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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해원 Oct 20. 2023

아랫집 할아버지 인터뷰

이름 없는 관계_10

© 해원



선생님 안녕하세요! 어제 말씀 드린 질문지입니다. 제가 요즘 쓰고 있는 글은 윗집 사는 저희와 아랫집 할머니 할아버지와의 관계를 보며 저를 둘러싼 또 다른 관계를 살펴보는 이야기입니다. 질문은 제가 글을 쓰며, 또 선생님들과 매일 함께 지내며 궁금했던 것들을 모아봤습니다. 그동안 저희와 지냈던 이야기, 선생님의 이야기를 추억 한다는 마음으로 간단하게 써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저희에게 좋은 이웃이 되어 주셔서 항상 감사드립니다.  -윗집 해원 올림-



* 저희를 처음 만났던 날을 기억 하시나요? 저희가 이사를 온다는 소식을 듣고 만나기 전의 마음, 만난 후 첫 인상과 첫 느낌이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외딸고 깊은 산골짜기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싶어 하는 젊은이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저희도 가슴이 설렜어요. 이사 오시기 전, 마당을 고르고 집 둘레에 우거진 풀을 낫으로 베며 새 식구를 맞는 기쁨으로 들떴던 생각이 나요. 이사 온 둘쨋 날, 부엌문을 빼꼼히 열고 인사를 왔던, 일곱 살 울림이와 네 살 이음이와 첫 만남을 잊지 못하지요.


* 선생님과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이웃의 관계를 넘어 때론 친구 같기도, 오래된 가족 같기도, 어린이집 선생님 같기도 합니다. 선생님은 아이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다고 생각 하시나요?


아직 손자가 없는 저희에게 아이들이 손자로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저에겐 아이들이 이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동무예요. 저희 집을 제 집처럼 생각하고, 저희를 스스럼없이 받아들이는 걸 보면 한식구로 느껴지고요.


* 울림, 이음, 우리와 보낸 시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언제 일까요? 


제 나이도 잊고 아이들과 놀던 때예요. 언덕에 앉아 냉이와 꽃다지 같은 풀 이름도 가르쳐 주고, 이야기도 들려주고, 혓바닥이 검붉게 오디를 따 먹고, 비닐 봉지에 짚을 넣어 눈썰매도 타고, 미끄러지고 뒹굴며 초롱산을 오르던 기억도 되살아 와요. 뒷짐지고 언덕에 서서 ‘김종도!’ 하고 나를 부르던, 이음이 목소리도 들리고요.


* 선생님의 어린 시절이 궁금합니다. 선생님은 어떤 어린이로 자라셨나요? 어린 시절 기억에 남는 어른이 있다면 누구인지도 궁금합니다.


제 마음속 아름다운 길은 오롯이 어린 시절로 이어져 있어요. 특히 산과 들, 자연의 품에서 남다른 기쁨을 느꼈어요. 더러 식구들은 제가 똑똑하고, 마을에서나 학교에서 장난이 심했다고 기억하는데, 지금 와서 보면 낯설고 새로운 세계를 알고 싶은 마음이 참 많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린 시절 기억에 남는 어른은, 좀 모자란 듯이 보이는 어수룩한 사람들이에요. 힘자랑을 하며 아이들 여럿을 팔뚝에 태워 빙빙 돌려주던, 저희 앞집에 살던 칠원댁 할머니 둘째아들 ‘정대 아재’도 생각나고요.


* 막내 '우리'는 태어나자마자 이곳에서 왔습니다. 며칠 전 말씀하시길 ‘걷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갓난 아기 때 온 우리는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 된 것 같다’고 하셨지요. 저는 요즘 그 이야기가 자주 떠오르곤 합니다. 언제 그런 기분을 느끼시나요?


‘우리’는 걷기 전부터 제가 끄는 외발 손수레를 타고 다녔어요. 숲길을 오가며 ‘우리’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줬어요. 말은 하지 못해도, ‘우리’는 제 말을 다 알아듣는 듯했어요. 요즘도 가끔 제가 ‘우리야!’ 하고 품을 파고 들면, 아무 말 없이 빙그시 웃으며 그 작고 귀여운 손으로 내 볼을 가만히 보듬어 줘요.


* 아이들은 거의 매일 아랫집으로 달려갑니다. 같이 농구를 하자고 하기도 하고, 집에 들어가 보드게임을 하자거나 영화를 보자고 조르기도 하지요. ‘우리’는 아랫집 어린이집을 다니고 있다고 할 정도로 자주 가고요. 아이들과 지내면서 힘들었던 점은 없으셨나요?


이런 사랑스런 아이들이 어떻게 제게 왔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제가 오래전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 그만두고 싶을 만큼 힘든 일도 많았지만, 저를 끝까지 버티게 해 준 학생들이 있어요. 한결 같이 그 친구들은 지지리 공부도 못하고 힘없고 가난한 아이들이었어요. 그 친구들이 제 늘그막에 울림이 이음이 ‘우리’를 선물로 보냈을 거라는 생각을 해요. 아이들과 지내면서 힘들었던 점은, 제가 제 일로 힘들어 아이들을 푸근히 안아주지 못할까봐 하는 것이었어요.


* 최근에 가장 기억에 남은 순간은 언제였나요?


올 추석 연휴 때, 아이들이 저희 집에서 하룻밤 자던 날이에요. 마룻바닥에 나란히 누워, ‘우리’가 졸리는 걸 까먹었다고 할  만큼 재밌는 영화도 보고, 창밖에 떠있는 별을 보다가 아이들은 하나 둘 잠들고, 그 숨소리를 느끼며 나도 잠들었던 순간이지요.


* 아이들 기억 속에 '아랫집 할머니 할아버지'가 어떻게 기억 되었으면 하시나요?


아이들은 자라면서 저희들을 까마득히 잊을 거예요. 그러다 문득 삶이 지치고 힘들 때, 어린시절 잠깐 등을 기대고 하늘을 올려다보던 풀언덕이나, 힘을 다해 기어올랐던 늙은 나무줄기 같은, 아랫집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어렴풋이 느낄 수 있다면 고맙겠지요.


* 선생님께 저희는 어떤 이웃인가요?


이른 가을이면 식구들이 밤나들이를 나와 반딧불이를 쫓고, 해질녘 2층 지붕 위에 나란히 앉아 노을을 보며, 엄마와 ‘우리’가 비오는 날 우산을 쓰고 비 마중을 나가는, 내 마음속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에요. 잔잔히 물결쳐 와 다시 내 가슴 뛰게 하는, 싱그러운 풀꽃내 묻어나는 어여쁜 이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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