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관계_13
<윗집 일기>
법이 만(滿) 나이로 바뀌면서 다시 서른세 살이 됐다. 작년 서른세 살은 새로운 시작이었고, 올해는 도약하고 싶은데 여전히 비틀거리고 갈팡질팡 한다. 그러다 훌쩍 3월이 왔고 내 생일도 3월인데 나는 3형제의 엄마고 인격도 3개쯤 돼서 그런지 갑자기 3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3이 두 개나 들어가는 나이를 두 해나 맞이하고 있는 나를 좀 더 특별하게 대해줘야겠다 생각했다.
방황도 일상이 되어 가는 삶 속에 매일 좌절하다 보면 ‘이 방황에 끝이 있을까, 이 방황이 끝나면 또 새로운 문제들이 생겨나겠지’하고 도돌이표 같은 불행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면 인생이 참 고달프게 느껴지다가도 오히려 한 발 물러서게 될 때가 있다. 한 발짝 물러서면 문제 아닌 것을 너무 오래 문제라 생각하며 붙잡고 있는 것도 보이고, 비틀거리면서도 방향은 잘 맞춰 가고 있다고 안심을 하기도 한다. '느리고 휘청거려도 목적지만 잘 찾으면 되지.' 하고 생각한다.
같은 공간에서 각자의 세계에 빠지는 것을 좋아하는 나와 남편인데(주로 남편은 음악 감상, 나는 스포츠 시청) 간혹 말동무가 필요할 때면 마주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며칠 전에도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데 살짝 취한 남편이 자신이 소크라테스식 화법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며 이것저것 캐물었다. 나는 남편의 그 진지한 태도가 재밌기도 하고 나 역시 내 이야기가 궁금하여 성실하게 답한다. 소크라테스식 화법이 효과가 있는 건지 아니면 나를 향한 그의 진심 덕분인지(내 느낌은 둘 다 아닌 거 같긴 한데) 나름 깊은 이야기를 하게 된다. 매번 다른 주제로 시작하는 대화지만 결론은 항상 같다. ‘진심을 다해 살아갈 것.’
며칠 전에는 9시까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야 하는데 8시 반에 일어났다. 깜짝 놀라 부리나케 일어나 아침밥을 준비하는데 덩달아 늦게 일어난 남편이 "아침 안 먹고 가야 되는 거 아니야?"라고 말했다. 내가 "학교는 좀 늦어도 아침은 먹어야지."라고 답하는데 옆에서 듣고 있던 큰 아이 울림이가 말한다. "아빠 나는 태어나서 아침 안 먹은 적이 한 번도 없어." 그 말을 듣고 새삼 내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나 10년 넘게 매일 빼먹지 않고 한 일이 있네.' 이 정도 꾸준함이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메여 있는 사람이 아니라 잘 지키고 있는 사람이었다는 것에 자부심이 생겼다.
여러 깨달음과 다짐에도 불구하고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아이들과 한바탕 싸운다. 며칠 전에도 울림이와 크게 싸웠는데 우여곡절(남편 혼자 고군분투) 끝에 잘 화해해놓고 금세 다시 같은 상황으로 싸웠다. 그 모습을 지켜본 남편은 '울림이가 아직 아이 같은 면이 있네'하고 안심했다가 '해원이도 아직 아이 같은 면이 있네'하고 걱정했다고 한다.
다시 울림이와 잘 화해했지만 정리되지 않은 감정의 잔상으로 한참 괴로워한다. 그러다 울림이 보다 10배는 더 극성이었던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이 정도면 양호하지...' 스스로를 다독인다. 내 아들보다 10배 극성이었던 나를 키운 엄마를 떠올린다. 엄마는 내가 극성일 때마다 “너는 꼭 너 같은 딸 낳아 봐야 돼!!”라며 악다구니를 퍼부었는데. 정말로 그렇게 됐네. 조금 웃음이 났다. 엄마가 나와 울림이의 싸움을 본다면 슬며시 미소 지을지도 모르겠다.
아이와의 싸움이 마음을 많이 힘들게 해도 거기에 매몰되어 있지 않으려 노력한다. 격해진 감정에 상처뿐인 말들은 걷어내고 아이와 나의 진심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본다. 아이가 받고 싶었던 사랑과 내가 주려던 사랑의 모양이 달랐음을 찾아내고 다시 천천히 맞춰 간다. 싸울 땐 다신 안 볼 것처럼 으르렁 거려도 금방 다시 마주 보며 웃을 수 있는 관계라는 것에 안도한다.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에 대한 신뢰와 믿음을 잘 쌓아왔기 때문이라 생각하면서. 그래서 나는 오늘도 다짐한다. 사랑하고, 더 사랑하자고. 아무런 이유 없이 그냥 사랑하자고.
<아랫집 일기>
2018. 11. 15
‘너희들 맛있는 거 줄 거다’ 아이들에게 겁을 주는 척할 때 쓰는 말입니다. 과자나 사탕을 무기로 꺼내드는 것은 아이들 집에서는 거의 자연 그대로 가꾼, 슴슴한 맛이 나는 것을 먹이는 까닭입니다. 다락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밀크카라멜이 있길래 ‘너희들 이 거 한 번 먹어볼래’ 하며 을러대는 척하니까 곧바로 ‘한 번 줘봐’라는 말이 아이들 입에서 튀어나옵니다. ‘어떡하지 우수수 이가 쏟아질 텐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지만 들은 척만 척 아이들은 처음 보는 듯 카라멜을 이리저리 살펴보고 손가락으로 눌러보기도 합니다 ‘어 물렁물렁한데’ 유혹을 이기지 못한 이음이는, 겉을 싼 종이를 벗기고 입에 넣습니다. 이음이가 다 먹은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울림이가 입에 넣습니다. 이음이 윗옷 앞자락에 단물이 떨어집니다. 코를 갖다 대니 들크무레한 냄새가 납니다. ‘아무래도 엄마한테 들키겠다, 엄마는 아기가 똥을 쌌는지 안 쌌는지 바지를 입었는데도 엉덩이를 맡아보고 다 아는걸’이라고 하자 이음이는 얼른 엄마한테는 비밀이라고 합니다. 비밀은 무슨 비밀 저희들이 먼저 다 일러바칩니다. 엄마가 현관문을 두드립니다. 이음이가 귓속말로 ‘우린 같은 편이잖아’라고 속삭입니다. 마음이 간지럽습니다.
아이들이 보면 볼수록 예쁩니다. 아이들 친할아버지 말씀처럼 아이들과 끈끈한 사랑놀이에 빠졌나 봅니다. ‘너희들 왜 이렇게 날마다 더 예뻐지냐, 밤에 몰래 엄마 젖 훔쳐 먹는 것 아니야’ ‘아니, 밥 잘 먹고 반찬 잘 먹고 잠 잘 자서 그런 거야’ 팽이 돌듯 핑그르르 한 바퀴 돌아 이음이가 내 품으로 달려듭니다. 집으로 가는 길섶 마른풀 위 오목하게 들어간 곳을 가리키며 ‘보리가 추워서 이렇게 꼬리를 흔들었어’라고 하더니 그 속에 들어가선 웅크리고 앉아 살랑살랑 엉덩이를 흔들어 보이던 이음이. 그제는 바람개비 접기, 어제는 구슬치기, 오늘은 종이공 던지기 날마다 무슨 무슨 놀이를 만들어 나와 놀아주는 울림이. 아이들이 또 보고 싶습니다 아이들은 그 어디에서도 어제의 그늘이라곤 찾아볼 수 없습니다.
2018. 11. 28
환자복만 걸친 채 수술실 앞에서 기다리는 아내가 추워 보였는지, 간호사가 담요 한 장을 가져다 덮어줍니다. 무늬 없는 얇은 천을 보고 아내는 아이들 그림이 떠올랐나 봅니다. ‘여보, 아이들 그림 잘 남겨둬 아이들 그림을 수놓고 싶어’ 아내는 수술실로 들어가면서도, 얼굴에 낙서를 한 울림이와 이음이 모습이 떠올라 가만히 웃었다고 합니다. 길고 어두운 굴을 지나듯 외롭고 아픈 시간을 아이들을 생각하며 혼자 견뎌냈겠지요. 세 시간 남짓 수술을 받고 돌아와 병실에 누운 아내 눈가에 눈물이 맺혀 내 가슴으로 번집니다. 지난번 이마를 다쳐 응급실 침대에 덩그러니 남아, 흐르는 눈물을 손등으로 훔치던 울림이가 겹쳐 떠오릅니다.
닷새만에 집에 돌아왔습니다. 서둘러 아이들이 계단을 내려옵니다. 등 뒤에 감추었던 풀꽃 다발을 이음이가 아내에게 내밉니다. 냉이풀꽃 개망초 민들레 방아꽃 개쑥부쟁이 들과 마른 꽃대궁, 쑥스러운 듯 조심스레 울림이도 꽃다발을 건넵니다. 아내는 아이들을 꼭 안아줍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다발입니다. 아내를 생각하며 아이 엄마는 정성껏 저녁을 지어놓았습니다. 아내는 ‘이렇게 마음 쓰기가 쉽지 않은 일인데 젊은 사람이 참 예뻐요’라고 내게 말합니다. 아이들이 저리 예쁜 까닭도 ‘우리를 처음 세상으로 이어주는’,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 맑은 호숫가에 풀꽃 잔잔히 물결치는 엄마가 피어 있기 때문입니다. 내 친구 순복이는 카톡에 올려놓은 이음이 사진을 보고는, ‘이 맑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세상을 보면 얼마나 경이로울까 얼마나 아름다울까’ ‘이음이는 우리를 처음의 세상으로 이어 주네요’라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