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관계_3
<윗집 일기>
오늘은 아이들이 아랫집에서 자고 오기로 한 날이다. 작년부터 아이들은 방학이면 아랫집에 서 하룻밤 자고 온다. 형들 따라 같이 갔다가 잘 시간이 되면 집으로 돌아오던 막내 '우리'도 올해부터는 자고 온다. 그런데 방학이 아닌 날 자고 오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긴 연휴 덕분이기도 하지만 요 근래에 '우리'가 자꾸 '아랫집 할아버지네서 자고 오고 싶다'고 줄기차게 말해 온 덕이기도 하다.(사실 '우리'가 가장 원했던 것은 자기 혼자만 자고 오는 것 이었지만 그러려면 또 다양한 작전을 짜야 했기 때문에...)
나는 아이들이 아랫집에서 자고 오는 날을 ‘아랫집 캠프 가는 날’ 이라고 부른다. 세 명의 아이들이 한번에, 그것도 하루 종일 집밖에 나가 있는 일은 나에게 아주 이례적인 일이다. 나는 이날을 어떻게든 더 이례적인 날로 만들고 싶어 온갖 계획을 세운다. 남편이랑 데이트를 가거나, 영화관에서 어른 사람들과 영화를 본다거나, 도서관 독서실에 간다거나, 오직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먹으러 간다거나 하는 것들. 누군가에겐 사소할지 몰라도 애 셋 엄마에게는 너무나 특별한, 그런 것들로. 그런데 이번에는 하루 종일 집에 있기로 했다. 마침 남편도 늦는다고 하여 집에 혼자 남게 됐다. 집에 오직 나 혼자만 있는 순간. 이것 이야 말로 얼마나 이례적인 일인가.
아이들은 파자마 바람으로 집 밖을 나선다. 평소와 달리 아주 일사불란하다. 아이들이 하나 둘 아랫집으로 들어간다. 마지막 한명의 뒷모습이 아랫집 문 안으로 들어가는 바로 그 순간, 나는 모든 가사노동으로부터 몸과 마음을 해방시킨다. 그리고 아이들 앞에서 하지 않으려 애쓰던 것, 건강한 삶을 살려 애쓰던 것들을 마구 풀어해친다. 일단 과자로 식사를 때우는 것부터 시작한다.
해질 무렵 할아버지 핸드폰으로 이음이에게 사진 두 장과 문자가 왔다. ‘실제로 보면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 같아. 얼른 봐! -이음-’ 사진에는 해질녁 모습이 담겨 있다. 건너편 오서산 너머로 해는 떨어지고 붉은색 푸른색 하늘이 뒤따라간다. 컴퓨터 화면만 보고 있던 나는 잠시 창문을 열고 이음이가 말해준 곳을 본다. 항상 같은 집에서 같은 곳을 바라보던 나와 이음이가 다른 곳에서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으니 기분이 이상하다. 이음이에게 알려줘서 고맙다고 답장을 했다. 이번에는 할아버지에게서 문자가 왔다. ‘아이들이 노을이 무지개 같다고 얼른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했어요. 아이들은 이제 저녁 먹고, 풍선으로 공치기를 하고 있어요.’ 이번에도 두 장의 사진이 함께 왔다. 식탁 주변에서 아이들이 하늘색 풍선을 던지며 놀고 있는 모습이다. 웃음소리가 사진 밖으로 들리는 듯하다. 나는 할아버지께 감사한 마음을 담아 답장을 했다.
저녁 시간이 되었는데 누구 하나 나를 찾지 않고 아무 것도 요구 하지 않다. 밖이 어두워지도록 밥 먹을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가 밤이 되어서야 아무거나 꺼내 대충 끼니를 해결했다. 밥을 먹으며 핸드폰으로 올림픽을 본다. 여자 탁구 복식 결승전 이다. 어제 아이들과는 남자 탁구 복식 결승전을 봤는데. 어제는 졌고, 오늘은 이겼다. 이기는걸 같이 봤으면 더 좋았을 텐데.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아랫집에서 어렴풋이 아이들 소리가 들린다. 돌고래 같이 소리를 지는 것은 막내 ‘우리’, 그러다 들리는 울음소리는 이음이, 개구진 웃음소리는 울림이. 나는 집 앞에서 울어 대는 곤충들 소리 보다 더 작고 가늘게 들려오는 아이들의 소리를 들으며 혼자 상상한다. 우리 집도 아랫집도 모두 그 자리 그대로 있는데, 아이들의 존재로 같은 공간이 다른 공간이 된다. 고요하던 아랫집은 시끌벅적 해지고, 시끌벅적하던 우리집은 고요다 못해 적막 하다. 아이들이 가진 생기를 실감한다. 사람 하나의 온도가 크게 느껴지는 시골집에 혼자 남겨진 나는 집이 이렇게 추웠나, 생각 하며 가을이 이만큼 가까이 왔음을 느낀다.
늦게 들어온 남편을 평소와는 다르게 반갑게 맞아 준다. ‘여보, 오늘 나 신혼 무드야’ 남편에게 다짐하듯 말한다. 집에 혼자 있는 게 무슨 신혼 무드냐며 남편이 웃는다. 드라마에서나 봤던(평소에는 해 본적 없는) 겉옷 받아주기, 안부 묻기 같은 것들을 흉내 낸다. 남편이 뭐 하는 거냐며 또 웃는다. 넓어진 공간, 넓어진 이불 위에 단 둘이 눕는다. 오늘은 막내 ‘우리’ 대신 새신랑 역을 맡은 남편을 껴안고 잔다.
<아랫집 일기>
2022.2.26.
하룻밤 새우자고 하던 이음이가 ‘내일 또 일어나자.’ 라는 인사를 남기고 잠자리에 들었어요. 종이를 접어 칸을 나누어 ‘아야 어여 … ‘ 글자를 쓰다가 이따금, 먼저 잠든 울림이 머리맡에 가 물끄러미 바라보던 이음이마저 잠들었어요. 오늘은 처음으로 울림이와 이음이가 우리 집에서 잤어요. 아이들 큰손님을 맞이하려고 아침부터 몸을 깨끗이 씻고 집 안팎을 청소하고, 아내는 저녁과 이부자리를 준비하고, 나는 잠들기 전 읽어줄 동화를 찾아두었어요. 집에서 점심을 먹고 온 아이들과 달리기 내기도 하고 ‘우노’라는 카드놀이도 하고, 저녁을 먹고 나서는 영화도 함께 보았어요. 동화는 이현주 목사님이 쓰신 ‘개구리’를 들려주었어요. 개구리라는 별명을 가진 아이가 넘어져 밑에 깔려서도, 나이도 많고 힘이 센 아이에게 ‘남의 그림을 뺏으니까 나쁜 놈이지.’ 라고 할 때, 울림이는 나는 저렇게 못할 거라고 했어요. 밤이면 하늘 높이 떠 나를 지켜주던 울림이와 이음이 별이 꽃잎처럼 깃털처럼 사뿐히 내려와 지금 내 곁에 쌔근쌔근 잠들었어요.
2023.8.23.
방학이 끝나고 오늘 아이들이 학교에 갑니다. 지난 토요일에는 아랫집에서 하룻밤 잤습니다. 낮 한 시쯤 와서 다음날 낮 한 시가 훌쩍 넘어 집으로 돌아갔으니, 꼬박 스물네 시간을 우리와 함께 지냈습니다. 저녁을 먹고 영화 한 편을 보려 했는데, 샤워하면서 시간 가는 줄 몰라 그냥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창문을 열어 별도 보여주고 풀벌레 소리도 들려주려고, 대청마루에 이부자리를 폈습니다. 내 오른쪽에 ‘우리’, ‘우리’ 곁에 울림이, 이음이 차례로 나란히 재우려고 했는데, 이음이가 내 곁에 잔다고 파고 들어 계획이 뒤틀려 버렸습니다. 끝내는, 다락으로 올라가는 계단 밑에 울림이가, 울림이 머리를 맞대고 창문 밑에 이음이가, 내 오른쪽 머리맡에 ‘우리’가, 깔아놓은 요 틈을 비집고 맨바닥에 누웠습니다. 별을 보다가 울림이가 잠들고, 뒤척이다 이음이가, 꼬물꼬물거리다가 엄마 품이 생각났는지 엄마가 만들어준 ‘땅콩인형’을 가슴에 안은 채 ‘우리’가 잠들었습니다. ‘우리’는 무슨 신나는 꿈을 꾸는지 웃음소리를 냅니다. 잠 든 차례로 아이들이 일어납니다. 늦게서야 부시시 눈 뜬 ‘우리’ 위로 올라가, 울림이가 ‘우리’를 마구 간지럽힙니다.
2023.10.8
“재밌어서 졸리는 걸 까먹었어.”
‘우리’가 한 말이에요. 뭐가 그리 재미있었길래 졸리는 것마저 잊어버렸을까요. 엊그제 아랫집에서 하룻밤 자는 날, 저녁 먹고 이 닦고, 대청마루에 이부자리를 펴고 나란히 누워, 벽에 빔을 쏘아 영화 한 편을 보았어요. 아이들은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것 같다고 했어요. 아마 처음인 듯해요. ‘우리’마저 끝까지 눈을 떼지 못하고 가슴 졸이며 본 영화는요. 열 시가 넘어서야 영화는 끝났어요. 아이들과 함께 영화를 보고 있으면, 나는 빛나는 구름 속 ‘천공의 섬 라퓨타’처럼 하늘에 떠 있는 기분이에요.
다음날 아침에는 호수처럼 잔잔한 영화 한 편을 보았어요. 아이들은 긴 의자에 몸을 포개고 누웠어요. ‘추억의 마니’라는 영화 속엔, ‘우리’가 눈이 크고 귀엽다고 한 할아버지 한 분이 나와요. 왠지 나도 그 할아버지에게 정이 갔어요. 어찌나 말이 없으신지, 동네아이들이 10년만에 말 한디 한다고 놀리고 다녀요. 영화를 보고 난 뒤부터 나도 아이들 흉내를 내며 ‘우리’를 만날 때마다, 10년만에 만났다거나, 10년만에 농구를 하네 라고 놀리니, 할아버지는 ‘10년만에’에 중독됐다고 되받아쳐요. ‘우리’는 언제나 내가 사는 마을 동쪽에 살아요. 그곳에서 아침마다 하늘 높이 떠 맑고 눈부신 햇살로 내게 오기 때문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