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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해원 Sep 25. 2023

가족이 뭐 길래 3

이름 없는 관계_9

© 해원


<윗집 일기>


만약에 아랫집에 우리 부모님이 살았다면 어땠을까 상상해보곤 한다. 가족관계가 다들 그렇듯 명확한 장점과 단점들이 교차되어 떠오른다. 아직 어린아이들을 키우는 입장에서 더 개인 적인 일들을 부탁하고 도움 받을 수 있는 것을 생각하며 혹 하다가도, 쉴 새 없는 감정 교류와 여러 간섭거리들을 생각하며 강하게 고개를 젓는다. 


이런 마음이 들 때면 아랫집 할머니 할아버지와 우리의 관계가 참 이상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왜 가족들과는 이런 이상적인 관계가 될 수 없는지 머리 위에 물음표가 떠다닌다. 떠다니는 물음표 속에는 아직 답을 내리지 못한 질문들만 가득하다. 가족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왜 나는 가족들과 가까이 사는 것을 난감해하는가, 왜 가족들을 떠올리면 마음이 복잡해지는가, 왜 가족을 거꾸로 읽으면 족가가 되는가...


어쩌다 보니 나는 지금 여러 형태의 가족구성원들과 관계를 맺고 있다. 나를 낳아주고 길러주신 부모님과의 가족관계, 결혼 후 생겨난 지금의 가족관계, 남편을 매개로 맺어진 시댁 식구들, 그리고 가족은 아니더라도 비슷한 결의 관계를 맺고 있는 아랫집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모두 각각의 크기대로 내 삶의 중요한 영역이라는 건 같지만 이 관계들의 모양을 그림으로 그려 보자면 동그라미 세모 네모만큼이나 다르다. 


이들 중 아랫집 할아버지 할머니와의 관계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느끼는 이유는 우리 사이의 적절한 간격 때문이다. 남보다는 가깝고 가족보다는 먼, 그 간격에 편안함을 느낀다. 많은 사람들은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많은 부분을 착각하며 산다. 마음대로 경계를 넘어도 된다는 착각, 마음껏 감정을 배출하고 받아줘야 한다는 착각. 언젠가부터 '가족이기 때문에'로 얽히는 관계의 비좁은 간격이 나를 숨 막히게 한다. 그저 마음껏 감정을 토해내고 기꺼이 받아주어야만 하는 과도한 희생관계가 되어가고 있진 않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거다. 사회적으로 부여하는 가족, 특히 부모와 자식이라는 관념 속에 우리의 관계가 너무 비좁게 느껴진다. 그래서 더 자주 부딪히고 날카로워지고 상처받는 게 아닐까.


왜 가족들과는 이런 적절한 거리유지가 안 되는 걸까.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이들과의 관계가 원만해진다면, 인생의 많은 부분이 편안해질 텐데. 그게 참 쉽지 않다. 매번 그 경계의 적정선을 찾지 못해 아슬아슬 줄타기를 한다.


나는 서른을 넘겼을 때부터 처음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존댓말을 쓰자고 다짐했다. 어른들은 물론이고 초등학교 2학년인 둘째 친구들에게도 존댓말을 썼다. 나이가 많다고 대뜸 반말부터 하는 사람들이 싫기도 했고, 나이를 먹을수록 생겨나는 우위가 싫었다. 나는 욕심이 많아 항상 누군가를 앞서가고 싶어 하지만, 주어지는 우위에는 왠지 거부감이 먼저 생긴다. 그런 종류의 권위가 나와 맞지 않는 듯하다. 처음에는 이런 나의 방식이 상대가 누구든 평등하게 존중하는 방법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은 그렇게 존대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보며 존중 이란 말로 포장한 거리 두기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그들에게 나를 보여주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불편해졌기 때문이다. 존댓말 사이에는 항상 적당한 거리가 생긴다. 나는 그 간격에 안심한다. 나의 모습을 적당히 숨기고 적당히 보여줄 수 있으니까. 그런데 그 적당함 속에 나는 나를 자꾸 숨기고, 잘 숨겼다고 생각했던 내 모습이 조금이라도 삐져나오면 더럭 겁부터 났다. 언젠가부터 혼자 생각하고 판단하는 습관이 생겼다. 최근에 쓴 일기에 나는 나에 대해 이렇게 썼다. ‘치밀한 겁쟁이.’


치밀한 겁쟁이가 된 나는 아무리 애써도 간격 유지가 되지 않는 가족들을 떠올린다. 아무리 숨기려 해도 기어코 꺼내어 살펴주는 사람들, 할퀴고 상처 내도 따가운 소독약 팍팍 뿌려가며 아파도 빨리 낫게 해 주려는 사람들, 나의 안부가 가장 중요한 사람들. 이들을 떠올리며 생각한다. 사랑하는 사이에 거리 두기가 가능한 말인가? 나는 가족이 갖는 비좁은 간격에 숨이 막혔지만 그 좁은 간격에 기대어 사랑을 확인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오늘은 내가 먼저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보려 한다. 그리고 엄마가 항상 물었던 것들을 내가 먼저 물어볼 생각이다. 그 이모와는 요즘 어떠냐고. 나는 요즘 아픈데도 없고 엄마가 보내준 약도 잘 챙겨 먹고 있고 밥도 세끼 잘 챙겨 먹는다고. 그러니 엄마도 끼니 거르지 말고 잘 챙겨 먹으라고. 우리 둘 다 병원 갈 일 없이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자고. 건강한 엄마를 아주 오래 보며 살고 싶다고.



<아랫집 일기>


2019. 9. 30

‘야, 너 이 거 없지.’ 바둑판을 내밀어 보이며 이음이가 자랑합니다. 여기에서 ‘야, 너’는 물론 나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전에 울림이와 서로 ‘자랑 내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울림이가 ‘우리 집엔 레고, 베이브레이드, 킥보드가 있어.’ 라며 이것저것 다 끌어내어 자랑을 하면, 나는 가만히 듣고 있다가 ‘단이, 보리, 호미, 밤이’ 우리 집에 사는 강아지와 고양이 이름을 들먹이며 자랑을 하고, 기가 죽은 듯 아무말이 없던 울림이가 생각납니다. 

나무 난간에 돗자리를 펴고 앉아 바둑과 오목을 두고 알까기 놀이도 합니다. 오목은 외할아버지한테 두 번이나 이겼다는데 아무래도 외할아버지가 져 준 듯합니다. 몇 수 놓기 전에, 한꺼번에 두 알을 놓거나 내가 놓은 바둑돌 위에 제 것을 겹쳐 놓으며 울림이는 제가 이겼다고 우깁니다. 알까기도 하는 방법이 다릅니다. 손가락으로 바둑알을 눌러 마치 끌어당기듯 내 바둑알 가까이 와서 튕겨냅니다. 

아내는 밖으로 아침을 차려옵니다. 벌써 바나나와 빵을 먹었다고 하는 아이들에게는 밥에 참기름과 깨를 버무려 김밥을 싸 줍니다. 울림이가 ‘먹보 귀신’이라 부르는 우리는, 입에다 두어 개 넣고, 잘게 자른 김밥을 두 손에 하나씩 들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기분이 참 좋은가 봅니다. 앉아 있는 내 등에 등을 기대고 서서 느긋이 사과를 먹기도 하고, 아내 두 발을 붙잡고 서서 빙긋이 웃기도 합니다.


2019. 11. 11

엊그제는 강화에 사시는, 아이들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오셨습니다. 내가 집을 잠깐 비운 사이, 외할아버지가 닭장을 치우신다며 아이들이 장화를 빌리러 왔습니다. 엄마는 ‘아랫집 할아버지에게 가서 장화 빌려주세요.’ 라고 하라며 가르쳐 주자, 이음이는 ‘우린 친구니까 그냥 빌려줘 하면 된다.’고 했답니다. 아내 말로는, 이음이가 광대나물 꽃 한 송이를 건네주며 장화를 빌려갔다고 합니다. 지금도 신발장 천사 인형 앞에 광대나물 꽃이 시든 채 놓여 있습니다. 

저녁에는 외할아버지가 나와 아내를 집으로 부르셔서 오랜만에 술 한 잔도 했습니다. 우리가 아내 무릎으로 기어올라 아내에게 안기더니 내 품으로 건너와 폭 안깁니다. 이오덕 선생님 임길택 선생님 권정생 선생님 이야기를 하며 자정이 가까워질 때까지 재미있게 놀았습니다.


2020. 3. 2

아이들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다녀갔습니다. 오늘이 엄마 생일이기도 하지만, 불현듯 손자들이 보고싶어 강화도에서 단숨에 달려왔습니다. 아이들이 어찌 저리 곱게 자랐을까. 어렴풋이 나는, 엄마 아빠의 포근한 품과 할머니 할아버지의 고운 손길을 떠올렸는데, 이틀 동안 함께 지내며 그분들의 봄햇살 따스한 사랑을 내 몸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음아, 장구 배워 볼래? 네가 배운다면 할아버지가 가져다 줄게.’ 나처럼 아이들을 윽박지르지 않고, 아이들 의견을 묻고 기다려주는 외할아버지 속에서, ‘작은나무’라는 인디언 소년 이야기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에 나오는 할아버지가 겹쳐 왔습니다. 길을 가다가도 손자가 부르면, 앞서가던 걸음을 멈춘 채 손에 든 짐을 내려놓고 몸을 낮춰 이야기를 듣던 할아버지. 엄마에게도 높임말을 쓰고, 손자들을 하늘처럼 섬기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우리 구들방에서 하룻밤 주무시고 가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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