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책 읽기 ⑯ - 유시민, 국가란 무엇인가
■ 읽게 된 계기
믿기지 않았던 계엄이라는 사태, 지난했던 탄핵 의결과 심판, 그 과정에서 목도했던 국민들의 확연한 생각 차이를 착잡하게 지켜보면서 [함께 책 읽기 ⑮ - 플라톤, 국가론]에 이어 같이 정리해 보고 싶었던 책들 중 하나이다. 몇 년 전에 읽었었는데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읽어보니 잊었던 내용도 다시 알게 되고 스스로도 다시 정리되는 느낌이 들었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책을 읽을수록 모르고 있는 부분이 더 많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된다. 조바심도 나지만 천천히 조금씩 메워나가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 감상 및 추천
▶ 도대체 그들의 '좋은 나라, 올바른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
첫째, 국가에 대해서 상충하는 요구와 기대를 가진 국민들이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의 생각을 더 잘 이해하도록 돕고 싶었다. ...
작가는 이것을 이 책을 쓴 첫 번째 목적으로 꼽았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러는지 모르겠다."는 말은 많이 들어봤지만, 무슨 생각인지 알아보았다거나 알게 되었다는 얘기는 많이 못 들어본 것 같다. 이 책은 그들은 무엇을 염려해서, 혹은 나라가 어떻게 될까 걱정되어서, 혹은 무엇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서와 같이 어떤 배경에서 그와 같은 생각을 가지게 되었는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동의 여부를 떠나 일단 '말도 안 되는' 것처럼 보이는 생각과 행동의 기저를 이루고 있는 불안, 공포, 바람, 가치 등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다.
▶ 진지한 관심
둘째, 진지한 정치적 관심을 북돋우는 데 기여하고 싶었다.
작가는 이것을 이 책을 쓴 두 번째 목적으로 꼽았다.
딸아이 초등학교 때 질문에 답해주던 상황이 문득 생각났다. 수학 어떤 단원의 한 문제를 풀고 있는데 답이 뭐냐고 물어 온다. "응 딸아. 이 단원은 xx 단원이잖아. 그럼 이 단원에서 알아야 할 것은 oo개념이야. oo개념은 ㅁㅁ원리를 이용한 것으로 이렇게... 저렇게..., 또 문제의 의도를 생각해 보면 어쩌구... 저쩌구..." 내 나름의 차근차근한 설명을 이어가다 보면 이내 짜증 섞인 목소리로 아이가 되묻는다. "아빠! 그래서 답이 뭐냐고요?" 우선 빨리 정답을 알고 싶은 아이의 조급함과 답을 아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기본개념부터 원리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하고 생각하는 아빠의 융통성 없음이 빚어내는 촌극이다.
우리도 빨리 답을 알고 싶다. 니가 맞냐, 내가 맞냐. 우리가 이기냐, 저들이 이기냐. 답도 없는 지리한 논쟁은 집어치우고 하루빨리 결과가 나와서 애가 타는 가슴 졸임을 벗어던지고 환호를 지르며 시원한 맥주를 한잔 마시거나, 쓰고 있던 모자를 바닥에 내팽개치고 즐겨보는 뉴스채널이나 유튜브를 크게 틀어놓고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말도 안 되는 결과라고 같이 욕을 하면서 분풀이라도 하고 싶다. 좋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 지난한 과정 속에서 불거졌던 다양한 이슈들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와 학습의 기회는 결과를 기다리는 초조함에 가려지고 결과와 함께 찾아오는 환희와 좌절 뒤에 묻힌다.
답안지처럼 정답을 알려주거나, 심판관처럼 옳고/그름, 승패를 알려주는 미디어도 필요하겠다. 하지만 격정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후에는, 진영·승패·시시비비에서 벗어나, 쇼츠처럼 핵심만 담긴 것이 아닌 다소 융통성이 떨어지는 긴 내용이더라도 조용히 앉아서 책을 읽으며 국가와 정치와 사회와 정의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부터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시간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미치광이 vs 다정한 이웃
첫째, ... 사람은 누구나 낯선 것을 보면 경계심과 적의를 품는다. 서로를 더 잘 안다면 국가권력을 둘러싼 정치적 쟁투가 불가피하게 수반하는 증오와 적대감이 줄어들 것이다.
-[국가란 무언인가], 유시민-
"혐오 이기는 것은 논리 아닌 접촉이다."
<혐오 없는 삶>의 지은이인 독일 저널리스트 바스티안 베르브너(주간지 <디 차이트> 편집장)는 “온건주의자, 합리주의자, 균형주의자의 목소리가 힘을 잃고, 새된 소리로 외치는 자, 혐오주의자, 급진주의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미묘한 차이들은 양자택일과 아군과 적군의 구별 속에 묻혀 버린다.”고 현실을 진단한다. 그가 제시한 해법은 적대하는 사람들 간의 ‘접촉’이다. “어떤 사람을 진짜 알게 되면, 더는 그를 증오하지 못한다.” 1950년대 사회심리학자 고든 올포트는 여러 연구와 실험을 통해 일찌감치 이런 사실을 파악하고 ‘접촉가설’이라고 이름 붙였다. “적대자들 사이의 접촉은 편견을 줄여 주고, 더 평화로운 관계로 이끈다.”는 이 가정은 이후 이론으로 굳어졌다
https://www.hani.co.kr/arti/culture/book/995191.html -21/5/14, 한겨레신문-
지난 대선에서 1위 후보는 48.56%를, 2위 후보는 47.83%를 득표했다. 다시 말하면 어떤 사람을 만났을 때 나와 정치적 성향이 같을 확률은 반정도라는 말이다. 평소 친하던 사람들과의 모임이라면 다를 수도 있지만, 어딘가에서 처음 보는 10명이 모이면 내가 평소 '터무니 없다'고 여기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5명은 된다는 것이다. TV에서 보며 '미치광이'라고 욕했던 사람과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내가 아는 지인 중에도 반은 될 거라는 얘기다.
TV에서 본 사람을 '미치광이'라고 간단히 치부하고 욕할 수 있는 이유는 일면식도 없는 관계이기 때문일 것이다. 내 입장에서 볼 때 좀 과도하고 정상에서 벗어났다고 보이는 그 사람의 정치적 견해를 제외하고는 그 사람에 대해 아는 바가 하나도 없기 때문에 '좋게 봐줄'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와 같은 정치적 견해를 가졌으나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경우도 왕왕 있다. [하윤이에게 알려주고 싶은 이야기]에서 소개했던 정치적으로 정반대 의견을 가지신 이웃 할머니는 살아오며 여러 차례 우리 가족에게 다양한 친절과 따뜻한 정을 베풀어 주셨고 지금까지도 매우 잘 지내고 있다. 이 사람들에 대해서는 다른 많은 면을 내가 안다. 다른 좋은 면도 알고, 도움을 받은 적도 있어서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는 분들도 있다. 심지어 가족 중에도 있다. 그래서 정치적 견해에 있어서만 '다르다'고 생각하지 이 사람 전체를 이상하게 생각하지도 않고 더욱이 '미치광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정치적 견해만을 두고 보자면 다 같은 사람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니까 너무 모질게 말하지 말고 절대 해치지는 말자.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고 지인, 친지, 가족을 해치지는 않지 않나. 그러니까 그 사람들도 해치지는 말자. 결국 내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과 다르지 않은 사람일 뿐이다. 좀 과하다 싶은 사람을 접하게 되거든 물어뜯을 송곳니를 먼저 드러내기 전에, 내 주변에 있는 비슷한 사람을 먼저 떠올려 보자. 그리고 그와 비슷한 사람일 거라고 한번 생각해 보자. 그러면 올라갔던 입술이 다시 내려오면서 사나운 송곳니를 좀 가려주지 않을까?
■ 함께 읽으면 좋은 책
▶ [국가론] - 플라톤
[국가란 무엇인가]에 소개된 이론에 따르며 '목적론적 국가관'을 소개하는 책이다. 정의의 개념부터 논의를 시작해서 좋은 국가는 어떤 것인가 하는 내용들이 대담 형식으로 읽기 쉽게 정리되어 있다. 국가를 운영할 현명한 철학자를 양성하기 위해 어렸을 때부터 거쳐야 할 다양한 교육과 훈련이 설명되어 있다. 충분한 경험을 쌓은 후 국가를 운영하게 되면 사사로운 재산을 형성하고 개인적인 가정을 꾸리는 것이 금지된다. 특정 엘리트가 나라를 운영하는 방식이므로 민주주의적 방식에는 반한다는 비판이 있다.
▶ [정의란 무엇인가] - 마이클 샌델
위 책이 좋은 국가에 대한 이야기라면, 이 책은 어떤 형태라면 모두가(더 많은 사람이?) 만족할 만한, 정의로운 사회가 될 수 있을까에 대해 생각해 보는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공리주의, 자유주의 등 사회 정의에 대한 다양한 이론들이 소개되어 있다. 역시 내가 꿈꾸는 좋은 사회는 어떤 모습일지 생각해 보는 기회를 제공하는 책이라고 볼 수 있겠다. [공정하다는 착각]도 이어서 읽으면 더욱 좋다.
▶ [유한계급론] - 소스타인 베블런
보수의 핵심 세력이라고 할 수 있는 유한계급(有閑階級, 생산활동에 종사하지 않으면서 소유한 재산으로 소비만 하는 계층)은 어떤 생활양식을 가지고 있고, 왜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지, 사회변화에 어떻게 저항하는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등의 관점에서 참고할 내용이 많을 것 같다.
▶ [리바이어던] - 토마스 홉스
자연 상태의 인간은 개인의 안전과 이익, 권력에 대한 욕구 등에 의해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이라는 무의미하고 유해한 혼란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는데, 이 상태의 종식을 위해서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강력한 힘을 가진 바다 괴물인 '리바이어던'과 같이 누구나 두려워 할 강력한 절대권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권력자에 대한 비판, 일체의 정치 활동이 금지되고, 법의 제정과 해석(판결)도 주권자(통치자)의 마음이고, 국민에게 무엇을 가르칠 지도 주권자(통치자)가 정한다.
근대적 개인주의, 사회계약론 등에 크게 영향를 미쳤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나, 독재·전체주의를 옹호하는 것인가, 국민의 저항의지 자체를 없애려는 의도가 있지 않은가 하는 비판도 받는다.
고도의 통제사회에서 볼 수 있는 사회적 잡음과 불만 없이, '한눈 팔지 않고' 각자 맡은 바 일에 묵묵히 매진하며, '질서 정연하고', '안정된' 세상이 연상된다.
다 좋다고 해도 아무런 도전도 없고 빼앗길 수도 없는 그토록 막강한 권력을, 사심없이 / 오로지 국민만을 위해 / 변함없이 사용할 수 있는 지도자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지가 가장 의문스럽다.
▶ [군주론] - 니콜로 마키아벨리
[리바이어던]과 함께 읽으면, 국가주의 국가관을 가진 사람들이 국가와 국가 지도자에 대해 가지는 생각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군주 또는 통치자는 권력을 장악하고 유지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되며, 필요하다면 잔인하고 교활한 수술까지 활용해도 된다고 권유한다. 외세와 교황의 힘 등에 의해 나뉘어진(혹은 침략의 위험에 처한) 조국이 하나의 강력한 통일 국가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게 하는작가의 시대적 배경은 [리바이어던]과 매우 흡사하다.
▶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 스티븐 레비츠키, 대니얼 지블랫
어떻게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합법적으로 파괴될 수 있는지, 트럼프가 미친 약영향 등이 다루어져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