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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Sa Nov 25. 2022

달리기를 싫어하던 내가 12년간 릴레이 선수로 뽑혔다

그때는 몰랐다. 내 다리가 빨라질 거라곤. 그리고 선수가 된다는 것도.

일본은 교통비가 한국보다 비싸다. 그건 지금도 옛날도 그렇다. 태어나고 유치원 때는 엄마 자전거 뒤에 타고 초등학생이 되면 개인 자전거를 타고 이동한다. 가족당 하나가 아닌 모두가 하나를 소유한다. 우리 집은 4명이라 4대 있었다. 부모님은 내가 초등학생이 되자마자 자전거를 사주셨다. 나보다 2살 많은 오빠는 이미 자전거를 탈 수 있었고 그래서인지 내 자전거 연습을 도와줬다. 주말에는 가족과 지하철을 타고 멀리 떠났다. 하지만 날이 좋으면 근처 공원에서 자전거 연습을 했다. 부모님은 하루빨리 자전거를 타길 원하셨다. 그 이유는 내가 힘들기 때문이다. 나는 자전거를 못 탔음으로 다른 방식으로 이동했다. 그것은 자전거로 이동하는 오빠들 사이에서 뛰는 거였다.


학교가 끝나고 친구들의 부모님 사이들도 친해서 자주 친구 집과 우리 집을 들락날락 거리며 이동을 해야 했는데 오빠 친구들과 내 친구들은 다 자전거로 이동하고 나만 뛰는 것이다.


짧은 다리로 나는 체력 좋은 오빠들과 함께 쳐지지 않게 뛰었다. 처음에는 힘들어하는 나를 걱정한 오빠가 중간중간 멈추며 내가 잘 따라오는지 지켜봐 줬다. 다른 친구들은 먼저 갔지만 친오빠인지라 동생을 걱정해줬다.


그렇게 지낸 지 반년이 지나고 나는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되었다. 이 정도면 런스 감각이 0에 가까운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했지만 아무튼 탈 수 있게 되어 천만행이다.


나는 달리기에 지쳐 있었다. 너무나도 싫었다. 이제 그만 뛰고 싶은 감정으로 나는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하지만 사람이 반년을 장거리 마라톤 하듯이 뛰면 어떤 결말이 생길까? 정답은 운동회 때 달리기 선수로 뽑히게 된다.


맞다. 나는 이를 계기로 초등학교 6년간 빠짐없이 달리기 선수로 뽑혔다. 한 때는 선수가 되기 싫어서 일부러 속도를 느리게 했다. 하지만 우리 반 여자애 중에서 잘 뛰는 애가 없었는지, 아니면 선생님이 눈치채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또 선수로 뽑히고 말았다.


나는 땅을 탁 하고 밟으며 빠른 회전으로 다리를 돌리고 순식간에 골인했다. 가끔 나는 내 힘을 조절 못하고 속도가 넘쳐 날아가 넘어지기까지 했다. 에너지 조율을 잘해야 한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중학생이 되었을 때도 운동회가 매년 열렸다. 그리고 나는 또다시 달리기 선수로 뽑혔다. 왜 남녀를 갈라서 각각 선수를 뽑는지 이해가 안 갔다. 여자애들 중에 달리기 빠른 친구가 없었는지 나는 매번 반에서 선수로 뽑혀 갔다.


선수로 끌려간 친구 중에 나와 같은 육상부를 하는 친구들이 2명 있었다. 그들은 자기 반에 육상부 동아리 선수가 3명 있으니 무조건 이길 거라 생각한 모양이다. 물론 나도 달리기 전까지는 그럴 줄 알았다. 하지만 예상을 넘는 결과로 우리는 등을 하고 말았다.


이유는 내가 긴장을 너무 하는 바람에 앞에서 달리고 있선에서 이탈하고  것이다. 선수는 자기가 뛰는 공간으로부터 이탈하면 1등을 달리고 있더라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서 처음부터 뛰어야 하는 룰이 존재했다. 하지만 나는 이미 1등으로 중간 지점까지 뛰고 있었고 주변에서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귀를 귀 울릴 수가 없었다. 그리고 경기가 끝나자 많은 비난이 쏟아지고 같이 뛰던 육상부 친구들에게는 차가운 시선과 함께 중학교 생활 내내 그 시절의 실수를 듣게 되는 사태로 이루게 됐다.


날이 지나 나는 더 이상 선수로 활동을 하는 것을 거부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에 두려움과 비난에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중학교 때 공부를 못했다. 못하기 이전에 안 했다. 그 대신 나의 정신은 운동에 집중되고 달리기도 그중 하나로 나의 장점이었는데 그날 이후로 스타트 트라우마가 생겼다.


고등학교에 올라가자 운동회는 모습을 드러냈고 여전히 달리기 선수를 구했다. 그리고 또다시 나는 선수가 되었다. 피하지 못할 장면에서 나는 머리를 쓰지 못했다. 왜냐면 달리기를 못하는 사람이 잘하는 척은 쉽지 않은것 처럼 잘하는 사람이 못하는 척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나중에는 포기하고 있는 힘것 달렸다가 우리 반 반장에 눈에 딱 걸리고 말았다.


"야~ 너 달리기 빠르네. 선수 확정!"


나는 운동회가 다가오기 전에 어떻게 하면 달리기를 안 하게 될지 생각했다. 비를 많이 맞고 오면 추위로 열이 날거라 생각하고 샤워를 길게 했다. 엄마는 물 낭비라고 하며 야단을 치셨다.


운동회 당일.

나는 그 어느 때 보다도 컨디션이 좋았다. 결국 뛰어야 하는구나 하고 한숨을 내뱉으며 운동장을 향했다. 그때였다. 반 친구 한 명이 나에게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


"있잖아. 너 달리기 빠르다고 들었는데 나 대신 뛰어주면 안 될까? 진짜 부탁이야. 나 다리 다쳐서 못 뛰겠어"


반 전체가 한 번식 뛰어야 하는 경기에서 나는 두 번 뛰어야 했다. 그러니까 나는 오늘 달리기만 무진장하게 된 것이다.


달리기를 싫어해도 뛰어야 하고

트라우마가 생겨도 결국 뛰어야 했다

운동회에서는 '예외'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은 것 같다.


나는 결국 12년간 달리기 선수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자랑할 거리가 생긴 건데 그 시절 나에게는 아주 곤란하고 싫었다. 하지만 그때도 지금도 같은 마음으로 달리기 하면 두근 거리며 설렌다. 결국 나는 달리기를 좋아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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