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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해원 Sep 12. 2023

남보다 가까운, 가족보단 먼

이름 없는 관계_1

© 해원



<윗집 일기>


“엄마! 갔다 올게~ 이따 만나!”


우리 집 삼 형제 중 가장 낯을 많이 가리는 막내 ‘우리’의 아침 인사다. 등에는 첫째 울림이부터 둘째 '이음'이를 거친 알록달록한 가방을 메고 있다. 그러고는 곧장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혼자 아랫집으로 내려간다. 아침이면 형들 학교 보내 놓고 “‘우리’한테는 아랫집이 학교야!”라며 누구보다 씩씩한 목소리다. 그런 ‘우리’를 보고 있으면 어린이집에 가지 않겠다고 주차장에서 산으로 도망가던 그 녀석이 맞나 싶다. 올해로 여섯 살이 된 ‘우리’는 아직 어린이집에 가지 않는다. ‘이렇게 둬도 되는 걸까, 이렇게 기다리기만 해도 되는 건가, 이제는 또래 친구들과 놀아야 하는 거 아닌가, 이러다 나중에 학교도 안 간다고 하면 어떻게 하지’ 나는 마음이 시끄러운데, ‘우리’의 발걸음은 저렇게나 가볍다. 


매일아침 찾아가는 ‘우리’를 마중 나온 할아버지께 가방이랑 동화책 몇 권을 전하고 나 혼자 뒤돌아 집으로 돌아온데 기분이 이상했다. 문득 ‘우리 관계는 뭐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거다. 단지 이웃이라고만 하기엔 우리는 너무 많은 기억과 이해로 품어지는 마음들이 있다. 남이라기엔 가깝고 가족이라고 하기엔 조금 애매한. 아무리 찾아봐도 이름 없는 이 관계를 나는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아랫집 할아버지는 막내 ‘우리’가 엄마 등에 대롱대롱 업혀 다니던 시절부터 아이들과의 이야기를 일기처럼 편지처럼 쓰고 계신다. ‘아이들 엄마한테 알려주려고 글로 적고 있다’ 하시던 이 글들을 읽고 있으면 자주 마음이 물컹해지고 줄줄 눈물이 나기도 한다. 티 없이 맑은 순수가 아름다워서, 닿아 있는 어떤 마음들이 애달파서, 드넓은 품 안에 내가 너무 작게 느껴져서. 그래서 자꾸 떠올리게 된다. 우리의 관계에 대해서. 


꾸준히 올라오는 할아버지의 글을 읽으며 언제부턴가 우리 관계에도 이름을 붙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아이들이 작은 손으로 꼬물꼬물 맞춰가는 퍼즐처럼, 나도 느리고 서툴더라도 아랫집 할아버지와 아이들이 남긴 기억의 조각과 나에게 남겨 있는 기억의 조각을 퍼즐 맞추듯 맞추어 보고 싶다. 그러다 보면 우리의 관계에도 이름이 생기지 않을까.


<아랫집 일기>


2018.9.24

비가 오지 않는데도 아이들은 늘 장화를 신고 우리 집으로 건너옵니다. 판판한 오솔길을 두고 마치 모험하듯이 바위 계단을 조심스레 내려와 도랑을 건넙니다. 도랑이라고 하지만 비가 와야 바위틈으로 물이 새어 나와 며칠 동안 고여 있는, 가끔 소금쟁이가 뜨고 물맴이가 맴을 돌곤 하는 곳이지요. 큰아이 ‘울림’이와 둘째 ‘이음’이와 늘 엄마 등에 업혀 있는 막내 ‘우리’. 아이들이 불편해 보여 제법 두꺼운 널빤지를 잘라 나무다리를 만들었어요. 마침 바위 위를 미끄러지듯 내려오는 아이들이 ‘아, 다리가 생겼구나!’ 좋아할 줄 알았는데 시큰둥한 표정으로 늘 그렇듯 질퍽거리는 흙을 밟고 도랑을 건넙니다. 아이들은 내가 걱정하는 이 세상에 살고 있는 게 아니라 놀라움으로 가득한 하늘나라에 살고 있어요. 오늘은 짐을 싣는 외발 수레(밀차)에 울림이와 이음이를 태우고 숲길을 세 바퀴나 돌았어요.


2018. 9.29

맏이 ‘울림’이와 말을 튼 때는 아마 그 일이 있은 뒤일 거예요. 사근사근 말을 잘하는 둘째 ‘이음’이와는 달리 ‘울림’이는 뭘 물어봐도 금방 대답을 하지 않거나 짧게 한 마디 하지요. ‘아침엔 뭘 먹었니?’ ‘누룽지’ 어느 날은 ‘시리얼’ 그리곤 곧 말이 끊어지지요. ‘울림아, 이제 우리 집에 올 땐 혼자와도 돼 맛있는 것 먹고 싶거나 만화영화 보고 싶을 땐 이음이한테 시켜 말하지 않아도 돼’ ‘할아버지가 그걸 어떻게 알았어요’ 오늘은 길게 얘기했어요. 

그 일은 어제 아침에 일어났지요. 울림이가 뛰어오다가 마당에 넘어졌어요. 무척 아픈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어요. ‘울어도 괜찮아, 울림아’ 내가 말하자 순간 깜짝 놀란 듯 보였어요. 물론 울지는 않았지만요. 만약 내가 ‘아이구 형이니까 잘 참는구나’라고 말했으면 오랫동안 말을 트지 못했을지도 모르지요. 이제는 울림이도 이음이처럼 다리가 아프다며 내 등에 업혀 산길을 올라요.


2018. 10.15

‘어디 배꼽이 붙어 있나 보자’

울림이와 이음이는 얼른 윗옷을 걷어붙이고 배꼽을 보여줍니다. 아침에 만나자마자 나는 아이들 배꼽 검사를 합니다. ‘옛날에는 산이 날아다녔어 몰래 날아다니다가 사람에게 들키면 그 자리에 멈춰 서지’ 엊저녁엔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다가 ‘할아버지가 재미있는 이야기 해줄까’ 하니까 아이들은 아주 신이 났습니다. 빤히 얼굴을 쳐다보며 기다리는 아이들에게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아무래도 안 되겠어 할아버지가 가르치던 아이들이 마구 졸라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 줬는데 숨이 넘어갈 만큼 웃다가 배꼽이 빠져 큰일 날 뻔했어 그러곤 다신 재미있는 얘기를 해 달라고 하지 않았어. 지금도 병원에 가면 배를 움켜쥐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는데 너무 웃다가 배꼽이 빠진 사람들이야.’ 그러건 말건 아이들은 이야기를 해 달라고 보채지만 나는 끝내 해 주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이 걱정되어서요. 오늘은 다락방에서 ‘캄펑의 개구쟁이’를 읽어 주다가 우리 아이들 키울 때 생각이 나서 아이들을 이불에 눕히고 ‘담요그네’를 태워줍니다. 손자가 없는 우리에게 이웃아이들이 찾아와 우린 할머니 할아버지로 살아갑니다


2018. 11.7

우리는 까마득히 잊고 있지만 아이들은, 우리의 본디 고향이 하늘임을 곧바로 느껴 알고 있는 듯해요. 아무렇지도 않은 이 땅에서의 삶이 아이들에게는 늘 낯설고 놀라움으로 가득 차 있거든요. 초인종이 울려 나가 보니 문 앞에 아이들이 옹기종기 서 있어요. 엄마 등에 업힌 ‘우리’, 어제 집으로 돌아가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늘 처음 만나는 듯한 울림이와 이음이. 울림이는, 과일 낱개를 싸는, 그물처럼 생긴 스티로폼을 하나는 팔뚝에 감고 하나는 머리에 쓴 채 나타났어요. 마치 로봇 같아 보였어요. 속옷 윗도리에 새겨진 꼬마 요술장이인 듯한 그림, 이음이는 배를 내밀어 자랑하더니 한쪽 눈을 찡그리며 그림 속 아이 표정을 지어 보였어요. 딱지를 만들어 치고 종이비행기를 접어 다락에서 날리고 창 밖이 어두워질 때까지 놀았어요. 아이들은, 어제에 묶여 있는 나를 풀어서 늘 지금 여기로 데리고 오지요.


아침을 먹으며 아내와 내가 주고받은 말입니다
아내 : 아이들이 벌써 내려왔나 봐
나 : 일찍 깨어났나 본데
아내 : 아니야 닭 우는 소리야 우리가 단단히 미쳤지
아내가 웃습니다. 엊그제인가 나도 밭에서 일하다가 닭 우는 소리를 듣고는 아이들 소리인지 알고 두리번거렸던 적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우리 집에 처음 왔던 때가 생각납니다. 이사 온 다음 날이었습니다. 이사 온 날은 친할머니와 친할아버지가 돌보고 있었으니까요. 웬 아이가 문 앞에 서성이고 있어서 얼른 나가 데리고 들어왔습니다. 조금 있다가 조금 작은 아이가 열린 부엌문 사이로 빼꼼히 들여다보고 있어 어서 오라고 반갑게 맞이했습니다. 이름도 물어보고 나이도 물어보고 울림이는 일곱 살, 이음이는 아내가 잘못 알아들어 ‘세 살’ 하고 되묻자 손가락까지 펼쳐 보이며 네 살이라고 야무지게 말했습니다. 묻는 말에만 짧게 대답하고 주는 것만 오물오물 먹으며 하도 조용해서 퍽 수줍음을 타는 아이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오늘은 비옷 속에 가방을 메고 놀러 왔습니다. 들어서자마자 안 보여 준다는 이음이 가방 속에도, 울림이 가방 속에도 그림책이 들어있었습니다. 그림책도 읽고, 울림이 가방 겉주머니 속을 가득 채운 도꼬마리 열매를 던지며 놀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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