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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해원 Aug 24. 2023

축구는 정말 이상해

시골 여자 축구_6



한동안 축구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머리를 쥐어뜯고 화가 났다가 실망 했다가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이 나를 휩쓸고 갔던 시기가 있었다. 그런 나의 모습을 본 코치님이 저녁이면 어김없이 ‘해원, 전화 가능한가요?’라는 문자와 함께 여러 위로와 응원의 말을 전해주었지만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코치님은 이제 ‘슬럼프도 어느 정도 실력이 올라와야 생기는 겁니다’라는 뼈아픈 위로가 아닌 다정한 위로를 해준다) 빨리 성장하고 싶은 열망과 그로 인해 바쁜 내 마음을 쫓아오지 못하는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기 시작했다. 천천히 성장하는 나를 너그럽게 바라봐 줄 것인가, 급격한 성장을 할 수 있는 피나는 노력을 할 것인가! 혼자만 아는 이 갈림길 사이에서 특별한 진전 없이 방황 하고 있던 어느 날. 카톡방에 큰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대충 요약하면 이런 내용 이었다. ‘도 대회 참여 하실 분? 있다면 3일 안으로 선수 등록 해 주세요.’ 내용인즉슨 홍성을 대표하는 주류 여자축구팀에 합류하여 함께 훈련을 하고, 한 달 뒤에 있을 도 대회에 출전 할 사람을 찾는 다는 것. 공지가 올라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회 참여 의사를 표현하는 팀원들이 하나둘 속출하기 시작 했다. 두 명에서 세 명, 세 명에서 네 명이 되더니 고민 하던 친구들이 연이어 신청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총 여덟 명의 팀원이 선수로 등록 했다. 작은 불씨가 바람을 만나면 큰 불이 되듯 각자 성장하고 싶은 마음의 불씨가 도 대회 바람에 옮겨붙어 활활 불타오른 것이다. 훈련에 열 명만 참여해도 ‘우리끼리 5:5 축구를 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날’이라며 좋아하던 작은 시골 축구팀에서 여덟 명이 신청 했다는 것은 엄청난 돌풍이 아닐 수 없었다. 홍성‘군’을 대표해서 무려 ‘도’ 대회를 나가게 되다니. 주소에만 쓰던 지명을 내가 하는 어떤 행위 앞에 붙여 놓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웅장해 졌다. 


뜨거운 마음으로 참여 했던 첫 번째 도 대회 훈련 이었는데. 훈련에 다녀온 우리는 어째서인지 ‘누가 뭐래도(아무도 뭐라고 안 했음) 우리 팀이 최고야’와 같은 고백 릴레이가 이어졌다. ‘우리 팀이 최고고, 축구는 역시 팀플레이고, 우리 팀 사람들 너무 보고 싶고(며칠 전에 봤음), 소중하고, 어쨌든 같이 있어서 다행이야’와 같은. 어떤 날은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소통 중심인 우리 팀 분위기와는 달리 위계질서가 정확하고 다소 경쟁적인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구석에 옹기종기 모여 방황했다. 게다가 나는 밖에 나가니 병아리 챙기는 엄마 닭이 된 것 마냥 평소엔 있지도 않았던 주장으로서의 어떤 책무 같은 것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 정도 실력이면 우리가 다 주전으로 나가도 되겠는데?’ 같은 생각을 하며 고슴도치 엄마의 심정이 되기도 했다. 닭이 됐다 고슴도치가 됐다 하는 내 마음은 훈련장 밖을 나와서도 계속 이어졌다. 혼란스러워하는 내 마음을 고스란히 코치님에게 내비치고 함께해 달라 도움까지 요청했다. (코치님 죄송합니다)


그렇게 코치님까지 총 아홉 명의 동료들과 함께 한 달간의 긴 여정이 시작되었다. 화, 목 평일 저녁에 진행되는 도 대회 훈련과 주말에 진행하는 우리 팀 훈련까지 일주일에 총 세 번의 훈련을 나갔다. 평일 훈련을 가기 위해서는 적어도 7시 반에는 집에서 나가야 한다. 그래서 나는 출발 전까지 몸도 마음도 몹시 분주하다. 쌓여있는 집안일을 해결하고, 평소보다 일찍 저녁을 해 둔 뒤 아이들을 씻기고 잠자리까지 마련해 놓은 뒤 정신없이 뛰쳐나온다. 항상 생각이 많고 행동이 굼떠 뭘 해도 늦던 내가 이렇게 분 단위로 시간을 쪼개 계획하고 실천 하는 모습에 ‘내가 이렇게나 재빠르고 계획적이며 철두철미한(아님) 사람이었다니!’ 하며 나의 숨겨진 재능(?)과 축구를 향한 내 마음에 놀랐다. 


그렇게 정신없이 집을 나와 평소와는 달리 고요한 차를 타고 나 혼자 축구를 하러 가는 길은 마치 해방의 터널을 지나는 기분마저 든다. 훈련장에 도착해 두 줄로 서서 운동장을 뛰는 스무 명 남짓 한 여자들의 뒤통수를 보며 마음이 벅차기 까지 한다. 흩날리는 머리칼을 보며 ‘이 사람들도 집 밖으로 나오는 길이 나와 같은 터널을 지나는 기분 이었을까’ 생각했다. 축구하는 여자들을 볼 수 있는 이 시간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도 대회 훈련은 크게 두 분류로 진행 됐다. 같은 팀 동료들끼리 하는 자체 훈련과 다른 지역 여자 축구팀들과의 매치였다. 특히 외부 팀들과의 매치는 나에게 꽤 신선하고 충격적이었다. 상대 팀에는 항상 두 세 명 이상의 선출 언니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 선출 언니들 대부분 숏컷을 했거나 목이 쉬어 있다. 그들의 압도적인 포스에 경기를 뛰기도 전에 기가 죽는다. 물론 시합을 하면 더욱 더 기가 죽는다. 그들의 거침없는 플레이와 정확한 킥, 우렁찬 목소리와 거침없는 언어 사용... 사실 그냥 다 멋있어서 우리가 8:0으로 지고 있든 말든 나는 그 언니들에게 반해버렸다. 무엇보다 대단 했던 건 그들이 가진 승부욕이었다. 승리를 향한 그들의 집념과 열정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나는 그 모습에 또 한 번 반했다. 그리고는 혼자 속으로 외쳤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승부의 세계!’


우여곡절 끝에 대회가 끝나고 내 마음의 불씨는 사그라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활활 타올랐다. 개인의 성장과 더불어 내가 알지 못했던 여자축구의 세계를 경험 하고, 계속해서 새로운 세계에 도전하고 싶은 일종의 투쟁심리 같은 것이 나를 뒤흔들었다. 무엇보다 반반 FC의 이름을 걸고 대회에 나가고 싶은 열망이 나를 계속 재촉했다. 같이 뛰지 못한 친구들에 대한 아쉬움과 느리더라도 꾸준히 성장하는 우리 팀에 대한 믿음, 그리고 언더독의 반란을 보여 주고 싶은 전투적 심리... ‘우리는 돈도 없고 승부욕도 없지만 우리만의 색이 있다!’라는 걸 보여 주고 싶은 마음이랄까. 그런데 그 마음이 나만 혼자 앞서 괜히 동동거리고 북 치고 장구 치고 상처 받다 또 코치님을 들볶았다. (코치님 죄송합니다) 그런 내 모습에 기분이 상했을 법도 한데 코치님은 언제나처럼 세심한 듯 투박하고 투박한 듯 세심하게 나를 위로 해 주었다. “천천히 갑시다. 너무 혼자 짊어지려고 하지 마세요.” 그 말에 혼자 앞서가던 마음을 멈춰 세우고 그동안 함께 쌓아 온 시간과 친구들을 떠올렸다. 시간도 속도도 다 제각각 이지만 그래도 멈춰선 적은 없다. ‘우리만의 색으로, 우리만의 속도로.’ 속으로 되뇌었다. 


축구는 왜 이렇게 재미있는 걸까. 정말 이상하다. 아직 이 마음을 질서 정연하게 설명할 자신은 없지만, 이번 대회를 경험하고 한 가지 느낀 것은 축구는 정말 단순하다는 거다. 이기면 좋고 지면 분하다. 이 단순한 구조가 축구를 좋아하는 마음도 단순하게 만든다. 이기면 좋아서 계속하고, 지면 분해서 다시 한다. 이 굴레 속에서 계속 축구를 하다보면 실력이 늘어가고, 우정이 생기고, 추억이 쌓이고 그러면 또 신이 나서 계속한다. 그래서 축구에 대한 마음은 항상 상향곡선이다.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축구'의 김혼비 작가가 처음 여자축구팀에 입단했던 날 그곳에 언니들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첫 반년을 넘긴 사람들은 평생 축구 못 그만둬요. 이거, 기절해요.” 이 말의 뜻이 무엇인지 이제는 정확히 알 것 같다. 나는 이제 평생 축구를 그만두기는 어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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