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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해원 Sep 30. 2023

언어가 없는 관계 1

이름 없는 관계_11

© 해원



<윗집 일기>


아기 고양이 ‘솜이’가 내가 운전한 차에 깔려 죽은 뒤, 나는 앞으로 절대 동물을 키워서는 안 된다고, 그럴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 가족이 처음 식구로 데려온 아기 고양이 ‘솜이’는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났다. 너무나 허망하게, 너무나 아프게.


아이들은 자주 동물을 키우고 싶다고 말했다. 개든, 고양이든, 햄스터든 괜찮으니 뭐든 키우자고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식구 많은 우리 집에 또 다른 돌봄의 대상을 만들고 싶지 않고, 그 돌봄의 책임은 대부분 나에게 주어질 거라는 게 물 보듯 뻔해서 단호히 안 된다고 말했다. ‘너희들이 엄마 도움 없이 하루에 세 번 밥 주고 놀아주고 아프면 병원 데려다주고 할 수 있으면 그때 생각해 보자’고 ‘집에 있는 꼬꼬 밥이나 잘 주면 생각해 보겠다’고 딱 잘라 말했다.


그러나 야무지게 안 된다고 했던 내 마음이 동생과 깜비오의 첫 만남을 보게 되면서부터 느슨해지기 시작했다. 동생이 아이들 학교 옆 주택에 살 때였는데, 학교랑 가까워서 자주 들르곤 했다. 그날은 아이들 방학이었고 겸사겸사 오랜만에 다 같이 외식을 하러 가기로 한 날이었다. 동생을 데리러 집으로 갔더니 동생은 아주 심각한 표정으로 보일러실에서 새끼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린다고 말했다. 한 마리 소리만 나는 걸 봐서 어미 고양이가 버리고 가거나 잠시 두고 간 것 같은데 더운 날씨 때문에 걱정된다고 했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8월, 한여름이었다. 가서 보고 싶지만 괜히 사람 냄새 풍기고 나면 엄마 고양이가 오지 않을 수 있으니 일단 나갔다 와서 동태를 살펴보자고 했다.


동생은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더니 안 되겠다며, 빨리 다시 집에 가보자고 했다. 혹시 모르니 나온 김에 새끼 고양이용 먹이도 사가자고 했다. 돌아가니 아직 새끼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날 새벽부터 거기에 있었으니, 반나절 이상 어미 고양이가 오지 않은 것이다. 날은 너무 더웠고 더 뒀다간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결국 동생은 그 고양이를 보일러실에서 방으로 옮겨 왔다.


두 손바닥 위에 올려두면 다 들어가고도 남는 크기에 아직 눈도 못 뜬 새끼 고양이였다. 작은 크기에 비해 울음소리는 앙칼지고 씩씩했다. 검은색 등과 얼굴, 흰색 주둥이와 배, 그리고 아직 분홍색을 띠고 있던 발. 삐죽삐죽 솟아 있는 보드라운 털이 꼭 민들레 홀씨 같았다. 어미 고양이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어미 고양이를 만나도 대화를 할 수 없으므로, 우리는 이 고양이가 다른 새끼 고양이들에 비해 작고 약해서 버려진 것 일거라고 추측했다. 그래서 동생은 더 마음이 쓰였을 것이다. 원래도 그런 것에 더 마음을 빼앗기는 아이니까. 혹시 몰라 사 왔던 새끼용 먹이를 물에 타서 작은 주사기 같은 곳에 담아 입에 넣어 주니 허겁지겁 먹었다. 그러고는 뽈록 나온 배를 드러내고 금세 잠이 들었다.


나와 아이들은 이렇게 작은 고양이는 처음 보는 터라, 놀랍고 신기한 눈을 하고 있는데 동생의 눈은 비장했다. 아직 자기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 작은 생명체를 어떻게든 먹이고 재우고 싸게 해서 살려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날부터 동생은 민들레 홀씨 같은 아기 고양이를 살리기 위해 온 마음을 쏟았다. 하루 종일 인터넷 검색 창에 ‘새끼 고양이 키우는 법’을 띄워 두고, 3시간 수유 시간에 맞춰 하루를 살았다. 새벽에도 수유시간을 맞춰야 했기 때문에 매일 졸음이 쏟아지는 눈을 하고 있었으며 항상 빠지지 않는다고 투덜대던 살도 쑥쑥 빠지고 있었다. 동생은 이 불안전한 생명체를 보며 자주 울었다. 똥을 누지 않아서, 밥을 너무 많이 먹어서, 새벽에 깜빡 잠이 들어서, 너무 작아서 그리고 너무 이뻐서. 


아기 고양이를 키우는 모습은 신생아를 키우는 모습과 놀랍도록 비슷했다. 짧은 수유시간, 먹고 자고 싸기만 하는 습성, 새까만 태변을 눈 뒤 황금색 똥을 누는 것까지. 새끼들은 다 똑같이 크는구나 싶었다. 그리하여 나와 동생은 이런 얘기까지 주고받는 사이가 됐다.


“언니, 새벽에도 수유 간격 지켜야 되나?”

“그냥 배고파할 때 줘도 될 듯. 나도 새벽에는 수유 텀 좀 길었던 것 같아.”

“아, 다행이다. 오늘 새벽에 너무 피곤해서 그냥 잠들어 버리는 바람에 4시간 간격으로 준 것 같거든.(눈물)”

“괜찮아. 너무 시간 강박 갖지 마. 애마다 다 다르고 육아에 정답은 없으니까.”

“고마워 언니. 육아 선배 있으니까 든든하네.”


어릴 적 동생은 슬픈 일이 생기면 동물들을 찾아가 속 얘기를 털어놓곤 했다. 나는 그런 동생이 좀 유별나다고 생각했다. “말도 안 통하는 동물들한테 이야기한다고 뭐가 달라지냐?” 하고 핀잔을 주기도 했다.(너 T였니..?) 만약 내게 육아 경험이 없었다면 어느 날 뚝 떨어진 아기 고양이에게 사활을 걸고 헌신하는 동생의 지금 모습 역시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애를 셋이나 키우고 나니 이제 알겠다. 언어가 없는 관계 속에서도 무한한 사랑과 신뢰가 생길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서로가 서로에게 존재만으로 안심이 될 수 있는 관계가 있다는 것을. 사회는 인정해 주지 않을뿐더러 단절시켜 버리는 나의 육아 경력이지만, 그것이 소중한 이의 어떤 마음에 가닿을 수 있는 순간에는 그 자체로 나에게 보람과 위로를 준다. 나에게 아기 고양이와 동생의 만남이 그런 순간이었다. ‘변화’라는 뜻을 가진 ‘깜비오’는 존재만으로도 이름의 몫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나는 그 관계에 현혹되어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도 한 마리 키워 볼까?’ 그리고 결국 새하얀 목화솜 같던 아기 고양이 ‘솜이’를 집에 데려오기에 이른다.


© 해원
© 해원


둘째 ‘이음’이가 하얀색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고 했다. 나는 밖에서 키워야 하니 멀리 도망가지 않게 어릴 때부터 키우고 싶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동네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아는 분 어머니네 고양이가 새끼를 낳았는데 이제 막 사료 먹기 시작했고 흰색 고양이도 있대!” 소식을 듣고 곧장 나와 아이들, 그리고 고양이를 키우고 있는 내 동생이 함께 길을 나섰다. 


차 타고 1시간이나 가서 소개받은 할머니 집에 도착했다. 이제 막 뜀뛰기를 시작한 것 같은 개구쟁이 고양이 형제들이 여럿 모여 있었다. 우리는 고양이들이 들어있는 상자 주변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누구를 데려갈지 고민했다. 출발할 때만 해도 흰색 고양이 한 마리만 데려오자고 했는데 막상 고양이들을 보니 너무 귀여워서 아이들에 동생까지 합세하여 어떻게 한 마리만 데려가냐고, 여기서 누굴 데려가냐며 안타까워했다. 그래도 흔들리지 않고 단호한 엄마의 목소리에 아이들과 동생은 원래 약속한 대로 하얀 고양이 한 마리를 박스에 넣었다. 새하얗고 보드라운 털에 한쪽 눈은 파랗고 사람을 좋아하던 고양이였다. 


하얀색 고양이를 데려오자고 했던 이음이가 아기 고양이의 이름을 ‘솜이’라고 지어주었다. 처음 데려온다고 했을 때는 별 관심 없어 보이던 남편은 고양이가 오자 갑자기 집에 있는 나무판자들을 모아 지붕에 작은 화단까지 겸비한 집을 만들었다. 아이들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자주 고양이와 놀아주었다. 이 정도면 잘 키울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겨났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고가 났다. 나는 며칠간 차를 움직일 수 없었고, 자주 울었다. 아이들은 그런 나를 보며 “엄마 또 우네.”하고 측은하게 쳐다보곤 했다. 같이 지낸 시간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는데, 자꾸 생각났다. 밭일을 할 때 와서 치근덕대던 순간이라던가, 데크 위에서 아이들과 펄쩍펄쩍 뛰어놀던 순간이라던가, 밖이 낯설어 야옹야옹 울던 순간들. 그런 순간들이 떠오를 때마다 나는, 가슴이 저렸다. 



<아랫집 일기>


2020. 6. 10

며칠 전에 아이들 아빠가 뜰에 ‘방방’(트램펄린)을 세워주었어요. 아침에 눈을 떠서도 한낮에도 쉴 새 없이 아이들이 올라가 뛰고 있어요. 멀리서 보면 벼논에서 톡톡 튀는 메뚜기들 같고 나뭇잎에 튕기는 햇살 같아요. 이튿날, 어른들도 탈 수 있다며 울림이와 이음이와 우리가 아내와 나를 데리러 왔어요. 아이들이 통통 뛰니까, ‘솜이’(고양이)도 아이들이 뛸 때마다 아래로 쳐지는 그물을 잡으려고 밑에서 함께 폴짝폴짝 뛰고 있어요. 한참 뛰어놀다가 아내는 어지럽다며 먼저 내려가고, 아이들은 저희들은 누워 있을 테니 나보고 세게 뛰라고 해요. 내가 뛸 때마다 아이들은 엎어졌다 뒤집어지기도 하고, 서로 머리를 부딪혀 내가 그만하려고 하면, 자꾸 ‘앵콜’이라고 해서 몇 번이나 몇 번이나 되풀이하다 달아나듯이 빠져나왔어요. 


2020. 6. 18

오늘쯤은 이 얘기를 해도 될지 모르겠어요.  엊그제 아침 엄마는 소리 내어 섧게 울었어요. 아내는 아이들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얼른 삼태기로 덮었어요. 아이들은 지우 차로 학교와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나는 숲 속에 구덩이를 파고 머리를 해 뜨는 쪽으로 해서 눕혀 부드러운 흙으로 덮어주고, 커다란 돌을 얹어 놓았어요. 엄마는 무서운 꿈을 꾸었어요. 하루종일 엄마 차는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했어요. 저녁 늦게 부엌 불이 켜지지 않아 걱정이 되었어요. 엄마는 아이들과 함께 이 커다란 슬픔을 어떻게 견디었는지 모르겠어요.

잠깐 우리 곁에 다녀간 아기천사. 한쪽 눈이 파아랗고, 털이 솜처럼 하얘 아이들이 ‘솜이’라 불렀던 고양이가 하늘나라로 갔어요. ‘엄마가 왜 저렇게 울어?’ 하고 우리에게 물으니, ‘엉아 (학교에) 가서.’ 다행히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어요. 어제는 아이들이 솜이를 묻은 곳에 데려다 달라고 해서 숲길을 올라가니, 엄마는 또 울었어요. ‘엄마, 또 울어.’ 하며 울림이가 저만치 내려와 혼잣말인 듯 얘기해요. 고맙다고, 아내와 나에게 인사를 온 엄마는, 슬픔으로 여윈 두 손으로 솜이를 묻은 내 손을 꼭 잡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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