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관계_12
<윗집 일기>
허망하게 솜이를 떠나보내고 매일을 눈물로 보내던 내 마음을 추슬러 준건 또 한 명의 하얀 친구, 아랫집 강아지 ‘단이’였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솜이를 떠올리며 힘든 마음이 단이를 보면 조금 편해졌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똑같은 자리에서 꼬리를 흔들어 주던 털복숭이 친구 단이. 단이는 아랫집 할머니 할아버지처럼 나에게, 그리고 아이들에게 반가운 이웃이자 든든한 친구였다.
아랫집에는 두 마리의 개가 살고 있었다. 한 마리는 원래 아랫집에서 키우던 ‘단이’, 또 한 마리는 우리가 이사 오기 전에 살던 사람들이 키우던 ‘보리’다. 크기는 비슷했지만 보리는 왜소한 체격에 나이가 꽤 들어 보이는 개, 단이는 체격 좋고 젊은 개였다. 보리는 주인이 바뀌어서 그런지 눈치를 많이 보고 사람이 다가가면 일단 움찔하며 어디론가 숨었다. 그에 비해 단이는 사람을 좋아하고 샘이 많았다. 가끔 먹다 남은 고기나 간식을 갖다 주면 같이 온 보리를 으르렁 거리며 쫓아내고, 보리 좀 만져 줄라치면 달려들어 자기 먼저 만져달라고 머리를 들이밀었다.
처음에는 그런 단이가 얄미웠다. 그래서 보리에게만 몰래 간식을 주기도 하고, 우리 집 마당에 개똥이 있으면 단이에게 괜히 더 화를 내곤 했다. 그런 날엔 단이도 시무룩해져 꼬리를 내리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래도 다음 날이면 속없이 쪼르르 달려와 꼬리를 흔들었다. 단이는 내가 아무리 심술을 부려도 꼬리를 흔들며 달려왔다. 그런 단이를 매일 마주하다 보니 얄밉게만 보였던 단이의 욕심이나 질투가 귀엽게 느껴졌다. 낯선 이들이 오면 아랫집 우리 집 가리지 않고 짖어대는 단이가 든든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지킬 줄 아는 단이의 모습이 용맹해 보였다. 좋아지는 마음을 경계할 틈도 없이 단이가 좋아졌다.
한 번은 큰아이 울림이가 나랑 크게 싸우고 집 밖을 뛰쳐나가 사라진 적이 있다. 처음엔 나도 화가 나서 “지 맘대로 하게 냅 둬!”라고 했던 마음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불안해졌다. 마침 와 있었던 동생이 먼저 울림이를 찾으러 나갔다. 어디로 갔는지 몰라 큰 소리로 이름만 부르고 있는데 뒷산에서 단이가 내려왔다. 날이 추워 들고나간 울림이 겉옷을 단이 코에 대줬더니 마치 안내라도 해주 듯 뒷산을 향해 갔고, 그런 단이를 쫓아가보니 울림이가 있었다고 했다. 나중에 들은 울림이 말로는 단이가 산으로 향하는 울림이를 끝까지 쫓아왔고 내내 곁에 있어주다 울림이를 부르는 소리에 내려갔다고 했다. 우리는 그때 단이가 천재견 이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마치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 같아 보이기까지 했다. 아닌 척하면서 사람 말을 다 알아듣고 모두 잠든 밤에는 두 발로 서서 다니거나 몰래 책을 읽고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 단이가 좋아질수록 ‘단이가 죽으면 너무 슬플 것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됐다. 나는 겁이 많아서 좋아하는 마음이 생길수록 자꾸만 끝을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 미리 생각해 놓아야 덜 아플 것 같아서. 그래서 '단이도 언젠가 죽겠지, 그러면 아주 많이 슬프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그러면서도 단이는 아직 어리고, 건강하니까 아직 먼 일이라 생각하며 나 혼자 안심했다.
그날은 눈이 많이 와서 단이 털 색깔처럼 온 세상이 하얬다. 아이들은 두꺼운 패딩 수트를 입고 나가 눈 위에 온몸을 던지며 놀았다. 하얀 세상에 가장 먼저 발을 디뎌 놓은 강아지들의 발자국이 이곳저곳 찍혀 있었고, 그 위에 아이들 발자국이 찍혔다. 신나게 놀다 집으로 들어온 아이들이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했다. “엄마, 단이가 죽었대.” 눈이 많이 내려 며칠 집 밖을 나가지 않았던 때였다. 우리가 키우는 개는 아니어서 며칠 못 보는 날도 많았다. 그래도 “단이야~!” 하고 부르면 언제고 달려오던 단이었다.
며칠간은 믿어지지가 않았다. 이제는 불러도 오지 않을 단이를 마주하기 두려워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그저 산속에 고라니 사냥을 하러 조금 멀리 간 거라고 믿고 싶었다. 밖에는 아직도 새하얀 눈 위에 단이의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나는 그 발자국들을 보며 올해는 겨울이 아주아주 천천히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남은 단이 발자국을 더 오래 보고 싶었다. 그러다 어느 날 밤, 아이들과 잠자리에 누워 단이와의 추억을 떠올렸다. 단이가 너무 보고 싶었고, 더 이상 단이를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실감했다. 내가 훌쩍이고 있는데 옆에서 같이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첫째 울림이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고서는 잘 울지 않던 울림이었다. 형이 우는 모습에 두 동생들은 놀란 눈치다. 나는 울림이의 우는 모습을 보고 더욱 슬퍼져 소리 내어 울고, 그 소리에 울림이도 더 슬퍼졌는지 같이 소리 내어 울었다. 단이가 많이 그립고 더 많이 좋아해 주지 못했던 것이 미안했다. 덜 아프고 싶어서 끝을 미리 생각해 두었던 작전은 실패하고 말았다.
<아랫집 일기>
2018. 11. 2
강아지 ‘단’이와 ‘보리’가 겨울에 살 집을 만듭니다. ‘단’이 집은 어느새 고양이 두 마리 ‘밤’이와 ‘호미’가 차지했고, 한데 마른풀 위에서 웅크리고 자는 ‘보리’가 안쓰러워 어제는 구운 벽돌로 두 칸 집을 지어 속에 볏짚을 두툼하게 깔아 주었습니다.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울림이와 이음이는 엄마가 갖다 준 색분필로 새로 지은 강아지 집에 그림을 그립니다 지붕 한편을 빈 틈 없이 가득 칠해 놓은 이음이는, ‘영화 보기(시작하기) 전 캄캄한 거’를 그렸다고 합니다. 갑자기 영화관이 생각났는지 더는 묻지 않았습니다 울림이는 고운 빛깔로 강아지 드나드는 문턱에 체크무늬를 그려 놓았습니다.
아이들이 귤을 달라고 해서 집 안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수도꼭지에 손이 닿지 않는 이음이는 아내가 세숫대 위로 번쩍 안아 올려 손을 씻깁니다. 아이들이 귤을 먹습니다 얼마나 맛있게 먹는지 그저 곁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엄청 맛있나 보다’ 하고는 얼굴을 쳐다보니 ‘엉엉 울고 싶을 만큼 맛있어’라고, 어디에서 들었는지, 혼자 생각한 말인지 장난스레 이음이가 대답합니다.
고양이 ‘밤’이는 울림이가 지어준 이름입니다. 강아지 ‘단’이와 소리 짝이 맞는다고 지었는데, 아마 산밤을 주으러 가다가 떠올렸을 겁니다. 내가 캄캄한 ‘밤’은 까만 고양이와도 잘 어울린다고 하니 그 생각은 못했다고 하면서도 좋아합니다.
2019. 1. 20
어느 글에서인가 ‘아옹다옹’이란 말이, 고양이와 개가 싸우는 소리를 흉내낸 말이라고 한 것 같습니다. 한데 우리 집 개와 고양이는 사이가 좋습니다. 강아지들은 고양이 뒤를 졸졸 따라다니고 등에도 올라탑니다. 강아지들은 어미인 ‘단’에게서 배우고, ‘단’은 이웃집에서 기르다 두고 간 ‘보리’를 따라 배웠겠지요. 울림이는 동무인 ‘산들’이를 따라 집으로 올라가고, 나는 혼자 남은 이음이를 외발 손수레에 태워 요리조리 흔들며 산길 한 바퀴를 돕니다. 가는 길에 산비탈에 앉아 조그만 돌도 줍고 가랑잎도 주워 만져봅니다. 고양이 ‘호미’와 ‘호미’를 따라온 강아지 한 마리와 나란히 앉아 나무 사이로 다랑논을 내려다봅니다. 나는 이 순간을 고이 담아 마음속 사진첩에 끼워 둡니다. 비탈 아래로 미끄럼 타듯 내려갔다가 이음이를 안고 올라옵니다. 가파른 비탈을 서둘러 오르다가 이음이를 안은 채 넘어졌습니다. 이음이는 뒤로 나는 앞으로 넘어졌는데, 이음이가 ‘할아버지, 괜찮아’ 라며 걱정스레 묻습니다. ‘이음이가 괜찮으면 할아버지는 다 괜찮아’ 나는 이음이를 다시 손수레에 태워 집으로 갑니다.
2020. 11. 12
‘단이’와 ‘보리’는 하루종일 고라니를 쫓아다녀요. 늘 허탕을 치곤 논두렁에 빠져 아랫도리는 다 젖은 채 진흙투성이로 돌아와요. 그러다 그예 고라니를 잡았어요. ‘단이’와 ‘보리’ 두 마리 힘으로는 어림없지만, 어제는 마을을 떠돌아다니는 도둑개가 함께 고라니를 몰아 잡은 거예요. 마늘밭에 짚을 깔다가 보니, 고라니가 산으로 올라가길래 이제 살았구나 했는데, 갑자기 비명소리가 들려 서둘러 달려가니, 입을 벌리고 두 눈은 뜬 채 도랑에 고꾸라져 숨이 끊어져 있었어요. 아이들이 뒤따라왔어요. 사내아이들이라 그런지, 아니면 그런 주검을 눈으로 자주 봐서 그런지, 가엾어하거나 무서워하지 않고, 다큐를 찍는다며 집으로 돌아가 사진기를 가지고 왔어요. 정작 산기슭에 구덩이를 파고 묻어준 사람은 나와 ‘우리’였어요. 울림이는 동영상을 20분 2초를 찍었다고 해요.
2020. 12. 15
문을 열고 엄마가 나오고, 이윽고 울림이가 나옵니다. ‘오늘 같이 추운 날도 학교에 가나 보다.’ ‘이음이는 어린이집에 안 가는가 보지.’ 하는 순간 이음이도 나옵니다. 아내가 부엌 창으로 내다보며, ‘세 마리가 나왔다.’ 하길래, ‘아니, 두 마리지.’ 하니까, 아내는 아이들이 나오자 달려간 우리 집 강아지 단이까지 세 마리라고 합니다. ‘그러네. 우리 강생이(강아지) 세 마리.’ 오늘 ‘우리’는 아빠와 함께 집에 있나 봅니다. 차는 뒤로 나아가더니 방향을 틀어 숲길을 스르르 미끄러지듯 내려갑니다. 나는 가끔 아이들이 떠나는 모습을 보지 않으려고, 뜰에 나섰다가도 뒤돌아설 때가 있습니다. 마음이 시려 와서요.
2021. 9. 28
‘가여워’ 이음이와 내가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곁에서 놀고 있던 ‘우리’가 혼잣말처럼 꺼낸 말이에요. 이음이가 ‘할아버지, 단이는 몇 번 결혼을 해?’ 하고 물어, 일 년에 두 번이라고 하니, 이음이가 그동안 단이가 나은 새끼가 엄청 많았겠다 라고 하던 때였어요. ‘우리’는 문득 올봄에 태어난 강아지들이 생각났나 봐요. 지금은 텅 빈, ‘우리’가 꼭 신발을 벗고 들어가던 개집에 꼬물꼬물거리던 강아지가 가여웠던가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