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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해원 Oct 19. 2023

두 발로 땅 딛기

이름 없는 관계_14

© 해원



<윗집 일기>


이틀 동안 앓았다. 대체로 건강한 몸 상태를 유지하고 사는 나인데, 일 년에 한두 번 이렇게 탈이 난다. 주로 위장 문제다. 축구를 꾸준히 하면서 꽤 오래 괜찮 길래 올해는 넘어가나 했더니 역시나. 인생은 역시나 와 이럴 줄 알았어의 연속이다. 이상하게 어제는 여러모로 힘든 일이 연속해서 일어났다. 


시작은 바쁜 일정 속에서도 과감히 선택한 새벽 축구경기 시청부터였다. 새벽 4시에 꾸역꾸역 일어나 본 축구 경기는 없던 병도 생길 만큼 엉망인 경기력으로 끝났다. 남편이 출장으로 내 차를 가져갔는데 거기에 있던 큰 아이 가방을 내리지 않아 아침 댓바람부터 대성통곡. 아이랑 싸우다 아이들 등교시간은 물론 오전 약속 시간도 같이 밀리고 해야 할 건 많은데 오전 작업은 너무 늦게 끝났다. 그래도 맛나게 얻어먹은 점심으로 기분전환 하나 했건만. 그마저도 된통 체하는 바람에 소화가 되기도 전에 다시 입 밖으로 나왔다. 그때부터 시작한 두통과 구토로 일어나지 못해 아이들 치과, 학원 모두 취소했다. 하교만 겨우 시키고 계속 누워 있었다. 내가 움직이지 못하니 가족들의 일상도 모두 뒤엉키기 시작했다. 너무 아팠고, 억울했다. '왜 하필 지금...' 마감해야 할 일들이 쌓여 있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출장으로 밤늦게 도착 예정이던 남편이 예상보다 일찍 돌아왔다. 남편이 오자마자 겨우 바통 터치. 아이들과 남편, 남자들 넷이서 저녁으로 라면을 끓여 먹고 이상한 수학 문제를 풀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남편이 아이들과의 수학시간을 선택한 것은 아이들이 엄마를 찾을 수 없는 시간을 보내기 위한 배려였을까. 아픈 와중에도 그런 생각을 하며 웃었다. 아이들은 오며 가며 누워 있는 나를 쳐다보다 간다. 말하지 않아도 느껴진다. 티 내지 않고 자기 역할을 다 하는 것만으로도 나를 걱정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런 가족들을 보고 하루 종일 바빴던 하루를 떠올리며 생각한다. 지금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얼마나 잘 지키고 있는지에 대해. 오늘 같이 모든 게 뒤엉킨 날에는 더욱 자주 떠올리게 되는 질문이다. 그리곤 다짐한다. 내 삶에 우선순위를 잘 지키는 사람이 되자고. 헷갈려하지 말자고.


고등학교 때 내 별명은 문어발이었다. 이곳저곳에 발 걸치고 있는 곳이 많아 생긴 별명이다. 관심 있는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다 잘하고 싶은 욕심도 많았다. 몸은 하나인데 다리를 여러 개로 뻗다 보니 모두 조금씩 부족하거나, 한두 개 제대로 한다 싶으면 다른 것은 제대로 하지 못했다. 욕심을 버리고 조금 더 집중해 보는 게 어떻냐는 주변 사람들의 충고는 뒤로한 채 나는 열심히 다리를 늘려 나갔다. 그러다 보니 제 역할을 잘하지 못해 이런저런 피해를 주기 일쑤였다. 늘어나는 오지랖에 잘하고 싶은 욕심이 이기심으로 변했던 것도 같다. 가지 많은 나무는 더 많은 양분을 필요로 한다. 나는 가지 많은 나무를 키우고 싶어 하면서 충분한 양분은 준비해 두지 못했던 것이다.


그랬던 내가 지켜야 할 것들, 세상에 나보다 더 중요한 것이 생기니 나의 문어발은 자연스레 하나 둘 떨어져 나갔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관계나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들로 한껏 예민해져 가족들에게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고 나면 오히려 마음이 더 힘들었다. 아끼고 좋아하고 익숙해져서 생긴 편안함을 나의 화풀이 대상으로 삼고 싶지 않았다. 양분을 늘리기보단 가지치기를 잘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제는 문어 발 시절을 지나 사람 발 정도로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무슨 일을 시작하기에 앞서 내 삶에 1순위는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과 균형을 이루며 할 수 있는지, 그럴 수 있는 방법은 뭐가 있는지를 먼저 떠올린다. 오랜 육아, 그리고 그 시간과 함께든 나이(...)로 인해 나에게 생긴 좋은 변화는 진짜 중요한 것을 지키고 그렇지 않은 것은 과감하게 포기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이제야 문어에서 인간이 되어 두 다리로 잘 지탱하며 사는 기분이 든다.


필요 없는 관계나 활동반경을 줄이고 나니 이제 뭐가 진짜 중요한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내가 모나고 부족한 모습을 보여도 옆자리를 지켜주는 사람들, 같이 가보자 손 내밀어 주는 사람들, 내가 나를 믿지 못할 때도 나를 믿어 주는 사람들. 이들로 하여금 나도 잘 못 믿던 나를 믿게 된다. 그들이 내 삶의 1순위다. 걸러내고 나면 가벼워지고, 가벼워지면 여유가 생기며 여유가 생기면 크게 별 일일 것이 없다. 그래서 오늘 같이 되는 게 하나도 없는 날에도 금방 일어설 수 있다. 



<아랫집 일기>


2019. 9. 13

그냥 ‘할아버지가 미안해.’라고 말할 걸 그랬습니다. 이음이가 ‘할아버지, 나빠.’라고 했을 때, ‘생각해 봐, 할아버지가 무얼 잘못했어.’ 라며 일의 앞뒤를 이야기하려고 하자, 갑자기 이음이 두 눈이 부풀어 오르더니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습니다. 딱지치기를 하다 벌어진 일입니다. 이음이와 울림이는 같은 편을 먹었는데, 몇 차례 돌아 이음이가 칠 차례인데 울림이가 딱지를 치려고 우기다가, 서로 발로 차고 딱지 쥔 손으로 얼굴을 때리며 다투었습니다. 나는 얼른 이음이를 품으로 감싸고 울림이를 꼼짝 못 하게 두 손으로 내려 눌렀습니다. 그러자 울림이는 ‘이음아, 나 살려 줘.’라고 소리치고, 도리어 이음이는 나를 발로 차고 꽉 쥔 주먹으로 때렸습니다. 내가 손으로 뻗어 막자, 딱지를 던지고 벗어 놓은 신발을 던졌습니다. 나도 같이 이음이가 던진 신발을 주워 던지고, 딱지는 멀리 길 밖으로 던져버렸습니다. 울림이는 벌써 항복하고 뒤로 물러섰는데, 이음이가 끝까지 버티다 이런 일이 벌어졌습니다. 울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이음이 뒷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음이를 생각하면 내내 누르는 듯 가슴이 뻐근했는데, 다음날 아침 아이들은 까맣게 잊은 듯 ‘할머니, 할아버지!’라고 소리칩니다. 어제는 엄마가 배가 아프다며 맨밥을 얻으러 왔습니다. 엄마가 아파서인지 이음이는 힘이 하나도 없어 보입니다. 나는 장난말로 ‘너, 할아버지한테 하듯 엄마 배에 올라가 쿵쿵 뛰었지.’라고 하니까, 그건 아니라고 합니다. 오늘 새벽, ‘우리 구들방 옆 방에 웬 아이 둘이 들어와 자더라.’는 꿈 얘기를 하니, 아내와 우인이가 ‘이음이와 울림이가 보고 싶어 그런 거야.’라고 합니다.


2019. 9. 18

초인종이 울립니다. 이 시각에 누구일까. 아이들이겠지. 현관문을 열고 나가니 울림이, 이음이, 엄마 등에 업힌 우리가 와 있습니다. 엄마 손에 들린, 속이 훤히 보이는 플라스틱 통 안에는 반딧불이 세 마리가 들어있습니다. 아, 반딧불이를 보여 주려고 여덟 시가 다 된 어둑어둑한 때 우리 집에 온 것입니다. 뜰을 나섭니다. 울림이를 손에 잡고 반딧불이를 찾아 나섭니다. 무엇이 얼비친 것은 아닐까. 반딧불이 한 마리가 풀섶에서 반짝이다가 곧 사라집니다. 우리도 걸려 함께 숲길을 흘러갑니다. 아이들 집 마당에 올라서니 반딧불이 두세 마리가 떠다닙니다. 울림이와 이리저리 몰아 두 마리를 잡고, 한 마리는 거미줄에 걸린 것을 잡았습니다. ‘왜 할아버지 집에는 반딧불이가 없을까?’ ‘반딧불이는 아이들을 좋아하나 봐.’ 라며 말을 주고받는데, 이음이는 ‘할아버지 집에는 아이가 너무 커서 그런가 봐.’라고 말합니다. 너무 큰 아이는 지우를 말합니다. ‘지우 삼촌은 어른이야.’ 라며 엄마가 웃습니다. 하늘에는 뭇별이, 내 가슴에는 꽁무니에 등을 단 반딧불이가 동동 떠 흐르는 밤입이다. 

오늘 울림이는 선생님한테 초콜릿 두 개를 받았다고 합니다. ‘열, 스물, 서른... 아흔’ 우리말로 숫자 세는 것을 다 외워서 주신 것입니다. 우리말로 ‘백’은 ‘온’이라고 한다며, 할아버지가 어릴 적 숨바꼭질 같은 놀이를 할 때에는, ‘하나, 둘, 셋... 아흔아홉, 온’ 하고 아이들을 찾아 나섰다고 하니, 그렇게 많이 세느냐고 합니다. 내가 빨리 세는 흉내를 내니, 울림이도 ‘일, 이, 삼, 사...’ 하며 숨이 넘어갈 듯 숫자를 세고, 재미있는 듯 이음이가 웃습니다. 우리를 손수레에 태우고 가다, 길에 민달팽이가 있다고 하니, 울림이가 반딧불이를 준다고 나뭇잎으로 줍습니다. 반딧불이는 이슬 같은 것을 먹는다고 하니, 울림이는 엊저녁에 잡은 것은 늦반딧불이 수컷이며, 달팽이가 기어간 흔적을 끝까지 쫓아가 잡아먹는다고 하며, 엄마와 같이 찾아서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오늘 처음 만났을 때, ‘아빠 공부 다 끝났어.’라고 소리치던 울림이는, 마치 제가 겪은 일처럼 나에게 ‘공부하는데 참 힘들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이음이는, 학위 논문을 마무리한 아빠에게 선물한다며, 고마리와 여뀌 꽃을 바랭이 줄기로 묶어 집에 가지고 갑니다.


2021. 11. 23

‘할아버지, 나중에도 할아버지 집에 놀러 오고 싶은데 …’ 내 품에 안겨 이음이가 꺼낸 말이에요. 이음이는 이다음에 커서도 지금처럼 할아버지 집에 놀러 오고 싶다는 말을 하고 있는 거예요. 언제인가는 아이들이 초롱산을 떠나리라는 것을 짐작하고 있지만, 그 말을 들으니 마음이 슬펐어요. 얼른 마음을 일으켜 세워 ‘언제든지 오면 되지.’라고 하니까, 길을 몰라 찾아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걱정스럽게 이야기해요. 그래서 생각난 것이 ‘초롱산 할아버지’였어요. 아이들이 나를 가리킬 때 ‘아랫집 할아버지’라고 하는데, 이제부터라도 ‘초롱산 할아버지’라고 부르면 초롱산이란 이름을 잊어버리지 않을까 해서요. 초롱산은 우리가 사는 이 땅에 하나밖에 없으니까요. ‘이음아, 네 마음속엔 이미 초롱산으로 이어지는 길이 나 있단다. 할아버지는, 하늘 높이 동그라미를 그리며 미끄러지던 매의 날개짓으로 저물녘이면 웍웍 울던 뒷산 바위 부엉이 소리로 네가 나무에 바짝 붙어 깨금발 하고 따먹던 검보랏빛 오디 열매로 잎새에 물결치는 햇살로 나뭇가지를 흔들면 후두둑 떨어지는 빗방울로 빈 숲길을 스치는 바람으로 언제까지나 초롱산에 살아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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