이 있고 그걸 안다고 해도 스스로 그 중간을 지키기가 또 어렵다. 내적으로는 과도한 의지와 욕망이, 외적으로는 행동을 독려하는 평가(잘한다, 멋있다, 도움이 된다, 좋았다)와 기대(자신의 착각인 경우가 많지만)가 늘 우리를 '오바'하게 만든다. 이것까지 하면 화룡점정이다, 사람들이 아마 깜~짝 놀랄 거다 싶을 때 한 박자 쉬고 가만히 되뇌어보자.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함만 못하다.'


▶12.2 자기가 하고자 하지 않는 바는

仲弓問仁, 子曰: 出門如見大賓, 使民如承大祭. 己所不欲, 勿施於人. 在邦無怨, 在家無怨.

중궁문인, 자왈: 출문여견대빈, 사민여승대제. 기소불욕, 물시어인. 재방무원, 재가무원.

중궁이 인에 대해 여쭈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문을 나서면 귀중한 손님을 뵙듯이 하고, 백성을 부릴 때는 큰제사를 받들듯이 (신중히) 하여라. 자기가 하고자 하지 않는 바를 다른 사람에게 베풀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하면) 제후의 나라에서 원망하는 사람이 없고, (경대부들의) 집에서도 원망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 역지사지(易地思之) 같은 한자성어, Treat others as you want be treated(네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하라)는 속담도 있다. 같은 의미로 이해된다. 내가 싫은 것은 남도 싫고, 내가 좋은 것은 남도 좋을 것이라는 대전제 하에 행동한다면 각자의 자유를 마음껏 향유하면서도 남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데 큰 어려움이 없을 것 같다. 만약 지금 자신이 원치 않는 바를 남에게 베풀고 있다면 지금 내가 상대를 이용하거나, 못살게 굴거나, 해하려는 의도가 아닌지 꼭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한다.


▶15.22 말만으로 등용하지 말라

子曰: 君子不以言擧人, 不以人廢言.

자왈: 군자불이언거인, 불이인폐언.

군자는 말만 듣고서 사람을 등용하지 않고, (그) 사람만 보고서 말까지 버리지는 않는다.

: "그 사람 말하는 걸 들어보니 괜찮은 사람이더라.", "그런 놈이 하는 말은 들을 가치도 없다." 우리가 잘 쓰는 말이다. 어떤 계기로 세워진 한 사람에 대한 고정관념은 쉽사리 바뀌지 않는다. 2번, 3번, 혹은 매번 그 사람이 괜찮은 사람인지 그래서 옳은 말을 하고 있는지 검증하는 수고를 들이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고정관념은 편리하다. 하지만 많은 것은 놓치게 한다. 좋다고들 평가하는 사람의 말을 비판적 검증 없이 곧이곧대로 믿을 수도 있고, 이면을 잘 살피지 않다가 뜻밖의 모습에 놀라기도 한다. 좋지 않다고들 평가하는 사람의 의미 있는 발언을 흘려들을 수도 있고 미처 알지 못했던 그 사람의 진면목을 놓칠 수도 있다. 치우침 없는 마음과 시선으로 사람을 대하고 말을 듣는 것이 우리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래도 늘 가슴에 담아 두기는 해야겠다.


15.28 사람과 도

子曰: 人能弘道, 非道弘人.

자왈: 인능홍도, 비도홍인.

사람이 도를 넓힐 수 있는 것이지, 도가 사람을 넓힐 수 있는 것은 아니다.

: '약은 약사에게 결혼은 의사에게' 재수 학원 다닐 때 선생님께 전해 들은 얘기다. 어느 초등학생이 학교에서 표어를 지어오라는 숙제를 받았는데, 평소에 엄마가 "어머 이번에 누구네 집 딸이 결혼하잖아. 근데 남편이 의사래잖아 글쎄."라고 전화 통화하시던 게 생각나서 그리 적었단다. 의사는 의사다. 머리도 좋고 성실하게 공부하고 그 진로를 선택해서 의사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외의 정보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높은 자리, 어려운 시험을 통과한 자격, 존경받는 지위는 분명 누구나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남다른 목표의식과 끈질긴 노력으로 거기까지 이르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그 사람의 됨됨이를 모두 미루어 평가할 수는 없다.
많은 사람이 군대에 가고, 아이를 낳고, 어른이 되고, 상을 치르고, 고통을 감내하는 다양한 과정을 거친다. 하지만 그런다고 모두 성숙한 인격을 가지게 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스스로를 살펴 도를 넓히고 인격을 닦는 것이지, 지위와 자리와 경험 자체가 사람을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닐 것이다.


17.23 의와 용이 다 중요하다.

子曰: 君子義以爲上, 君子有勇而無義爲亂, 小人有勇而無義爲盜.

자왈: 군자의이위상, 군자유용이무의위란, 소인유용이무의위도.

군자는 의를 최상으로 여긴다. 군자에게 용기만 있고 의가 없으면 난을 일으키게 되고, 소인에게 용기만 있고 의가 없다면 도적이 될 것이다.

: 동네 양아치가 되느냐 난을 일으킨 주모자가 되느냐는 오직 그릇 크기의 차이일 뿐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본다. 폭력과 혐오에 관해서 다룰 때 언급했듯이, 용기만 있고 의가 없는 자들은 겉으로는 마치 대의를 위해 궐기한 의협심이 강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이익 즉, 돈이나 권력이나 인기나 세력이나 영향력 등을 얻거나 유지하기 위한 경우가 많아 보인다. 앞에 나서서 호기롭게 폭력이나 혐오를 부추기는 사람이 의로운 군자일 리 없다고 공자님께서도 일깨우고 경계하시는 듯하다.



■ 함께 읽으면 좋은 책

▶ [(동양철학) 고전의 시작] - 황광우/홍승기 지음

: 청소년을 위한 고전 입문 교과서라고 소개되어 있는 책이다. 논어부터 맹자, 장자, 노자, 법구경, 순자, 목민심서, 주역, 한비자 등 살아가면서 한 번쯤 만날 법한 동양철학 고전들이 거의 다 망라되어 있고, 배경 설명과 주요 문장, 해설 등이 겸비되어 있어 소개하는 각각의 책들에 흥미가 생기고 한 번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동양철학 고전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접근할까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안성맞춤일 것 같다. 동서양 추천 고전 70선도 수록되어 있다.


▶ [맹자] - 맹자

: 수년 전에 책꽂이에서 오래 잠자고 있던 것을 꺼내 먼지를 털어 내고 읽었었다. 왕도정치를 위해 위정자가 본받아야 할 귀감, 취해야 할 자세, 베풀어야 할 덕목 등이 많아서 논어만큼 삶의 의미나 지혜의 차원에서 크게 다가오지는 않았던 기억이 있지만, 이 참에 새로 산 책으로 다시 한번 잘 읽어보고 별도로 정리하려고 한다.


▶ [중용/대학] - 증자/자사

: 《예기》의 한 편목들이었는데, 주희의 주장에 의해 사서四書로 편입된 것이라고 이번 책 《논어》에서 설명했었다. 역시 별도로 정리해 보려고 사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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