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천우연 입니다 Oct 30. 2022

(2) 똑똑똑, 열어주세요 장학금 문

선택하지 않은 길이 얼마나 멋졌을지를 상상하는것은 아무 의미가 없듯,

작년 10월부터 영어 점수를 만들고, 영혼을 털어넣은 자소서와 이력서를 작성해 유럽의 다섯군데 학교에 원서를 넣었다. 코로나 시국에 유학생이 귀해졌는지 다들 합격통지서를 주었다. 마음은 이미 덴마크로 정했으나 한국 물가의 두배가 뛰어 넘는 생계비에 눈앞이 캄캄. 내 주머니 사정으론 감당이 안되어 전국에서 두명, 세명 뽑는다는 국비 유학생, 유럽연합 장학금까지,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 문, 어찌 두꺼운지 내 손등으로 아무리 세게 쳐도 안에 있는 이들에게 들릴까 말까. 


한국 장학금 세곳과, 유럽 학교, 그리고 유럽 교육 관련 기관까지 총 열개를 넣기로 계획을 세웠다. 몇군데는 이미 지원을 완료했고 벌써 선정자 발표가 나기 시작했다. 되게 해달란 간절함 보다 떨어져도 낙담하지 않고 겸허히 받아들이는 마음으로 (흥,칫,뿡) 맘 상하지 않게 해달라 기도했다. 두근두근 하며 열어본 메일. (dear까지는 좋았다) 

 "I am sorry to inform you" 또는 
"We are very sorry to announce you"


(매번 미안하대. 안 뽑아줘서) 이게 현실이었다. 

"you have not been selected" 알았어요 알았다구요.


몇번의 낙담 메일을 받고 무엇이 문제인지 가만히 들여다 보았다. 사실 학업계획서를 쓸때부터 늘 풀리지 않은 한가지가 있었는데, 그것이 합격여부를 판단하는 중요한 요소였을것이다. 몰라서 깜빡하고 못 적은게 아니라, 멋진 대답을 찾으려 애쓰는 내가 싫어서였던듯 하다. 적긴 했지만 이정도는 부족해 라고 생각할때 (이게 수천,수억의 사업 프로젝트였으면 끝까지 메달렸겠지. 그러나 이건 사업이 아니라, 내 삶 아닌가) 꾸며내려는 그럴싸한 말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울 때, 나는 노트북을 덮어버렸다.


(사실 따져 묻고 싶었다)

공부를 여행하듯 하면 안되요? 뭘 꼭 그렇게 있어보이는 동기가 있어야 해요?

이 학교 아니면 안되는 이유를 거기 가서 찾으면 안되요? 가서 또 못찾으면 어때요?

졸업 후는 좀,,,, 나중에 생각하면 안될까요?  


마음이 시작하면 이미 몸이 움직이고 있는 나는, 불합격 통지서를 확인하자마자 담당자에게 메일을 보내거나 전화를 했다. "제가 무엇이 부족하죠?" 명쾌한 답을 받은 적은 한번도 없지만, 과장된 언어로 나를 표현해서 받느니 '내 꿈 내가 알아서 펼쳐 내겠소. 차라리 잘됐어' 라며 스스로 위안 안기며 전화를 끊었다. 




그, 런, 데,

이번 메일은 좀 달랐다.

 I am glad to inform you!! 세상에나!  


'지속가능한 삶'이라는 세계적 타이틀을 쥐고 있는 네덜란드 바헤닝언 대학교에서 딱 두세명 뽑는다는 튤립장학금에 선정되었다는 소식! 장학금은 천오백만원. (이 돈이면 일년치 생활비는 될듯). 

"감사합니다"

겨우 한달전, 지원했던 모든 학교로부터 합격 통지서를 받고 어디로 갈지 선택에 어려움이 있긴 했지만, 덴마크로 결정을 한 상태라 메일을 받자마자 마음이 급 어려워졌다. 직감은 덴마크라하고 논리적으로 따지고 실속 챙기자면 머리는 네덜란드라 마음이 속삭였다. 


아침부터 대학로에 나와 여기저기 걸으며 생각에 잠겼다. 

천이백만원, 그 당시 말도 안되는 첫 연봉을 받으며 나는 대학로 이 공간에서 6년을 세상 다가진듯 일했다. 

졸업하고 유치원 선생님이 될 판에 그때도 내 직감대로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던 '문화기획자' 라는 이 일을 선택했던거다. 그래, 내가 가야할 곳은 덴마크야. 다시한번 마음을 다잡고 집으로 돌아왔다. 

저 작은 창문속에서 보낸 나의 커다랗고 푸르렇던 "청춘 6년"

금새 사그라들줄 알았던 1500만원의 장학금의 아쉬움이 내 주의 계속 맴돈다. 문득 돈보다 하고 싶은것에 몰두했던 천이백만워짜리의 연봉시절을 떠올리니 그 아쉬움이 조금은 걷히는듯.


선택하지 않은 길이 얼마나 멋졌을지를 상상하는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내 발이 택한 길에서 배꼽 빠지게 웃다보면 이 길이든 저 길이든 그 길은 세상 최고 즐거울꺼라 믿어보며, 네덜란드 장학금을 준 기관에 고맙고 또 고맙지만, 나는 받지 않겠다, 미안하다는 메일을 보냈다.


 그럼, 이제! 덴마크 장학금 신청서를 더 야무지게 써 보자! 

이전 01화 (1) 40살과 8월, 그리고 덴마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