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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해원 Oct 20. 2023

우리의 이름을 걸고

시골 여자 축구_7

© 연우아빠



새로운 팀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분위기에 적응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우리는 대회를 위해 임시로 모인 사람들. 지금은 같이 뛰어야 하지만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마음을 주기도 뭐하고 안 주기도 뭐한 관계. 우리는 도 대회에 나가기 위해 도시 주류 팀에 합류했다. 오직 대회를 나가고 싶은 열망 하나로 일주일에 두 번, 그것도 평일 저녁에 훈련을 나갔다. 여유로운 주말 오후 동네 사람들과 슬렁슬렁 훈련하는 우리 팀과는 상반된 일정, 상반된 분위기다. 나에게도 이번 도 대회 준비는 큰 도전이었다. 아이들과의 잠자리를 온전히 남편에게 맡기고 저녁 활동을 한 것이 거의 처음이었다. 단기간에 하나의 목표를 향해 전력을 다하느라 온 마음을 쏟았고, 경기에서 선수로 뛰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대회는 이틀 동안 진행됐다. 우리는 첫날 오전과 둘째 날 오후 경기였다. 경기 시간 한두 시간 전에 모여 몸을 풀고 시합이 시작되기 직전에 뛰게 될 포지션을 전달받았다. 나는 몸을 풀면서도 마음은 콩밭에 가 있었다. 주전이 될까 안 될까, 오늘 경기를 뛸 수 있을까 없을까. 걱정과 설렘, 그리고 긴장감이 감돌았다. 


몸을 풀고 감독님이 사람들을 불렀다. “언니들~! 테이핑 필요한 사람들 이리로 오세요~!” 절반 이상의 사람들이 우르르 그곳으로 몰려갔다. 나도 그 틈에 같이 끼어갔다. 며칠 전부터 허벅지 쪽이 뻐근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감독님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어떻게 여기에 오게 됐는지, 그 전에 선수로 프로 뛰었었는지,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는지 등등. 그동안에는 낯가림과 긴장감, 경계심 등으로 묻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마지막이 얼마 남지 않아 그랬는지, 내 살을 만져주는 그녀의 손길이 따뜻하게 느껴졌는지 술술 잘도 나왔다. 같이 훈련을 받았던 다른 언니들과도 마찬가지였다. 그동안 경계했던 마음이 이제야 조금 풀리는 기분이었다. 오늘은 한 팀으로 같이 뛰어야 하는 날이니까. 언니들이 챙겨온 녹용과 홍삼을 나눠 먹고 마주 앉아 썬 크림을 발랐다. 다들 조금씩 들떠 있었다. 


경기 시작 30분 전 오늘 뛰게 될 선발 라인업을 발표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다행히 주전이 되었다. 나의 포지션은 미드필더. 평소 연습했던 자리였다. 그러나 이날 우리 팀에는 에이스 언니들이 대거 빠져 있었고, 결국 별거해보지도 못하고 7대0 대패를 했다. 나는 전반이 끝나기 전에 교체됐다. 사실 승패에 큰 욕심은 없었기 때문에 별 영향은 없었는데, 전반도 다 뛰지 못하고 나왔다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다음날, 나는 눈치를 보다 감독님에게 말했다. “감독님, 저 미드필더 말고 윙으로도 뛸 수 있어요.” 어제 일찍 교체되어 나온 것도 신경이 쓰이고, 나도 미드필더로 뛰었던 내 플레이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연습에서는 미드필더만 했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도 뛸 수 있다는 것을 어필 하고 싶었다. 감독님은 조금 놀라는 표정으로 “그래요? 오케이.” 라고 말하며 돌아섰고, 나의 어필은 먹혔다. 다시 경기 시작 30분 전. 두 번째 라인업이 발표 됐다. 다행히 이번에도 주전으로 뽑혔다. 이번에는 오른쪽 풀백, 수비 제일 오른쪽 자리였다. 수비수는 처음이라 좀 당황했지만 그래도 경기를 뛸 수 있다는 게 나에게는 더 중요했다.


풀백으로서 나의 가장 큰 임무는 수비 라인을 지키는 거였다. 수비도 처음 해보는데 라인을 관리하라니. 난감한 마음으로 경기에 들어갔다. 그런데 나의 시야가 생각보다 넓었던 건지 상대가 우리 수비라인 확인을 잘 못 하는 건지 상대 공격수가 우리 팀 오프사이드 트랩에 계속 걸렸다. 라인 컨트롤을 하던 나는 오프사이드 깃발이 올라 갈 때 마다 희열을 느꼈다. 더욱이 오늘은 어제는 못 왔던 에이스들이 있었다. 두 명의 경찰 언니들이 앞쪽에서 휘젓고 다니는 통에 뒤를 지키는 것도 할 만했다. 비록 1:0으로 패배했지만 모든 사람들이 끝날 때까지 ‘이거 모른다...!’ 라고 생각할 정도로 몰입한 값진 승부, 값진 패배였다. 


그런데 나는 경기가 끝나자마자 눈물이 핑 돌았다. 좋아서가 아니라 속상해서. 져서가 아니라 경기를 못 뛴 친구들이 보여서였다. 주전 선수들의 의외의 활약으로 감독님은 아무도 교체 시켜주지 못했다. 후보 선수 중에는 어제도 몇 분 뛰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고 거기에 우리 팀 반반FC 친구들도 있었다. 우리가 이 대회를 준비하며 함께한 한 달의 열정을 알기에, 나 또한 이 경기에 얼마나 진심 이었는지 얼마나 뛰고 싶었는지 알기 때문에 마음이 더 동요됐다. 나는 경기가 끝나자마자 그 친구들에게 달려갔다.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여기서 내가 울면 기분 나쁜 오지랖이 될 것 같아 꾹 참았다. 


실망한 M과 S의 얼굴을 보니 더 속상했다. 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다시 꾹 참았다.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어필 같은 거 하지 말걸 그랬나. M과 함께 사는 반반 FC 매니저님은 화가 단단히 나 있었다. “이럴 거였으면 어제라도 좀 뛰게 해주던가. 어제도 오늘도 아침 일찍부터 나왔는데 이게 뭐예요...” 공감이 갔다. 나는 두 가지 감정을 느꼈다. 하나는 내가 반반 FC의 주장으로서 나 살 생각만 하고 팀원들을 챙기지 못했다는 죄책감, 그리고 남에 팀에서 이런 일을 겪었다는 분함 이었다. 


나는 경기가 끝나고 뒤풀이에 가지 않았다. M도 가지 않았다. 내가 우리 팀 단톡방에 전체 대회가 다 끝난 후 반반 FC 사람들만 따로 만나자고 제안했다. M도 잠깐 들르겠다고 했다. 동네 술집에서 이번 대회를 함께 준비한 사람들이 하나둘 모였다. 북적했던 도시를 떠나 다시 시골 마을로 돌아왔다. 뒤늦게 M과 매니저님이 도착했다. 매니저님은 여전히 화가 나 있었고, M은 담담하게 서운한 마음을 표현했다. 대회를 같이 준비하다 나이 문제로 최종 엔트리에 들지 못했던 B도 왔다. B 역시 담담하게 지난 서운함을 이야기했다. 다른 팀에서 뛰다 보니 그들과 소통에 어려움이 있었다는 얘기를 나눴다. 나는 우리 팀 이름으로 나갈 수 있는 대회를 최대한 빨리 준비해 보면 어떻겠냐고 했지만, 팀원들은 급하게 하지 말고 천천히 준비해 보자고 했다. 우리가 늘 그래왔던 것처럼, 우리 속도대로.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분하고 속상하고 다급했던 마음이 조금 진정됐다. M과 매니저님은 일찍 자리를 떠났고, 남은 사람들은 이야기를 좀 더 하다 헤어졌다.


아무래도 M은 가장 마음을 다친 듯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한 달째 훈련에 나오지 않았다. 팀원들도 그런 M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하는 눈치다. “오늘도 M 훈련 못 나온다네.” “그렇구나...” 우리는 ... 뒤의 이야기를 더 하지 않았다. M에게 왜 나오지 않느냐고 다그치지도 않았다. 그저 기다릴 뿐이었다. M이 나오지 않을 때마다 M을 한 번 더 떠올려 볼 뿐이었다. 우리 팀이 그렇듯 M도 자기 속도대로 회복하고 돌아오길 기다려 주는 게 우리 팀의 위로법이었다. 그래도 우리는 알고 있었다. M이 분명 다시 돌아올 거라는 것, M 역시 누구보다 축구에 진심인 사람이라는 것을.


예상대로 M은 다시 나타났다. 매주 하는 훈련에도, 한 달에 한 번 하는 글쓰기 모임에도 나왔다. 자신의 이야기엔 과묵한 M 마음을 자세히 살필 수 있게 된 건 글쓰기 모임에서였다. 마침 이번 주제가 지난 도 대회 경험을 쓰는 거였다. M이 어떤 이야기를 적어왔을까 궁금했다. M은 특유의 낮은 목소리로 자신이 써온 글을 읽어 나갔다. 글을 읽는 그녀의 목소리가 조금씩 울컥거렸다. 그리고 M이 이 부분을 읽을 때쯤 듣고 있던 우리는 함께 울고 있었다. 


  대회를 마치고 한 달 동안은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어떻게든 좋은 추억으로 남기려 했던 여러 번의 시도가 실패한 끝에서야 내 마음이 꺾여버렸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갖은 수와 합리화를 동원해도 좋게 해석되지 않는 경험도 있다는 것이 너무나 낯설게 느껴졌다. 그래서 시간이 걸렸다. 대회를 준비하는 훈련만큼이나 치열한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는 것, 그리고 그런 일에 상처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시간. 그리고 대회에 대한 내 마음이 꽤나 진지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시간.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 아니라 꺾여버린 마음이라는 사실을 알아채는 시간.

 그 시간이 지나자 치유보다는 망각의 힘으로 다시 운동장에 나갈 수 있게 되었다. 시합에 나가려고 축구를 한 것도 아니고, 사실 축구에게 상처받은 것도 아닌데, 괜히 나쁜 기억이 덧입혀져 축구를 미워하게 될까 봐 무서웠는데 그건 아니었다. 막상 뛰어보니 그런저런 생각이 나지 않을 만큼 여전히 힘들고, 또 재미있었다. 다행히, 여전히 축구가 좋다. 다만 그저 재밌기만 했던 축구에 보다 복잡한 감정이 뒤엉키게 되었을 뿐. 좀 더 복잡하게, 보다 진지하게, 한풀 꺾인 채로 좋아하게 된 것뿐이다.

(M의 글 ‘중요한 것은 꺾여버린 마음’ 일부)


울보로 소문난 나와 J는 당사자보다 더 눈물을 흘리며 서로를 주책이라고 놀렸다. 그리고 M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이 글을 써줘서, 그리고 다시 돌아와 줘서. 우리는 올해가 아니면 내년, 축구가 아니면 풋살이라도 꼭 우리 팀 이름을 걸고 대회에 나가자고 의기투합했다. 우리에게 축구를 더 열심히 해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생기게 된 거다. 우리가 반반 FC의 이름으로, 그 이름이 적힌 유니폼을 입고, 몇 년간 함께 발을 맞춰온 친구들과 대회에 나가는 날을 상상한다. 그날이 오면 울보인 나와 J는 또 울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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