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
나는 달릴 수 있는 사람이었다.
저 앞에 버스가 오고 있다. 나는 버스를 타야 했고 아무 생각 없이 나는 뛰어갔다. 버스는 놓쳤지만 나는 깨달았다. 어 내가 달리기를 했네. 임신을 알게 된 순간부터 나는 뛸 수 없었다. 초기에는 조심해야 했고 중기 후기에는 배가 불러서 뛸 수 없는 몸이 되었다. 네가 나오고 다시 나는 뛸 수 있게 되었다. 너는 내 몸에서 독립을 했고 나는 다시 나의 자리로 돌아오는 중이다.
기분이 오묘했다. 그래 나는 달릴 수 있는 사람이었다. 임신을 하고 엄마가 되고 어느 순간부터 나란 사람이 사라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임신을 알았던 순간은 내가 독립출판으로 책을 출판하고 책과 관련돼서 바쁘게 하고 싶었던 것들이 많았던 때였다. 그래서 뭔가 많이 아쉬웠다.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았지만, 갑작스러운 입덧과 피곤함이 밀려오는 상황에서 모든 것들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한순간에 모든 것을 멈추다 보니 많이 아쉽기도 답답하기도 했다. 마치 내가 엄마가 되면서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내가 없어지고 내가 엄마가 된 것이 아니라 나의 역할 중 엄마라는 역할이 추가된 것이다.
역할의 사전적인 의미는 '자기가 마땅히 하여야 할 맡은 바 직책이나 임무'다. 사람들은 저마나 여러 가지 역할이 있고, 나 또한 여러 가지 역할이 있다. 나는 나이자, 누군가의 배우자, 누군가의 딸, 누군가의 친구, 언니, 동생 등 엄마는 많은 역할들 중에 엄마라는 역할이 추가된 것이다. 지금은 엄마라는 역할이 제일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역할의 시간은 줄어들 것이다.
나는 여러 가지 역할들 속에 나 자신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 여러 가지 역할을 할 수 있는 건 결국 내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나 자신을 잃고 엄마라는 역할에 나를 빼앗긴다면 내가 없어질 것 같다. 나를 지켜야 내가 하는 여러 가지 역할들을 잘 수행할 수 있을 테니까. 아직 뒤집지도 못하는 아이를 키우는 엄마는 나 자신으로 돌아올 시간이 없긴 하다. 하지만 나도 온전히 나로 돌아올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주일에 적어도 1~2 시간이라도 나로 돌아올 수 있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나를 지켜야 엄마라는 역할에 집중할 수 있을 테니까. 지금도 어느 토요일 오후 카페 한편에서 나를 찾기 위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이렇게 나를 찾을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배려해 준 내 배우자에게 감사함을 표한다.
프롤로그
버스는 놓쳤지만 달리는 걸 찍어보고 싶었다.
관종인가