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관계_7
<윗집 일기>
<아랫집 일기>
2019.4.1
층층나무를 옮겨 심고 있는데, ‘할아버지, 할아버지’ 아이들이 달려와 소리칩니다. 우리를 업고 엄마도 뒤따라 왔습니다. ‘호미’가 쥐를 던지며 놀고 있다고, 처음 보는 광경인 듯 무척 놀라워하는 표정입니다. 늘 겪는 일이지만 덩달아 나도 아이들처럼 가슴이 뜁니다. 저만치 앞에 두고 달아나면 쫓아가 입으로 물어다 던졌다가 놓고 가끔은 앞발로 움켜쥐면서, 고양이가 쥐를 갖고 놀고 있습니다. 그런 생쥐를 울림이는 손으로 만지고도 싶고 키우고도 싶다고 합니다. 가끔, 이런 아이들이 어떻게 우리에게 왔을까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지난주 토요일엔 아이들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를 뵈었습니다. 겉으로는 서로 결이 달라 보이는 듯하지만 마음속에 곱고 맑은 하늘을 지니고 사시는 분들이십니다. 아, 저 뿌리에서 엄마 가지가 돋아나고 그 끝에 봄날 연둣빛 눈부신 새순으로 울림이와 이음이와 우리가 이 세상에 온 것입니다.
2019.8.31
정작 서울에는 왜 갔는지 생각나지 않는다는 울림이를 네 차례나 다그쳐 답을 알아냈습니다. 어제도 울림이는 나에게 전화를 걸어, 서울 가서 자고 왔는데 친할아버지와 친할머니, 외할아버지 친할머니가 옆방에서 잤고, 외할버지가 숙소 가는 길을 일곱 번이나 잃어버렸다고 했습니다. 오늘 아침엔 그림을 그려가며 외할아버지가 어떻게 길을 잃었는지와 남산에서 케이블카를 탄 이야기를 하고, 서울에서만 살 수 있다는 것을 스티커를 자랑했습니다. 그제는 아빠 졸업식(학위수여식)이 있어 서울에 갔는데, 울림이는 그 일보다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옆방에서 자고, 외할아버지가 길을 헤맨 것이 마음에 깊이 남았나 봅니다. 하루 못 봤는데 우리가 쑥 자란 것 같습니다. 걸음걸이마저 여유가 느껴집니다.
2019. 9. 28
오미자를 담근 유리병들을 엄마 혼자 들기에는 힘들어 보여, 함께 나누어 들고 울림이네에 잠깐 들렀습니다. 할아버지가 왔다고 인사를 하라고 하자, 오르르 아이들이 몰려나옵니다. 아이들은 잘 됐다며 집에서 놀다 가라고 나를 붙듭니다. 울림이는 아빠한테 내가 못 가게 문을 닫으라고 하고, 이음이는 내 손을 붙잡고 안방으로 데리고 갑니다. 아직 할아버지가 아침을 먹지 않았으니, 밥을 먹고 놀자고 하니 울림이와 이음이는 멈칫하는데, 우리가 따라 나와 나에게 장화 한 짝을 건넵니다. 신을 신고 밖에 나가자는 뜻입니다. 우리를 번쩍 들어 품에 앉고 나무 계단을 내려서니, 마당 귀퉁이에 민들레 한 송이가 피어 있습니다. 우리가 신은 장화 빛깔을 닮은 연 노란 민들레는, 아이들이 보고 싶어 날마다 뜰에서 서성이는 외할머니 마음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