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해원 Oct 15. 2023

가족이 뭐 길래 2

이름 없는 관계_8

© 해원


<윗집 일기>


착하게만 보였던 아버지가 얄밉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은 내가 결혼을 하고 나서부터다. 아버지는 자기 전에 이를 닦이는 아이들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도 애들 이빨을 닦였었나~?”

아이들을 재워야 하니 조용히 해달라고 하면 또 이렇게 말했다.

“애들은 원래 알아서 자는 거 아니었나~?”


처음에는 장난으로 웃으며 넘겼던 말인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럼 아버지는 우리 어렸을 때 이를 닦이거나 재운 적이 없다는 건가?’ 적어도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적은 횟수였다는 것은 분명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술에 취하면 웃기만 하다 잠들던 점잖은 아버지 뒤에 아버지가 잠든 밤 혼자 아이들 이를 닦이고 잠을 재웠을 엄마의 모습이 보이고, 사람 좋아 거절 못하는 착한 아버지지 뒤에 남 좋은 일 하느라 늘어난 엄마의 살림이 보인다.


그런 것들을 떠올리다 보면 매일 아버지에게 얄밉다고 투덜대던 엄마의 이유를 알 것 같다. 요즘은 내가 남편에게 자주 하는 말이기도 하다. “당신, 정말 얄미워.” 그러면 가만히 있던 남편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억울해하는 표정이지만, 나는 남편의 그 표정마저 얄밉다. 그러고 돌아서서 여전히 아버지가 얄밉다고 하는 엄마의 마음을 떠올린다.


나는 20대 초반에 결혼해 곧바로 아이까지 낳았다. 그래서 대부분의 집단에서 항상 막내였다. 애 엄마가 속할 수 있는 집단은 둘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육아와 관련된 모임 이거나, 육아를 병행하며 할 수 있는 시간대의 모임이거나. 처음 가는 모임에 막내만 데리고 나가면 사람들이 물었다. “애기는 아직 하나예요?” 그러면 나는 기다렸다는 듯, 그리고 별일 아니라는 듯 준비된 표정과 준비된 대사를 한다. “얘가 막내고 위로 두 명 더 있어요^^” 나는 그 말에 놀라는 사람들의 표정과 표현이 좋았다. 내가 뭔가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아서다.


나는 항상 특별하고 싶어 했다. 대안학교를 다녔고, 어린 나이에 엄마가 됐고, 시골에 살고 있으니까. 사람들이 나를 특별하다고 생각해 주기를 바랐다. 그래서 엄마로서의 삶도, 여성으로서의 삶도 모두 내 선택 이라며 포장했다. 마주하고 싶지 않은 지점에 자꾸만 선을 그었다. 나는 고생하며 살아온 엄마랑도 다르고, 내 또래 젊은 여자들과도 다르게 산다고. 나는 그들과 달리 내 삶의 결정을 내가 하며 산다고. 그렇게 선택이라는 포장지로 나를 치장해 두면 나는 누구와도 다른 특별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특별하다 생각했던 것들이 한 꺼풀씩 벗겨질 때마다 알 수 없는 허무함, 외로움, 불안함 같은 것들이 뒤따랐다. 나는 정말 우리 엄마와도 내 또래 젊은 여자들과도 다른 삶을 사는 걸까? 꼭 달라야만 하는 걸까? 물음은 자꾸 깊어지는데 답을 내릴 수 없었다. 그 답이 내 삶을 평범하게 만들 것만 같아서.


그렇게 포장하고 외면하며 10년을 살았다. 돌이켜보면 그 덕에 지금까지 잘 견뎌 온 것도 맞는 말이다. 나이 많은 언니들이 나에게 항상 말했듯 뭘 몰라서. 살다 보면 모르는 게 약이기도 하니까. 그러나 세상엔 답을 내리지 않아도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나는 그렇게 알게 됐다. 삶이란 수많은 이유 없음, 수많은 평범함으로 나아간다는 것, 그리고 잘 고르고 결정해야 하는 것보다 주어진 것을 잘 견디며 해나가는 것이 더 중요할 때가 많다는 것을.


나는 이제 평범함의 힘이 얼마나 큰지, 그것이 얼마나 특별한 일인지 안다. 세상에는 혼자여서 특별한 것보다 함께여서 특별해지는 것이 더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여성이기 때문에, 엄마이기 때문에 비슷한 삶을 살고 비슷한 어려움을 겪으며 살아간다. 부정적인 뉘앙스의 ‘때문에’가 긍정적 시그널로 바뀌는 순간이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불안함이나 외로움은 덜어지고 오히려 직면하고 싶어 진다. 이제는 특별하게 살기보다 선명하게 살고 싶다. 그러려면 벗겨내고 비워내야 한다. 포장이란 덧 씌워질수록 지저분해지고 쓰레기만 늘어날 뿐이니까. 이제는 두꺼운 포장을 풀어헤치고 그 안에 뭐가 있는지 들여다보고 싶다. 


나는 아직 그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잘 알지 못한다. 답을 내리는 것 역시 여전히 어렵다. 그러나 나는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살아내며 저절로 알게 될 것이다. 다음에 엄마를 만나면 얘기해 봐야겠다. 엄마의 남편과 나의 남편이 얼마나 얄미운지, 왜 얄미운지에 대해서. 그것은 어쩌면 엄마에겐 선물 같은 순간이 될 수도 있겠다.



<아랫집 일기>


2020. 6. 29

엊그제는 아이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오셔서 저녁을 같이하자고 해서, 언덕 위 통나무집으로 올라갔어요. 이음이가, 형이 축구하다가 시멘트 바닥에 살이 쓸렸다고 했는데, 울림이는 안방 낮은 걸상에 앉아있었어요. 드러내놓은 무릎에 까진 상처가 무척 쓰라려 보였어요. 울림이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라며 포켓몬카드 몇 장을 골라 건네주며 자랑을 했어요.

저녁을 먹으며 술 한잔씩 나누는데, 느닷없이 방 안에서 울림이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어요. 일하다 조금 늦게 온 아빠가 무릎에 난 상처를 소독해 주고 있나 봐요. 저렇게 자지러지게 우는 소리는 처음 들어봐요. 이사 온 첫해에는 이마를 몇 바늘 꿰맬 만큼 많이 다쳤어도 저리 울지는 않았는데,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오셔서 그런 것일까요. 그런데 아까부터 이음이 얼굴 표정이 야릇해요. 자랑스러움일까, 우쭐거리기라도 하는 걸까. 터져 나오는 기쁨을 참고 있는 듯하지만, 비싯비싯 눈가로 삐져나오는 웃음은 어쩔 수 없나 봐요. 드디어 형이 울음을 터뜨린 거예요. 좀처럼 울지 않던 형이, 그것도 오랫동안을. 조그만 일만 터져도 울기부터 하는 이음이는 갑자기 키가 커진 듯, 위에서 아래로 형을 내려다보는 기분이었을까요. 

‘야, 울림이 너, 이제 사람 됐다. 울기도 하고.’ 라며 놀리는 듯 말하니, 한참만에 방에서 나오는 울림이는 멋쩍은 듯 배시시 웃어요. 아, 나에게도 놀림거리가 생겼어요. 울림이가 ‘장난감’을 가지고 와서 자랑하듯이, 나는 가끔 주머니에서 ‘놀림감’을 꺼내어 울림이를 놀려 먹을 거예요.


2020. 7. 5

‘구름 아저씨, 비껴 주세요.’ 달이 구름에 가리자, 이음이가 한 말이에요. 어느덧 나는 동화 속으로 들어왔어요. 동화 속에서 ‘우리’가 뭐라뭐라 하면서 엄마 옷자락을 끌어당겨요. 뭐라뭐라 달이 나왔으니 같이 가서 보자는 이야기예요. 이럴 때 구름을 사이에 두고 달님과 아이들이 숨바꼭질을 한다고 해요.

뜰에 서서 ‘우리’가 웃고 있어요. 아이들 이모가 ‘우리’가 웃는 모습이 나와 닮았다고 해요. 지우 어릴 적 모습이 떠올라요. 저리 달님처럼 환히 웃고 있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친구 하나 없이 사람을 만나지 않고 구석에 혼자 갇혀 있어요. 가끔 지우는 우인이의 아픈 그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지우는 늘 아이들 외할아버지와 술 한 잔 하고 싶어 해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한결같이 섬기는 마음으로 마주하는, 아이들 외할아버지가 지우는 편한가 봐요. 아이들 외할버지는 마냥 허허로우시기만 하시지 않아요. 무심한 듯하시지만, ‘지우씨, 도자기 시작해야지요. 너무 기다리면 안 돼요.’라고 하실 때는, 지우를 꿰뚫어 보는 듯해요.

아이들은 마루난간에서, 지우가 가르쳐 준 대로 맥주 깡통을 꽉 눌러 발에 끼고 깡통로봇처럼 뛰어다니다가, 마당으로 집어던지고 뜰에서 축구를 하기도 해요. 일하다 늦게 온 아빠가 술 한 잔 하는 동안, 엄마는 우리 집에서 아이들을 씻기고 밤이 이슥할 때야 돌아갔어요. 지우는 혼자 남아 술을 마시고 있어요. 지우는 아이들 외할아버지와 술을 주거니받거니 혼자 술을 마시고 있는지도 몰라요.


2020. 8. 3

엊그제는 아이들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 이모가 왔어요. 이음이가 먼저 달려와 식구들이 온다고 알려주었어요. 이윽고 외할아버지와 ‘우리’가 문으로 들어섰어요. ‘우리’는 신발을 벗더니 문 쪽으로 앞을 두어 가지런히 놓았어요. 이제는 왼쪽 오른쪽 신발을 가려 신은 줄 아는 듯해요. 엄마가 가르쳐 주었을까. 형들을 따라한 것일까. 며칠 전만 해도, 한 쪽 신발은 날아와 대청 문턱을 넘고 다른 쪽은 뒤로 내팽개쳤는데. ‘우리’는 마루를 빙빙 돌아요. 외할아버지 까슬한 수염도 만져 보고, 조심스레 지우의 빡빡 깎은 짧은 머리칼도 만져보고, 앉아있는 내 등 뒤에 와 목을 움켜잡고 매달리기도 해요. 아이들은 안방에 들어가 우인이와 카드놀이를 하다가 ‘벼랑 위의 포뇨’라는 만화영화를 보고, 외할아버지는 식구들과 이야기를 나누시다가 자정이 넘어서야 일어서셨어요. 빗속에 처음 피어난 날, 짙은 보랏빛으로 새치름하게 보였던 큰꽃으아리 꽃잎 여섯 장이, 닷새가 지나자 빛이 엷어지고 너부데데한 얼굴을 하고 있어요.

이전 07화 가족이 뭐 길래 1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